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4
모종의 책임감으로 살아간다. 장대한 목표를 붙잡고 살아가 본 적은 없지만 열정은 단발적으로 일어난다. 일을 시작했으면 끝까지 잘해야지. 이 분야에서 인정을 받아야지. 알바를 해도 역대 알바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수행적 목표를 갖고 성실히 임했다.
<성실, 검소, 근면>이 우리 집 가훈이었다. 덕분에 업무 능력이 좋은 편이라고 스스로를 자부했다.
능력이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못하는 게 없구나” 하는 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한 요리는 맛있어야 하고, 내가 찍은 사진은 구도가 좋아야 했다. 와인을 좋아하기로 한 뒤에는 와인 맛을 구별하기 위해서 공부를 하기로 했다. 이러한 완벽주의 같은 것들이 나를 냉정하게도 만들었다. 계절이 시작되는 바람 한 끝에 코 끝이 찡해지는 마음이 있었음에도, 새 계절을 느끼기도 전에 해내야 하는 것들을 정리하느라 바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여전히 바쁘냐’라고 하면 ‘작년보다 더 바쁘네’ 한다. 내후년 서른에 가도를 달리고 있는 듯 하지만 잘 쉬는 능력에 대한 능력치가 없음에 한탄한다.
타고난 성질이 차분하고 또 차분하기 때문에 들을 수 있는 작은 소란들을 사랑했는데 한동안 들을 수가 없어 슬펐다. 구석 자리에 앉아 멀리 있는 소리를 들으려 노력하며 사놓고 읽지 못했던 책을 꺼냈다.
마음껏 누가 쓴 글을 읽고, 그 한켠을 내 마음에 담을 수 있는 시간이 참 귀하다. 그 귀한 일을 할 여력이 없다고 생각해서 그간 덮어두었나.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글을 쓰는 동안의 ‘솔직한 나’라는 내 모습에 심취한 적도 많았다. 짜릿한 문장을 적어냈을 때의 쾌감도 좋았다. 몰아치듯 두어 달을 바쁘게 일하다가, 애인이 본가에 간 기회를 틈타 혼자 있는 시간에 남들의 글을 줄줄 읽어 내려가니 그동안 잊었던 활자가 건드릴 수 있는 감정이 쿡 찔렸다.
그리 감동적인 구절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남들의 활자에 부러워 눈물이 다 난다. 울멍울멍 마스크 속으로 떨어지는 뜨뜻한 눈물들을 가리려고 마스크를 한껏 더 올렸다. 겨울도 아닌데 안경에 김이 꼈다가 사라졌다. 아, 바다 근처에 가서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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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친구의 글을,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기분 이상한 일이었다. 번잡스러운 패션 블로그를 운영했던 나와 달리, 솔직한 문장들과 순간의 사진들을 블로그에 열심히 기록해온 친구가 있어 오랜만에 블로그를 찾아 들어갔다.
분명 종종 들어가서 봤었는데, 블로그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아 저장해 두지 않은 나를 질책하며 친구들 이름을 검색해서 찾아냈다.
대학 동기로 만났지만 나와는 다른 스타일이라 생각했던(그녀도 나와 친해질 줄 몰랐다고 한다) 예은은 사무적인 일을 곧잘 하면서도 감정에 솔직하고, 즉흥적인 상황도 즐길 줄 알고 술을 사랑하며- 또, 남들이 자는 시각 먼저 나와 일출보기를 사랑하는 친구다.
아침잠이 많은 나는 같이 일출을 보는 것을 성공한 적이 없다. 3년 전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같이 타면서 4일 내내 봤던 뜨고 지던 해가 아마 전부일 것이다.
예은이 직접 찍은 필름 사진을 올리는 인스타그램 계정과 블로그에 종종 내가 등장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사실은 많이 기분이 좋은 일이라 자주 들어가서 구경하곤 했다. 항상 사진을 찍히는 일을 해오다 보니, 먼저 찍어달라고 하지 않아도 자신만의 시선에 담고 싶어 이미 사진을 찍고 있는 친구가 있어서 참 좋았다. 자신만의 구도가 분명하고, 좋아하는 색이 있다. 순간의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알고, 깔깔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속으로 진한 감동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는 그녀와 함께 하는 여행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어느 날은 전시를 보면서 예은이 눈물을 핑 하고 뱉길래, 그 모습을 보고 미더덕이라고 놀린 적이 있다.
눈물을 참지 않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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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유림과 함께하는 컨텐츠가 자주 소비되던 시기가 있었다. 혈연 중심의 이성애적 가족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주목받기 시작했고, 가정의 달이었고, 프라이드먼스였다.
내가 유림을 만난다는 사실이, 그 삶이 “걔네 실제로 사귀는 거 맞아? 레즈 코인 아니야?”라는 의심 어린 말을 들 수 있는 모습이라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우리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안온해 보일지언정, 함께 살더라도 사회적으로 보호자가 될 수 없으며,
그간 냈던 축의금을 돌려받을 수 없으리라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겠지.
유림과 침대에 누워 우스갯소리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있잖아 만약에 내가 사고사로 죽거나 예상치 못한 일로 갑자기 생명을 잃게 되었을 때, 그게 자살로 비춰지거나 하면, 우리는 그때서야 뉴스에 날 수도 있겠어”
“그게 무슨 말이야?”
“<이 사회가 낳은 죽음,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의 일원이 사망하였을 때 남은 보호자가 할 수 있는 스탠스에 주목해야 합니다! 유명 레즈비언 커플의 안타까운 죽음. 사회를 비관한 그녀의 죽음 뒤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어때?”
“푸하하하하 그럴 수도 있겠다.”
“그치 그러면 진짜 웃기겠지.. 근데 이 농담은 본인들만 할 수 있는 거 알지”
“응 좀 씁쓸하네”
“그렇지 뭐”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그때 이후로도 여전히 누군가의 죽음이 있어야 팽팽하던 매듭 같은 것들이 하나씩 튿어지는 조건부 같은 변화들은 남은 이들을 약간 조급하게 만드는 것 같다.
위에서 언급했던 일명 “레즈 코인” 사건에 대해서 토로했을 때, 예은이 다음날 인스타그램에 남겼던 글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 나는 이 친구가 하는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해 본 적이 단 한순간도 없다. 그런 나라가 자꾸만 마음을 꺼내서 보여주어 이건 순간의 착각이나 가짜가 아니며 느네들과 다른 모양이 아니라고 그만 증명하려 애써도 되는 세상에서 살아갔음 좋겠다,,~~~” “문제시 쑥떡 아이스 먹음”
친구야 우리는 목이 막히면 컥컥거릴 수 있는 사회에 사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