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분씨의 커밍아웃
김손도손이야기
2. 순분씨의 커밍아웃
5년 전 처음으로 만났던 여자 애인과는 2년의 돌풍 같은 연애 끝에 헤어졌다.
압구정 밤거리를 걷고 걸어도 쏟아지는 마음을 둘 곳이 없어 순분 씨에게 전화를 했었다.
추석에 했던 고백 이후 입을 꾹 닫고 피해 오던 순분씨였지만 마땅히 연락할 곳이 없었다.
“엄마..나 헤어졌어..”
눈물을 꿀떡꿀떡 삼키는 아이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잘됐네, 이제 정상으로 돌아와야지.”
순분 씨는 마침 잘 됐다는 듯 한 안도감의 목소리로 대답해 왔다.
그날 밤은 헤어진 전 애인이 아닌 순분 씨를 조금 더 미워했다.
2019년 봄에 한 에이전시로부터 광고 모델 섭외 연락이 왔다. 얼떨결에 오디션을 보고 외국에서 온 감독과 미팅을 하게 되었다.
sk-ii 라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화장품 회사가 만드는 캠페인 영상이었다. <기성세대와 자녀의 결혼 가치관의 갈등>에 관한 주제로 4개국에서 각 나라를 대표하는 가족이 출연해 다큐멘터리로 진행되는 광고영상이었다. 너무나 매력적인 주제이면서 동시에 나에게는 소중한 일거리 이기도 했다.
마침 감독도 레즈비언이었고 유년기를 자연 속에서 보냈다는 점 등이 나와 많은 부분 닮아 있었다. 미팅을 하며 우리는 짜릿한 동질감을 느꼈다. 내가 모델로서 적합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결국 최종 모델로 발탁 되었다. 받아 본적 없는 큰 금액의 모델료도 오갔다. 무엇보다 솔직한 내 모습이 광고에 나온다는 것은 꿈만 같은 일이었다.
한국의 장녀이면서 여자 친구를 사귀고 있는 바이 섹슈얼의 나는 이 나라를 대표하여 출연하게 되었다.
문제는 엄마가 함께 광고에 출연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일이었다. 순분 씨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나랑 광고 찍을래?”
“무슨 광고?”
“Sk-ii 알지? 피테라 에센스로 유명한거. 내가 예전에 사준 적 있잖아.”
엄마가 이 광고에 출연하게 되면 여자를 사귀는 딸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질 것이다.
예상대로 순분 씨는 너무나 부담스러워했다.
순분 씨는 내가 자란 마을의 부녀회장이며, 초등학생인 막내딸의 학부모이며, 좁은 지역사회에서 20년간 살아온 평범한 여성이었다. 갑자기 첫째 딸이 동성연애를 하고 있으며 결혼을 꿈꾼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가족은 물론 주위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까 두려워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엄마! 나는 앞으로도 이 활동을 계속해 나갈 테고 달라지는 것은 없을 거야. 내가 앞으로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남자를 만나도 나는 똑같은 사람이야.”
이기적이지만 설득을 하고 싶었다.
엄마도 함께 용기를 내 준다면 우리 가족은 천하무적이 될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 자식을 혼내면서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하는지, 네가 가고 싶은 길을 응원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 그게 가장 어려워서 마음이 힘들어.”
이 말을 하고 있는 엄마는 수화기 너머로 울고 있었다.
“미안해 엄마. 평범하게 못 살아서. 엄마를 이해해. 그런데 이게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우리를 울게 만드는 사회 탓이잖아. 나는 가족이라도 내 편이 되어 주길 바라고 있어.”
“엄마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에게는 아홉 명의 이모와 한명의 외삼촌이 있다. 할머니는 아들을 낳기 위해서 열여덟 살 때부터 마흔이 넘어서까지 그들을 낳으셨다. 순분 씨는 그 중에 일곱 번째이고 아들은 아홉 번째에 태어났다.
“이모들이 볼 텐데, 뭐라고 하지?”
“멋진 조카를 응원해달라고 하자.”
9명의 이모들은 엄마에게 자매이자 친구이고 든든한 버팀목 이다. 그렇게 가깝다 보니 더 큰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에 이른 월경을 시작 했을 때도 순분 씨는 그 이모들한테 먼저 소식을 알렸다.
광고에 나가길 결심한 순분 씨는 역시 이모들한테 전화를 돌렸다. 그리고 우리는 sk-ii와 함께한 광고를 촬영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