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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아라풀 Jun 25. 2021

엄마 이야기 1

틀니를 닦다

생각보다 이런 날이 빨리 왔다.

아니 사실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은 게 맞다.


엄마

가끔 내가 엄니 이름을 부르면 나 죽어서도 그렇게 부르라며 유쾌한 웃음을 날리는 나의 엄니다.


까막눈에다 귀가 어둡다.

이 때문인지 아니면 이름 탓인지 가끔 사람들은 엄마를 외국인으로 오해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건 내 문제고 정작 엄마는 그런 이야기가 오고 가는지도 잘 못 알아들을 때가 많아 그저 웃는다.


그런 엄마가 칠십 대 후반이 되면서 이제는 보청기를 껴도 자동차 경적 소리를 듣지 못하는 날이 잦아졌다.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오른쪽 청력도 점점 때를 다해간다는 뜻이다. 의사 말이 청력이 언젠가 아예 소실이 될 거라더니 이제 현실이 되나 보다.

청력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엄마는 처음엔 많이 망설였지만 지금보다는 더 잘 들을 수 있을 거라는 자식들의 말에 하라는 대로 해보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인공 와우 수술 날짜를 잡고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코로나 검사도 무사통과하고 언니의 배웅을 받으며 수술실로 향하는 길에 "사랑해"라는 동영상을 단톡방에 남기고 엄니는 수술을 마쳤다.

수술 시간이 짧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엄마는 13시가 지나서야 회복실에서 나왔다.

입원실로 자리를 옮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가 바지에 똥을 쌌다고 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엄마의 똥 수발을 했을 언니가 생각보다 담담해서 놀랐다.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에 생각이 자꾸 병원으로 향했다.

수술이 끝나면 한 달 정도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암흑의 상태라고 의사가 말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수술 전에 엄니에게 알려줬을텐데 엄마는 수술 후 얼마나 놀랐을까?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병실에서의 시간.

상상 그 이상으로 무섭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엄마가 한없이 가여워졌다.

들리지는 않지만 수술 후 생각보다 회복이 좋아 예정된 일정보다 퇴원을 빨리 했다.

퇴원 후 엄마는 하루 10시간 정도를 큰 소리로 한글을 따라 쓰며 말 연습을 했다.

얼마나 오래 소리를 지르며 말을 연습했는지 쉰 목을 염려한 동생이 그만 됐다며 인공 와우를 일부러 떼어놨다고 했다.

수술 후 처음으로 집 앞 산책을 다녀왔다며 동생이 보내준 사진을 보며 빙그레 웃기도 잠시.

며칠이 지나고 아침 일찍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뭔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엄마가 구토와 어지러움증을 호소해 병원에 가는 중이라고 했다.

원인을 알 수 없어 하루 종일 병원에서 검사를 했지만 엄마는 나아지지 않았다.

입원실이 없어 대기실에 누워 있었다.

오후 늦게야 입원실로 옮겼다.

어지러움으로 거동을 할 수 없어 누워만 있는 엄마를 보자 예전 건강했을 때 훨훨 날아다니며 동네를 누비던 모습이 겹쳐졌다.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대화를 할 수도 글을 써서 의사 표현을 하고 싶어도 전혀 할 수가 없었다.

이래저래 엄마는 들리지 않는 현실을 속상해하며 6인실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큰 소리를 질러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 일쑤였다.

거구인 엄니를 데리고 대소변을 받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모두가 잠든 한밤중 엄마가 오줌 마렵다고 큰소리로 말을 하면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어떻게 저 몸을 침대에서 일으킬까?

왜 이렇게 오줌은 자주 누는지 아픈 엄마가 안쓰럽다가도 큰 몸을 일으킬 때면 짜증이 나기도 하였다.

엄마를 침대에서 일으키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았다.

요령인지 엄마의 몸무게를 지탱하는 나의 힘이 부족했는지 그만 허리를 삐끗했다.

그때부터는 엄마의 아픈 몸이 아니라 내 짜증을 누르는 일이 나를 괴롭혔다.

겨우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있지만 어쩐지 끝이 없는 것 같다.

구토와 어지러움증은 도무지 나아지지 않고 원인도 잘 모르겠다는 병원 측의 대답이 마냥 답답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삶에 대한 의지인지 밥을 한 술이라도 더 뜨려고 애쓰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자꾸 안 먹겠다고 밥을 반 이상 남기다가도 다 드시라고 반찬을 집어주면 용케 한 그릇을 비웠다.

그렇게 엄마가 식사를 끝내고 나면 굶고 있는 나를 걱정하시며 얼른 나가서 밥 먹고 오라며 나를 보챘다.

'아직 덜 아픈가 보네. 내 걱정을 다하고.'

듣지도 못할 말을 홀로 속으로만 삼키고 양치를 해드린다.

틀니라 그런지 제대로 씹지 못한 음식물 덩어리들이 양치컵에 나올 때마다 힘들었는데...

그날은 왜 그랬는지 홀로 세면대에 서서 엄마의 틀니를 닦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다 깨진 엄마의 틀니를 닦으며 홀로 눈물을 훔쳤다.


생각보다 이런 날이 너무 빨리 왔다고...

엄마는 더 오래 우리 가족 곁에서 행복해야 한다고...

어서 회복하고 이곳을 나갈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엄마!

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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