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다 같이 즐겁고 싶습니다
설 연휴가 지나고 우리 집 최 씨들은 각자 자기가 가야 할 곳으로 가고 평온한 평일이다. 이번 설은 지금 이 시간만큼이나 평온하게 지나갔다. 이런 저런 연유들로 차례상 차리기 없이 지나갔다. 결혼하고 처음이다.
"엄마(시엄니)가 최 씨 집안에 시집와서 차린 제사상만 300번이 넘는다는데 아빠(시압지)한테 이번 명절은 시원하게 여자들 2박 3일 휴가 좀 보내 줍시다 하고 얘기해 봐. 여자들 없이도 음식을 사다가 하든, 알아서 지지고 볶든 대충이라도 준비해서, 아침에 일찍 깨서 상 차려 차례 지내고 손님 맞으면 ‘아 우리 시아버지랑 남편은 조상 모시는 데에 진심이구나.’하고 인정해줄게."
내 인정 따위가 뭐 그리 대수겠냐마는 제사를 대하는 본인들의 진심을 알아차릴 수 있는 계기 정도는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한 얘기였다. 어느 종갓집에서 맏며느리는 병사하고 아래로는 줄줄이 이혼에 음식 할 여자가 없어지니 목숨같이 지키던 제사를 다 없앴다고 하는 얘기도 들어본 적이 있지 않은가. 거기까지인 것이다. 결국 남의 자손 손 빌려서 제 집 조상 모시려는 고약한 심보 말이다. 그렇게 조상 모시기를 목숨같이 여기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곤 대체로 다리 휘어지게 차려놓은 상 앞에 엎드려 자손들 잘 보살펴 달라, 행복하게 해 달라 비는 일이다. 민망하지 않은가. 어느 배우는 다 차려놓은 상에 숟가락만 올렸을 뿐이라며 자신의 수상에 대한 겸양을 표현해 역시 인성이 다르다는 칭찬을 받았는데, 절 하는 사람들은 다 차려 놓은 상에 숟가락도 올리지 않으면서 어쩜 그리 당당하게 "조상을 잘 모셔야지."라고 말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누구는 며칠 전부터 장 봐다가 손질하고 하루 종일 서서 기름 뒤집어써가며 지지고 볶고 뒤집는데, 누구는 TV 앞에 앉아 밤 몇 개 치고 이거 내와라 저거 내와라 하는 풍경은 이제 그만 보고 싶다.
작년 엄마 제사 무렵 조카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을 했다. 오빠가 이번 제사는 지내지 못하게 됐다고 연락이 왔다. 그래서 내가 우리 집 식구들과 간단히 지냈다. 작은 상이었지만 엄마가 좋아하는 나물 무치고, 엄마가 좋아하는 배 올리고 아이들과 절을 했다. 절을 하고 나자 1호가 외할머니한테 할 얘기가 있다고 했다.
1호; 할머니, 사랑해요.
태어나기도 전에 떠난, 한 번 만나본 적도 없는, 사진과 이야기 속에서만 존재하는 할머니에게 사랑고백이라니. 우리 엄마 행복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지 않을까. 이를 다 드러내고 활짝 웃고 있을까. 왜 이리 일찍 떠났을까 애통해하고 있을까. 코가 시큰거리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늘 그럴 순 없겠지만 그래도, 제사상을 받는 사람도 차린 사람도 모두 모두 훈훈하려고 그 상 차리는 게 아닐까. 다음번 명절에는 "모두"가 즐거울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