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손도손 이야기

김치냉장고

by 김나라 NARA

김손도손이야기

1. 김치냉장고


김치냉장고와

함께 살게 된 지 4개월 정도 지났다.

유림과는 몇 번의 새해를 함께 보냈다.


"우리는 언제쯤 명절에 서로의 집을 방문할 수 있을까?"

“곧이지 않을까?”


유림은 해방촌 나 혼자 살던 집에 캐리어 두 개만을 들고 들어왔다. 그런지 1년 만에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새로운 집을 계약하던 날은 우리가 만난 지 정확히 2년 째 되는 기념일 이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면서 연애 초반에 으름장을 놓았던 것이 떠올랐다.




“너 나랑 결혼 해 줄 거야?”

“우리가 만난 지 2년 정도 되면 생각해 볼게!”


시간 참 빠르다 하면서 함께 살 집을 계약하고 나니 결혼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이 나라에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어떠한 법적인 약속도 불가능 한 것을 알고있다.




꽤나 많은 짐을 싣고 해방촌 가까운 집으로 이사를 하였다. (물론 그 대부분의 짐은 내 것이었다.)

좀 더 넓은 공간으로 옮기게 되자많은 것이 달라졌다. 욕실도 넓고 거실도 넓고 주방도 넓고 방도 많아졌다. 거실은 조금 어둡지만 한쪽 방에는 아침마다 햇살이 든다.


서울이 아닌 자연이 풍성했던 곳에서 자라 꽃과 나무를 가까이 하고 싶은 정서를 저절로 지니고 있다.

새로운 집을 꾸미는데도 그 고집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가구는 원목이고 집안 곳곳에 식물이 자리하고 있다. 유림도 이런 부분에 대해 공감해 주었다. 집에 놀러온 친구들이 공간을 보며 “성공했네~” 한다.

그러면 우리 둘은 머리를 긁적이며 와인과 안주를 꺼내온다.




서울에 산 지 7년 동안 몇 차례의 이사를 했지만 엄마가 이만큼 기뻐한 적은 없었다. 올해로 52세를 맞이하는 순분 씨는 이사를 하자마자 자동차와 김치냉장고를 사주었다. 정확히는 자동차를 사는 비용의 상당부분을 지원해 주었다. 이유를 물었다.


“몸집을 키워가면서 점점 큰 집으로 이사하는 집게처럼

우리 딸내미가 독립해서 알아서 잘 성장하는 것이 고마워서 그래.”


다음에는 더 큰집을 목표로 해보라 하신다. 괜히 울컥하며 돈 많이 벌 거라고 떵떵거려 봤다.




순분 씨의 김치 냉장고까지 들어오니 누가 봐도 보통의 가정집처럼 보였다. 뒤늦게 알았지만 김치 냉장고가 일반 냉장고 보다 비쌌다. 그런 김치냉장고를 사주고 나니 맘이 놓였던 순분 씨는 서울에 올라올 때마다 김치를 잔뜩 싸들고 왔다. 유림언니는 배추김치보다 무김치를 좋아하고 나는 턱 디스크가 있어서 무를 잘 씹지 못하지만 올해 김치 냉장고에는 무김치가 가득하다.




처음으로 엄마한테 커밍아웃했던 날도 명절이었다. 2016년 추석이었던가, 명절 전 날 할머니댁 이불에 나란히 누워 잠들기 전에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알수 없는 자신감에툭 고백을 했다.


"엄마 나 여자친구 생겼어."


우리는 보통의 모녀들과는 다르다. 엄마는 깨어있는 멋진 친구이기도 하다. 내가 여자를 만난다고 해도 당연히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예상과 달리 순분씨는 연휴 내내 입을 열지 않았다.


보통 명절이 그렇듯 할머니와 아홉 명이나되는 이모는 애인이 생겼니? 어떤 사람이니? 하는 질문을 던지고는 한다. 그 해에는 옆에서 과일을 깎던 순분씨의 표정이 살짝 굳어지는 것도 같았다. 내 고백에 대해서 잘 못 들은 것인지 아니면 무시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엄마의 무표정 뒤에 있던 고민들은 나중에 무표정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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