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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임 Mar 03. 2021

12. 육아라는 게임

끝판대장을 행해 오늘도 지지고 볶는다

 

  드디어 춘삼월. 꽃이 피고 새가 우는, 날씨는 좀 춥지만 마음은 조금씩 녹진녹진해지는 3월이 왔다. 긴급 휴원령이 아니라면 당분간은 방학이 없을 예정이라는 소리다. 3월 2일. 2호가 먼저 어린이집 등원을 했다. 1호는 3일부터 등원했다. 보통은 1호와 둘이 보내는 하루는 그렇게 힘들지가 않다. 대화도 통하고 눈치도 있고 제 몸은 제가 움직이니 크게 용쓸만한 일이 없다. 그런데 그날은 왜 그랬을까.     


  2호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1호에게 오늘의 스케줄을 일러줬다. 오전에 엄마는 집안일을 좀 해야 하니까 너는 약속된 시간인 12시까지 시청각교육-이라 쓰고 너튜브 시청이라 읽는다-을 하고, 점심을 먹고 머리를 자르러 가자. 차 엔진오일도 갈고 마트에 잠시 들러 맛있는 것도 좀 사고 나면 이든이 데리러 가면 되겠다. 전화벨이 울린다. 아빠다. 아빠가 집에 들르겠다고 한다. 아빠랑 같이 점심을 해야겠구나 생각이 든다. 아빠가 오시고는 일정이 약간 늦어졌다. 없는 찬이지만 그래도 아빠 밥을 준비하느라 잠시의 쉴 틈이 없어졌다. 그 사이사이 시청각 교육 시간을 넘긴 1호는 “같이 놀자”를 무슨 랩처럼 계속 내뱉는다. 부랴부랴 서둘러 미용실을 찍고 마트를 휙 돌고 자동차 정비소를 들르니 어느새 2호 하원 시간에 임박했다. 2호를 픽업하고 집에 돌아오니 4시가 조금 지났다. 두 녀석이 간식 타령이다. 간식을 내어주고 ‘하, 잠시 앉아서 쉬어야겠다.’ 생각하는 순간 내 생각이 말로 입 밖으로 흘러나가기라도 한 것처럼 한 녀석씩 돌아가며 나를 부른다. 나는 다시 간절한 목소리로 말해본다. 


나 : 엄마 조금 피곤한데 딱 10분만 쉬자. 10분 동안만 엄마 부르지 말고 있어 줘. 제발. 

1호 : 엄마 왜 피곤한데? 

나 :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잠시도 쉬지를 못했어. 조금만 좀 쉬었다가 저녁 준비해야지.     

 

2호는 우리의 이런 대화에 관심조차 없다. 느낌상으론 하루에 만 오천 번 나를 부르는 것 같다. 숨이 막힌다. 하루 중 딱 10분이라도 입 딱 붙이고 있고 싶은데 우리 집 두 녀석은 그런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들이 다시 잠들 때까지 하루 종일 이어지는 육아의 현장은 마치 끝나지 않는 게임같이 느껴진다. 먹이기, 씻기기, 기저귀 갈기, 끝말 잊기 하기, 색칠놀이 하기, 놀이터 가기…. 이번 판 지나면 다음 판이 기다리고 있고, 아까 했던 판 같은데 또다시 나오고, 레벨에 상관없이 난이도는 들쑥날쑥이고, 여느 게임과 마찬가지로 레벨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새롭게 어려운 판이 나타난다. 한 판씩 넘길 때마다 해냈다는 뿌듯함(?)도 있지만 이긴 것도 진 것도 아닌 것 같은 찜찜함과 너덜거림이 남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끝판이 어딘지 모른다는 거다. 요즘 킬링 타임용으로 간간히 하고 있는 로직도 300판이 끝이라고 딱 정해져 있는데, 한 판 한 판 부술 때마다 그 300이라는 숫자에 가까워지고 있음에 희열을 느끼곤 하는데 육아라는 게임은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누구는 내가 그만두는 순간 육아는 끝나는 거라고 하던데, 아직 우리 집 똥강아지들은 10세 미만이니까 최소한, 백만 번 양보해도 최소한 15년은 이 게임을 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육아라는 게임도 한 판 한 판 깨부술 때 내가 해냈다는 벅참과 기쁨이 몰아칠 때도 있다. 이 게임에서 내가 최선을 다해 열심히 키우고 있는 두 마리의 똥강아지 캐릭터가 가져다주는 행복과 기쁨은 실지로 게임 캐릭터를 레벨 업할 때 느껴지는 보람과 성취감에 비할 바가 못 될 것이다(게임을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그러리라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무심코 아이가 던진 “엄마 사랑해” 한 마디에, 나를 보고 씨익 웃는 그 빛나는 얼굴에 도돌이표 같은 게임으로 지친 영혼이 잠시나마 위로를 받고 다시금 생명을 “1” 획득하고 전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며칠 전 본 어느 육아 관련 프로그램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아이들에게 부모라는 우주는 영원하다는 것을 보여주세요.”     


  너무너무 멋지고 벅찬 말이라서 화면을 캡처해 뒀었다. 3월 2일, 유난히 나를 숨도 못 쉬게 잡아쪼으던 그날의 나는 영원은커녕 비좁아 터진 우주였을 테다. 결국 아이들에게 오늘따라 왜 그러냐며 그만 좀 하라고 화를 냈고, 아이들은 이내 주눅이 들어 방으로 들어가 즈이들끼리의 놀이를 이어갔다. 별도 많지도 않다. 딱 두 개 떠있는 그 우주가 너무너무 비좁다. 입으로는 ‘영원’을 이야기하지만 끝판대장을 향해 나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운 날에는 한없이 쪼그라들어 달랑 두 개 있는 별을 구석으로 몰아넣고는 한다. 우주는 지금도 계속해서 팽창해 나가는 중이라고 하는데 나는 왜 이리 변덕스럽게 어느 날은 늘었다가 어느 날은 쪼그라들었다가 하는지 모르겠다. 역시 끝판대장을 향해 나아가는 길은 멀고도 멀고도 또 멀고도 험하다. 온갖 희로애락을 거치고 거치고 거치고 또 거친 뒤라야 어슴푸레하게나마 손에 잡아 보려나. 


  나에게 한 소리 듣고 숨죽여 있던 아이들이 아빠의 퇴근을 진짜 강아지들 마냥 반긴다. 달려 있지도 않는 꼬리가 요동치는 것이 보일 정도다. 이제 막 신발을 벗은 아빠에게 "놀아줘"를 외치며 매달린다. 반갑다. 나도 매달리고 싶을 정도로 반갑다. 그 무엇보다도 현란하게 흔들어재끼고 있는 나의 꼬리가 보이느냐, 나의 게임 파트너야. 이제 나의 조이스틱을 너에게 넘길 차례가 되었구나. 하루 24시간 개의 별을 스치듯 지나가는 혜성 같은 남편이 좀 더 자주, 천천히 우리의 별들 곁에 머물러 주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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