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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임 Nov 17. 2021

28. 결혼기념일을 맞아 졸혼에 대하여

2014년 11월 16일 결혼식을 했다. 나는 결혼식이나 드레스 이런 것에 어떠한 로망이나 기대가 없었다. 마음 같아선 결혼식같이 거추장스러운 것 안 하고 싶었다. 아빠는 결국 “니가 좋으면 그리해라.” 하는 말을 미간을 한껏 찡그리며 했지만 역시나 시어른들의 반대를 극복하지 못했다. 남들과 또옥같은 결혼식을 했다. 결혼식에 돈 쓰기 싫었던 우리는 남들은 안 한다는 윤달에 제일 저렴한 패키지로 해치웠다.


나는, 어쩌면 남편도 결혼이라는 인생의 큰 사건에서 ‘결혼식’에 대한 견해만 존재했을 뿐 그 이후의 삶에 대한 심사숙고 따위는 없었다. 마치 그 둘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동화 같았다. 새로운 책에 새로이 시작될 이야기는 밑그림도, 시놉시스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고 그날그날 한 페이지씩 대충 그려나가는 모양과 다름없었다. 그렇게 2년쯤 지났을 무렵, 남편에게 말했다.



“애가 서른 쯤 되면 지 인생 살겠지? 우리도 그때는 각자 인생을 살기로 하자. 남편, 아내, 누구 아빠 누구 엄마, 사위, 며느리 이런 거 하지 말고 너는 최○○으로, 나는 오○○으로 다시 살기로 하자.”



나는 서른셋에, 남편이 서른에 결혼을 했으니 30년 지나봐야 환갑 언저리. 지금도 그러한데 그때가 되면 정말 여전히 아저씨 아줌마일 나이다. 100살은 무리라 치더라도 적어도 80까지는 살지도 모르는데 나머지 20년 정도는 편하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30년 정도면 검은 머리가 거의 파뿌리가 될 거고(나는 벌써 30% 정도 파뿌리다), 파뿌리가 끝까지라는 말은 아니니까 혼인의 서약도 지킬 수 있다. 그때는 졸혼이란 말이 없었던 것인지 이름은 몰랐지만 아무튼 나는 졸혼을 꿈꿨다. 졸혼의 모양은 정하지 않았다. 애들 다 떠나가고 같이 놀 친구도 없으면 결국 둘만 남아 졸혼 따위 집어치우고 서로 의지하고 살아야 될지, 아니면 한 지붕 두 살림을 하게 될지, 아니면 아주 따로 살지. 또 모른다. 세월에 철천지원수가 되어 내 오늘만을 기다려 왔다를 외며 이 악물고 복수 대신 이혼을 하게 될지도.


졸혼을 결심하고 친구들에게 이야기했을 때 대체로 하는 말은 이거였다.


“그럼 애는?”


요즘 아이들은 캥거루족도 많다는데 우리만의 뜻대로 되지 않을 거란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또 아이가 상처받으면 어쩌냐는 이야기도 들어야 했다. 나이 서른. 지금에나 “애는?” 이라는 질문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부모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에 상처 받을 나이일까. 알 수 없다. 커서 제 갈 길로 갈지, 아직이라며 부모 품을 파고들지는. 오늘 저녁에 뭐 먹을지도 아직 못 정했는데 그렇게 복잡한 스토리까지 미리 정하고 싶지는 않다.


걱정하는 이들에게 졸혼을 결심한 것의 장점을 하나 말해보자면, 마음의 여유가 약간 생긴다는 것이다. 남편이 아주 꼴도 보기 싫을 때, 밥하고 빨래하고 자식새끼들 뒤치다꺼리 하는 것에 진절머리가 날 때, 이 짓이 영원하다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 언젠가 끝난다는 생각, 그 언젠가가 막연한 것이 아니라 몇 년 뒤라 정해져있다는 생각을 하면 꽉 막혔던 마음에 바늘구멍 정도의 여유가 생겨난다. 바늘구멍을 자꾸 손가락으로 후벼 파다 보면 더 큰 여유가 생겨날지도 모른다. 물론 견디는 하루하루 그 순간은 고달프지만 ‘끝이 없다’와 ‘끝이 정해져 있다’는 그 무게가 완전히 다르다.


결혼할 때만 해도 다정히 손잡고 있는 노부부의 사진을 보며 ‘아, 우리도 저렇게 늙으면 좋겠다.’하고 말했다. 지금은 그런 장면을 꿈꾸지 않는다. 늙으면 다 그렇게 되어야 할 것만 같이 박제된 미래가 싫다. 사진 속의 장면은 순간의 포착일 뿐 삶은 현실이다. 삶은 단 1초도 멈춤이 없으며, 나는 숨이 멎는 순간까지 그 1초 1초를 살아내야 하는 지금보다 더 삐거덕거리는 생활인일 뿐이다. 사진 속 환상에 갇히고픈 마음은 없다. 남편은 대체로 내게 오케이를 날리는 남자라 졸혼에 대한 얘기에도 금방 오케이 했다. 그 후 우리는 결기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27년 남았어. 조금만 참아.”

“26년 남았어. 조금만 참아.”

“25년 남았어. 조금만 참아.”

“24년 남았어. 조금만 참아. 잘 하고 있어.”


순식간이다. 가끔 남편에게 묻는다.


“따로 살면서 나 계속 먹여 살려라 하면 그렇게 해줄 거야?”

“만약 시 따로 살면서 나는 새로운 애인 생겨도 니는 그러지 마.”

“만약 시 나 먼저 죽으면 새장가 같은 거 꿈도 꾸지 마.”


농담으로 듣는 건지 내가 묻는 쌩양아치 같은 질문에도 꿋꿋이 오케이 하는 남자다. 세상에 이런 쿨가이가 있나. 부부도 의리로 산다는데, 내가 이런 남자랑 결혼을 했구나야! 여자가 나이 들면 딸이랑 친구랑 돈만 있으면 된다는데, 딸은 없어도 돈은 해결됐으니 친구들아 기다려라! 내가 간다! 친구들 만나고 싶을 때 이것저것 재고 따지고 할 필요 없이 언제든지 울산이며 광주며 서산, 포항으로 떠나는 그날을 기다리며 올해도 외쳐본다.


“23년 밖에 안 남았어, 조금만 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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