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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아라풀 Feb 28. 2021

둘이서 함께 걷는 한국의 100대 명산

두 번째 태백산... 무엇이 달라진 걸까?

조금이라도 눈이 남아있다면 강원도가 아닐까?

며칠 전 어느 누리꾼이 올린 글에서 태백산에 눈이 있다는 내용을 읽었다는 그의 말에 “그래? 그럼 태백산으로 가야지.”하고 두 번째 산행지를 정했다. 대중교통으로 가는 차편을 알아보니 비용 대비 시간이 너무 아까워 태백산까지 태워다 주는 관광버스를 예매했다. 참 좋은 세상이구나를 외치며 서둘러 집을 나섰다.

오늘은 또 어떤 풍경을 마주하게 될지 이른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힘들긴 했지만 그만큼 또 설렘도 생겼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버스에 올라 당골에 도착했다.

화장실에 볼일을 보러 간 사이 함께 버스를 탔던 사람들은 휘리릭 사라져 버리고 둘만 남았다.

20여 년 전 친구와 함께 태백산 겨울 일출산행에서 봤던 구름 파도는 못 보겠지만 그때의 감흥이 새삼 떠올랐다.

아무것도 모르고 새벽 산행이라 추울 테니 겨울 바지를 하나 사자며 동대문시장에서 떨이로 판 솜바지를 샀다. 츄리닝(?)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릴만한 나에게 무척이나 큰 바지였다. 그때는 그것도 감지덕지했던 때였다. 그 큰 바지를 입은 사진을 가끔 들춰보면 그 시절의 내가 멋쩍은 듯 웃고 있는 태백산의 주목이 떠오른다. 이제는 그 나무가 무엇인지도 알 수가 없으리라.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주목

또 그때는 깜깜한 새벽에 올라서 어느 길로 갔는지 기억에도 없었다. 그도 자신의 어린(?) 시절 태백산을 다녀간 이야기를 들려준다. 둘 다 처음은 아닌 이곳에서 각자 다른 기억을 가지고 함께 걸어본다. 언제나 오르막이 힘든 나는 뒤에서 천천히 걷는다. 사람들이 사라지고 거의 없는 들머리에 흙길은 기온이 오른 탓에 질퍽거려 불편했다. 흙이 튈까 신경 썼더니 더욱 늦어진다. 얼마 안 가 사람들이 좁은 길 한편에서 아이젠을 착용한다. 오르막길이라 그냥 가자는 나의 말에 여기서 신는 게 안전하다며 장비를 꺼내 준다. 내리막길이 아니면 몸에 걸치는 게 불편해 신지 않으려 건 것을 그의 말을 따라보기로 한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못가 내리막이 나오고 장비 빨을 톡톡히  보자 그가 내 말 듣기를 잘했지 하며 으쓱거린다.

예전처럼 많은 눈은 아니지만 오르는 내내 눈을 마주하며 걷는다. 주목이 있는 곳에 이르자 어디선가 숨어있는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나타났다. 우리는 이 풍경을 보려고 태백산을 올랐나 보다. 오래전 주목 앞에서 어색한 미소로 사진을 찍던 그 나무는 좀처럼 찾지를 못했다. 그때는 이른 아침이었고 지금은 정오가 한창인 데다 사람이 반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산에 오르는 이들이 많았다.

오래도록 이 주목을 볼 수 있기를...

나도 그도 서로 자신들의 추억 속 나무를 찾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 동안 곳곳에 말라비틀어져 쓰러진 주목을 보며 내가 이 땅을 함부로 대한 결과를 바로 눈 앞에서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비닐봉지 몇 개를 줍는다고 황폐해져 가는 이 산이... 더워지는 이 지구가 온전해질까 의문스러워졌다.

비닐만큼 얇은 양심이 부끄러운 순간이다.

걷는 동안 계속 마주한 눈 속에 파묻힌 사탕 봉지며 과자봉지가 아쉽다.

사람이 살기 위해 먹는 행위가 자연을 살리는 길과 같아질 수 있기를 바라는 건 무모한 욕심인가?

최근 산에서 가장 눈에 띄는 쓰레기는 단연코 마스크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썼을 마스크가 무심히 이 땅에 버려진다. 누군가는 모르고 흘렸겠지만... 우리가 봐야 할 것은 애초에 이런 일들이 왜 생겨났는 지다.

나 또한 이런 말을 할 자격 없음에 자유롭지는 않으나 아주 조금씩 달라지려고 한다.

나도 살고 자연도 같이 사는 삶을 꿈꾼다.

태백산의 주목을 좀 더 오래 변함없이 보려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본다.

마스크, 사탕 봉지, 초콜릿 껍데기...

태백산에서 주워온 쓰레기를 비우며 내가 살기 위해 먹는 것이 당연하듯  땅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최선의 선택들을 찾아본다.

산이며 지구에게 조금은 덜 미안한 날들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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