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무슨 서류에 동의하냐고 묻는 네모 칸에 체크할 때, 이름 쓰고 서명할 때, 이건 어떻게 쓰냐고 애가 물어볼 때,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무슨 무슨 동의서 적어낼 때, 장 보려고 메모할 때, 아이 학습지 봐줄 때…. 펜을 손에 쥐는 일이 고작 이 정도라니. 글씨가 왜 이렇게 안 써지나 했는데 이유가 있었다.
이 글도 휴대폰에다가 엄지손가락 두 개로 적고 있다. 종이에 적어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연필 들기도 전에 손가락이, 손목이 아픈 것 같고 힘없는 실지렁이 같은 글씨체가 떠올라 글자 쓸 마음이 나지 않는다. 편집하기도 쉽고, 어두운 방에서도 쓸 수 있고, 생각나면 어디서든 꺼내들 수 있고, 보기에도 깔끔하고, 업로드도 바로 할 수 있고…. 연필 대신 손가락을 들 이유가 더 많다.
그래도 공책에 글자를 좀 적어봤다. 필사에 관한 어느 분의 글을 읽고 어떤 신성한 행위처럼 여겨지는 그것을 해보기로 마음을 조금 먹어봤다. 아 그런데 글자가.. 글자가 왜 이렇지? 꼭 엄마 글씨 같네. 간혹 스치듯 거울을 봤는데 엄마가 그 안에 있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나이 들수록 자꾸 엄마 같아지는 것 같은데 글씨체까지 닮아가다니!
엄마는 스마트폰은 써보지도 못했지만 지금의 나와 별반 다를 것 없이 글자를 적을 일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뭔가 메모를 하거나, 신문에 난 십자풀이를 할 때 말고는. 그래도 엄마는 신문 여백이나 공과금 고지서 귀퉁이에 늘 뭔가를 끼적거렸다. 알 수 없는 글자들과 가로세로 그어놓은 어지러운 선들은 더 배우고 싶었던 열정의 타고 남은 재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엄마는 경북 영천의 깡깡촌에서 나고 자랐다. 영천 시내에서도 버스로 한 시간은 더 가야 하는 곳이었다. 내게 그곳은 시골 외갓집의 낭만과 추억을 남긴 곳이지만 엄마에게 그곳은 배움의 기회를 앗아가고 보릿고개를 이겨야 하는 척박한 곳이었을 테다. 6남매 중 셋째였던 엄마는 초등학교를 겨우 마쳤다. 초등학교를 마친 후 교복 입고 고개 넘어 중학교 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그렇게나 그렇게나 울었다고 했다. 엄마는 학교 대신 부엌에 들어가 작은 체구로 부뚜막 위에 올라앉아 밥을 짓고 찬을 해서 동생들과 농사짓는 외할매, 외할배를 먹였다.
그러다 19살이랬나, 경산에 제일모직 공장에 취직을 했고 4년간 기숙사 생활을 하며 돈을 벌었다. 교대 근무였지만 틈나는 대로 세계 명작을 읽고, 신문에 있는 한자를 익혔다고 했다. 엄마는 신문에 난 한자를 거의 다 알고 있었다. 어린 나는 엄마들은 원래 다 아는 것인 줄 알았다. 그렇게 못 배운 아쉬움, 아쉬움이라는 말로도 표현 안 되는 그 어떤 마음을 내 돈 벌어서 달래던 그 시절이 엄마 인생이 가장 꽃피던 때였을 거다.
여자에게 결혼은 무덤 이랬던가. 결혼하고 나서는 이내 연년생 남매 키우느라 본인의 배움 따위 저 장롱 안에 묵은 이불처럼 묵혀버렸다. 대신 내가 고등학교 갈 때, 대학생 되었을 때, 대학원 졸업할 때 엄마는 내 얼굴을 쓰다듬으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러다 어느 날 몹쓸 병이, 엄마를 집어삼켰다. 엄마는 가끔 한숨을 어디까지나 내쉬며 "하루도 내 날이다 싶은 날이 없다."라며 사나운 팔자를 털어버리고 싶은 만큼 힘을 주어 저 말을 내뱉었다. 그럴 때면 엄마가 안타깝고 안쓰러우면서도 '자기 인생인데 왜 다른 사람한테 위탁해서 "내 날"을 찾으려고 하는 거지?' 하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엄마가 되고 보니 저 생각을 생각만으로 남겨둔 게 무척 다행스럽다.
나는 엄마보다 훨씬 많이 배웠고 세상도 훨씬 좋아졌지만 엄마가 된 지금 엄마처럼 살지 않기가 큰 목표가 되었다. 그래서 나 스스로 “내 날”을 만들려고 애쓸 때면 그건 혼자 만들 수 있는 날이 아니라는 뼈아픈 깨달음만, 아빠와 오빠와 나는 왜 엄마의 삶에는 그토록 무신경했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들만 남는다.
다행히 나의 남편은 나의 삶에 관심이 많다. 나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과 행복에 늘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나 스스로 "내 날"을 찾아먹으려 하면 그 어떤 이유나 토도 달지 않고 적극적으로 협조한다. 며칠 전 나 홀로 휴가도 다녀왔다. 남편은 용돈과 손편지까지 쥐어주었다. 가지 마라며 우는 애들 억지로 떼놓고, 지척에 집 놔두고 돈 주고 집 밖에서 혼자 자고 들어오는 나를 보고 엄마는 뭐라고 말할까. 잘했다고 할까, 아니면 애 엄마가 뭐하는 짓이냐고 할까.
휴가를 가야지 하고 마음을 먹고 나면 늘 어디서 잘까에 제일 먼저 답을 달아야 한다. 새로운 곳을 갈까, 그냥 갔던 곳을 갈까 숙박업소 앱을 켜서 여기저기 검색하다 결국 익숙한 곳을 찾아 예약을 한다. 엄마가 있었다면 더 익숙한 그곳, 예약도 돈 낼 필요도 없는 엄마 집을 찾아갔겠지. 애들도 다 놔두고 늘 집에 들어서면서 하는 그 말 “엄마, 나 왔어.” 하고 오롯이 딸로 돌아가 속에 있는 묵은 짐을 내려놓고 엄마 곁에 누워 구불거렸겠지. 그러다 엄마 배 고프다, 한 마디에 익숙한 밥상을 받고 배를 채우고 또다시 엄마랑 누워 구불거리다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랬겠지. 그렇게 “내 날”을 완성시켰겠지.
글씨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어쩌다 여기까지 왔지. 엄마 생각은 늘, 뭘 해도 난다. 엄마가 되고서 보니 엄마의 빈자리가 자꾸자꾸 돌아다 보인다. 글자 몇 개 끄적여 보려 마음만 먹는데도 돌아다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