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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임 Feb 17. 2021

10. 제사에 대한 진심을 알아봅시다

모두가 다 같이 즐겁고 싶습니다

  

외할머니 밥상 덮치는 2호


  설 연휴가 지나고 우리 집 최 씨들은 각자 자기가 가야 할 곳으로 가고 평온한 평일이다. 이번 설은 지금 이 시간만큼이나 평온하게 지나갔다. 이런 저런 연유들로 차례상 차리기 없이 지나갔다. 결혼하고 처음이다.

 

  아빠는 4남 2녀 6남매 중 셋째고, 세 번째 아들이다. 형제들은 모두 지척에 살고 있었고, 명절이면 엄마는 둘째 큰엄마와 하루 전날 큰집에 가서 음식을 해놓고 오곤 했다. 내가 기억하는 첫 째 큰엄마는 덩치 요량하고 손이 참 작고 음식 솜씨가 없었다. 4형제 가족만 해도 아이 어른 하면 스물이 훌쩍 넘는 대식구가 모이는 명절인데도 상에는 집어먹을 것이 없었다. 밥상에도 명절이라 준비한 음식을 제하면 푹 익어서 시큼하기까지 한 김치뿐이었다. 일을 하셨던 분이라 이제야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

  스무 살 지난 어느 해인가, 이제 더 이상 큰집에서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오래전부터 큰집의 사촌 언니 둘은 교회를 다녔다. 큰엄마는 그 딸들을 늘 못마땅해하시더니 큰엄마도 교회를 다니기로 했다며 제사를 더 이상 지내지 않는다고 했다. 어른들 간에 어떤 대화 혹은 다툼이 오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당장 다가오는 할머니 할아버지 제사가 엄마는 염려가 되었나 보다. 한동안 엄마는 할머니 할아버지 제삿날이면 장을 봐다가 나물을 하고 탕국을 끓이고 과일을 한 두 가지 놓고, 모두 잠들고 난 밤에 혼자 식탁에 상을 차렸다. 절에 열심히 다녔던 엄마는 절에서 하던 것처럼 조용히 어둠 속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아빠에게 말하지 않았던 건 본인들 조상, 부모 제사를 형제간에 니미락 내미락 하고 있는 형편이니, 말해봐야 괜한 자존심에 좋은 소리 안 할 거란 것을 알았기에 그랬겠지. 어쨌든 엄마는 엄마만의 방식으로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께 진심을 다 했다.

  한동안 제사와는 인연이 없이 지냈다. 그러다 장손과 결혼을 했다. 시댁은 일 년에 기제사 두 번, 명절 차례 두 번 이렇게 상을 차린다. 옛날에는 기제사를 일 년에 열두 번도 더 지냈다고 한다. 그랬다고 한다. 결혼하고 처음은 오는 사람도 없는데 무슨 음식을 그리도 많이 하시는지 하루 종일을 기름 뒤집어써가며 서있었다. 홀몸도 아니라 허리가 휠 것 같았다. 요즘은 많이, 참말로 많이 변했다. 기제사는 과일이랑 나물이랑 우리가 먹고 싶은 음식을 놓고 지낸다. 어떤 때는 치킨, 어떤 때는 피자, 어떤 때는 롤케이크 이런 것들. 명절에는 찾아오는 친지들이 있으니 그렇게는 못하지만 많이 간소해졌다. 그래도 뭔가 특별한 것을 한다는 것 자체가 피로를 유발한다.

  남편은 장남에 장손이다. 결혼할 때만 해도 제사를 아주 중히 생각했다. 결혼 7년 차, 제사가 중하다던 본인도 내가 알려주지 않으면  날짜도, 누구 제사 인지도 알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많이 변했다. 어쩌면 본인의 제사에 대한 진심과 태도를 알아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남편에게 이런 말을 했다.


  "엄마(시엄니)가 최 씨 집안에 시집와서 차린 제사상만 300번이 넘는다는데 아빠(시압지)한테 이번 명절은 시원하게 여자들 2박 3일 휴가 좀 보내 줍시다 하고 얘기해 봐. 여자들 없이도 음식을 사다가 하든, 알아서 지지고 볶든 대충이라도 준비해서, 아침에 일찍 깨서 상 차려 차례 지내고 손님 맞으면 ‘아 우리 시아버지랑 남편은 조상 모시는 데에 진심이구나.’하고 인정해줄게."
 
  내 인정 따위가 뭐 그리 대수겠냐마는 제사를 대하는 본인들의 진심을 알아차릴 수 있는 계기 정도는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한 얘기였다. 어느 종갓집에서 맏며느리는 병사하고 아래로는 줄줄이 이혼에 음식 할 여자가 없어지니 목숨같이 지키던 제사를 다 없앴다고 하는 얘기도 들어본 적이 있지 않은가. 거기까지인 것이다. 결국 남의 자손 손 빌려서 제 집 조상 모시려는 고약한 심보 말이다. 그렇게 조상 모시기를 목숨같이 여기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곤 대체로 다리 휘어지게 차려놓은 상 앞에 엎드려 자손들 잘 보살펴 달라, 행복하게 해 달라 비는 일이다
. 민망하지 않은가. 어느 배우는 다 차려놓은 상에 숟가락만 올렸을 뿐이라며 자신의 수상에 대한 겸양을 표현해 역시 인성이 다르다는 칭찬을 받았는데, 절 하는 사람들은 다 차려 놓은 상에 숟가락도 올리지 않으면서 어쩜 그리 당당하게 "조상을 잘 모셔야지."라고 말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누구는 며칠 전부터 장 봐다가 손질하고 하루 종일 서서 기름 뒤집어써가며 지지고 볶고 뒤집는데, 누구는 TV 앞에 앉아 밤 몇 개 치고 이거 내와라 저거 내와라 하는 풍경은 이제 그만 보고 싶다. 


  작년 엄마 제사 무렵 조카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을 했다. 오빠가 이번 제사는 지내지 못하게 됐다고 연락이 왔다. 그래서 내가 우리 집 식구들과 간단히 지냈다. 작은 상이었지만 엄마가 좋아하는 나물 무치고, 엄마가 좋아하는 배 올리고 아이들과 절을 했다. 절을 하고 나자 1호가 외할머니한테 할 얘기가 있다고 했다.

1호; 할머니, 사랑해요.

  태어나기도 전에 떠난, 한 번 만나본 적도 없는, 사진과 이야기 속에서만 존재하는 할머니에게 사랑고백이라니. 우리 엄마 행복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지 않을까. 이를 다 드러내고 활짝 웃고 있을까. 왜 이리 일찍 떠났을까 애통해하고 있을까. 코가 시큰거리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늘 그럴 순 없겠지만 그래도, 제사상을 받는 사람도 차린 사람도 모두 모두 훈훈하려고 그 상 차리는 게 아닐까. 다음번 명절에는 "모두"가 즐거울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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