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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임 Feb 10. 2021

9. 명절은 왜 있는 걸까요

명절 보너스가 살렸다

설날


   우리 집은 코스트코 바로 앞에 있다. 문 열고 몇 발자국만 나가면 코스트코가 있다. 아침 9시 30분이면 주차장 문이 열리고, 10시면 매장이 문을 연다. 9시 30분이 되기도 전에 두 군데 있는 주차장 입구에 차들이 줄을 선다. 매일같이 펼쳐지는 광경을 보며 “아이고, 마트에 무슨 꿀이라도 발라놨나. 문도 열기 전에 무슨 줄을 이리 서노.”라고 중얼거린다. 장사하는 사람들, 서둘러 어딜 가야 하는 사람들 제각각 사정은 있을 테지만 늘 같은 모습을 보는, 문도 열기 전에 마트 문 앞에서 기다려본 일이 없는 나에게는 어색한 풍경이다. 내일부터 설 연휴다. 며칠 전부터 입구에 몇 대씩 줄을 서던 차들이 우리 집 앞을 지나 저어 멀리까지 줄을 섰다. 오픈 시간이 한참이나 남았지만 마트 직원이 나와 마트 앞 사거리 교통정리를 한다. 마트에 들어가려는 차량 행렬은 늘었다 줄었다 하면서 하루 종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코로나 19로 올 설은 경기도에 사는 오빠 네도 내려오지 않고, 서울에 일 때문에 가신 시어른들도 못 오신다고 연락이 왔다. 5인 이상 집합 금지라 이번 명절은 다들 조용조용히 지나가나 보다 했다. 그런데 또 저렇게 북적이는 마트를 보면 어떤 이들은 명절 준비에 바쁜가 보다 한다. 어릴 때 명절 준비는 어른들의 몫이니 생각해 본 적이 없고, 어른이 되어서도 명절을 그렇게 대단히 여겨본 적이 없다. 어느 때부터 차례 모시러 새벽같이 일어나 가던 큰집도 안 가기 시작했고, 회사에서 주는 선물이 있으면 받고, 달랑 하나 있는 조카 용돈 조금 쥐어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엄마가 있을 땐 오랜만에 집에 찾아온 아들 네 뭐라도 집어먹을 게 있어야지 하면서 음식 장만하는 것을 거들어주던 것이 전부다. 그래 봐야 고작 하룻밤 자고 갈 식구들이라 엄마 말로 “자다 일어나서도 한다.”라고 할 정도로 음식을 적게 했다.      


  일 년에 두 번, 민족의 큰 명절이라는 설과 추석. 요즘 명절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결혼하고 차례음식을 준비하기 전까지 명절은 그냥 쉬는 날이 줄지어 붙어 있는 그런 날이었다. 가끔은 마트나 시장이 북적거리고 TV 속에서도 인사를 나누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을 보면 우리 엄마 아빠는 왜 찾아갈 곳도 찾아오는 이도 없을까, 나는 왜 인사하러 갈 사람도 없을까, 뭔가 잘못 살아서 그런 걸까 하는 생각을 하던 때도 있었다. 지금은 그런 생각 전혀 하지 않는다. 아빠는 형제가 많아서 명절에 다 모이면 어른 아이 다해서 서른 명이 훌쩍 넘었다. 같이 어울려 놀기만 했던 그 시절은 즐거웠다. 지금 사촌형제들은 집안 경조사 때나, 어쩌다 휴가 때 만나거나 아빠를 통해 간간이 소식을 전해 듣는다. 사촌이라고는 달랑 한 명, 저어기 멀리 경기도에 살고 있는 외사촌 형이 있는 우리 아이들은 명절을 어떻게 기억할까.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세배하는 법을 배우고, 베씨 머리띠를 만들어 보고, 만두 만들기를 해보고, 송편도 만들어 보고 그렇게 평소에 안 하던 체험을 하는 그런 날이라고 느끼게 되려나.     

 

  전염병만 아니라면, 만나고 싶으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을 정도로 교통이 좋아졌고,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들을 먹을 수 있고(너무 먹어서 탈이지), 내가 가고 나거든 그 뒤는 너희가 알아서 하라시며 차례를 숙제처럼 꾸역꾸역 모시고 있는 이 시대에 명절은 왜 있는 것일까. 차례 상 앞에 엎드려 자손들 잘 보살펴 주십사 하지만 대개 조상들은 불화의 씨앗을 두고 가시고.      


  지금 명절이라 좋은 점은 딱 한 가지다. 남편이 회사에서 받아 오는 명절 보너스. 그거 보고 이 명절을 기다린다. 아이들도 평소에 안 하던 절이나 인사 한 번 꾸벅하면 퍼렇고 벌건 종이돈이 주머니에 들어오니 그 맛에 이 명절을 기다리겠지. 맞다, 지금을 대목이라 부르지. 우리의 지갑은 숨통을 좀 트고, 아이들의 저금통도 배 불리고, 얼어붙었던 시장에도 온기를 좀 불어넣고 말이다. 자본주의의 배에서 내릴 수 있는 이 아무도 없으니 명절도 어떤 모양으로든 존재를 유지시킬 필요는 있겠다.


벌써 다음 명절이 기다려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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