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 속에 바보가 있다.
수많은 망설임으로 오락가락하다 겨우 결정한 설악산 등반. 쉽게 마음을 정하지 못한 것은 설악이 주는 경외감보다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이번이 아니면 당분간 설악산 등반은 가지 않을 거라는 선배들의 무심한 말들에 마음이 동했다.
'그래, 믿고 가보자.'
두렵다고는 했지만 설악산 공지가 난 후 곧바로 생수를 사다가 얼려 두었다. 고도감은 늘 걸리지만 언젠가는 스스로 극복해야 할 난관이기에 막연히 내가 설악 등반을 가는 걸로 결정할 때를 대비해두었다.
그런데 그 뿐이었다.
아직 여유가 있으니까 '천천히 준비하자.' 이런 마음이 일더니 결국 게으름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손 놓고 몇 날을 보내다 막상 등반 날짜가 가까워지니 그때서야 부족한 장비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게을러서 앞으로 등반을 제대로 할 수 있으려나?'
스스로 내 게으름이 조금 염려되었다.
부랴부랴 구입할 장비 목록을 짰다.
부족한 장비는 왜 이리 많은지...
릿지화와 헤드랜턴을 겨우 골랐다.
자일을 넣을 배낭이 필요해 사려고 했으나 선배가 주신다고 하니 괜히 미안스럽다.
이 나이에 남에게 주어도 모자랄 텐데...
받으려니 멋쩍다.
그렇게 며칠 후 등반을 몇 날 앞두고 갑자기 장염에 걸리고 말았다.
잠 못 이루고 화장실을 들락거리느라 몸이 축났다. 살다가 이런 증상은 처음인지라 하루에 죽 한 그릇을 어렵게 넘겼다.
하필 등반을 며칠 앞두고 이런 일이 생기다니...
한번도 탈이 난 적 없던 몸인데 속상했다.
병원을 가서 처방받은 약도, 링거를 맞아도 소용이 없었다.
어찌 일을 했는지 모르게 이틀이 갔다.
퇴근을 하니 주문했던 릿지화와 헤드랜턴이 배달되어 있었다.
박스를 뜯을 기운이 없어 쳐다만 보니 가지 못하는 설악의 등반 길이 아른거렸다.
갈까 말까를 망설이던 천화대와 별을 따는 소년들이 떠올랐다.
딸리는 기운에 따라간다고 하면 민폐가 되겠구나라는 생각에 등반을 포기했다.
못 간다고 결정을 하고 나니 가지 못한 등반 길에 대해 바보 같은 미련만 남았다.
참 어리석은 내 욕심이 부끄럽다.
마음을 비우려면 한참 멀었구나...
설악의 두 길은 아직 가보지 못했으나
이미 난 몸과 정신 모두 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몸과 마음 모두 설악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음을 아파 자리에 누워서야 다시금 돌아본다.
사진 출처 : 천화대, 류태범님
별을 따는 소년들, 김현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