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러지
김손도손 이야기
4. 알러지
“어우..이렇게 심한 환자는 올해 들어 처음이네요. 일년 내내 이 상태면 수술 하셔야 해요”
작년 봄, 갑자기 꽃가루 알러지가 생겼다. 알러지 검사를 해보지 않아서 정확히 어떤 꽃인지는 모르지만 봄에 피는 어떤 종자식물 일 것이다. 훕훕한 공기가 바람에 섞여 들어오기라도 하면 새 이파리들의 향기가 슬며시 나는 것이 봄의 신호인가 싶어 기분이 좋다가도 금세 눈물이 고이고 재채기를 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음식을 잘못 먹은 줄 알았다. 당시 면역력이 떨어졌던 탓인지 점점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코가 쓰리게 막히고 콧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눈 앞 점막이 괴상하게 붉게 튀어 나오고 나서야 병원에 갔다.
주변에서 “서울 사람 다 됐네”라는 농담을 건네 온다. 대학 때문에 서울에 올라와 8년째 살고 있으니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과연 지방에서 상경한 사람들 중 ‘서울 사람’ 이라는 호칭을 좋아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십여 년을 산과 밭에 둘러싸여 살았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재채기를 하면서 나오는 눈물에는 억울함이 찔끔 섞여 있다. 앞으로 매년 환절기가 되면 눈물 젖은 재채기로 시작하며 고통을 겪겠지. 서울에 올라와 쌔빠지게 일한 결과가 알러지라니 억울하지 않은가!
“나 알러지래”
“조심 해야겠다. 면역력이 많이 떨어졌나 보네. 장에 좋은 균을 많이 섭취해야 한다.”
“유산균 먹고 있어”
“나라야 진정한 네 편은 친구, 부모도 아니고, 대장 속에 있는 유익한 미생물이다”
가족 카톡방 에서 아빠가 하는 말이다.
55세 종오 씨는 나와 살갑게 지내지는 않지만 어릴 적부터 정신적 지주를 담당하고 있다. 매사에 지나칠 정도로 열심히 일하면서도 봉사활동도 자주 하는, 세상 부지런한 탐구자 이자 고집이 세기도 한 중년 남성이다. 그의 예민한 입맛과 매사에 열정적인 성격을 첫째인 내가 물려받았다.
어릴 적 친척이 백혈병을 앓게 된 이후로 각종 민간요법이나 한의학 서적이 집에 쌓이기 시작했다. 그 중 첫 번째는 종오 씨가 93년에 서점에서 샀다는 <신약>이라는 책이다. 그는 가족들의 건강을 직접 챙기려는 마음에 <신약>을 기초로 죽염을 제조하는 회사인 ‘인산가’를 찾아갔고, 고향에 인산가 대리점을 차리게 되었다.
우리 집에서 죽염은 만병통치약으로 통했다. ‘민간요법’ 이라는 것. 21세기 현대 의학에 익숙한 우리들에게는 설득력이 떨어질 수 있다. 그렇지만 아홉 번 구운 소금이나 몸의 자연치유력을 이끌어 내는 식단을 통한 변화는 어린 나에게도 참으로 신비로왔다.
종오 씨는 귀에 중이염이 있었는데 죽염을 넣어서 완치 했으며, 3살 터울 남동생 동혁의 축농증은 죽염수(죽염을 탄 물)를 콧구멍에 뿌려서 완치되었다. 또한 태어나서부터 치약이 아닌 죽염으로 양치질을 해온 어린 사촌동생은 중학교에 입학하도록 충치 하나 생기지 않았으며, 종오 씨도 죽염 덕분에 튼튼한 잇몸을 가지고 있다. 그 때 나는 죽염의 유황 냄새가 싫었던 사춘기였고 게을렀던 탓에 충치가 많았지만 다행히 잔병 치레가 없이 자랐다.
올해로 28세 김나라. 없던 비염이생기고 알러지가 생기고- 서울에 오고 나서야 질병으로부터 위협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아픈 건 몸이요 그리운 건 고향이다. 죽염을 더 먹을걸 그랬다.
건강검진 통지서를 받고 나니 드디어 자기 몫의 건강을 챙기는 어른이 되는 기분이다.
얼마전에 치과 검진을 받았다. 의사는 충치가 있는데 단순 치료 수준이 아니라며 금니를 추천 했다. 충치가 3개인데 금니는 하나에 30만원을 한다. 다시 눈물이 찔금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