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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렛미비더원 Aug 15. 2024

최선은 바라지도 않는다

불안하게만 하지 마라

'어? 항생제가 부족한 것 같은데?'


서울의 대학병원에서 유미에게 재발한 턱밑의 혹 진료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든 생각이다. 이 순간부터 다시 한번 매우 짜증이 났다. 


2주 뒤에나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던 서울 병원 예약은 운 좋게 빈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아내의 교우분의 도움을 받아 우리는 차를 타고 몸과 마음이 편안하게 병원을 찾아 갈 수 있었다. 도착 즉시, 첫방문이기에 난 최우선적으로 짜증나는 진료카드부터 만들고 진료대기준비를 마쳤다. 예상대로 역시나 약속한 시간보다 딜레이가 많이 생겼다. 코드번호로 내 순서를 확인을 해야하기에 진료실 앞 순번대기화면이 무슨 도움이 되는지 이해가 안갔다. 화면은 5번째 순번까지만 보여주는데 어차피 5번째 순번일 때 메세지를 보내준다. 그 이후로도 유미 몸상태에 관한 서류 및 타병원 초음파 기록 CD 전달방식 등 여러가지 짜증나는 상황을 거친 뒤, 힘들게 다시 또 다른 의사를 마주하게 되었다.


"2주 뒤에 초음파 다시 찍어봅시다. 그 때까지 일단 항생제로 혹을 진정시키고 초음파로 찍어봐야 정확합니다."


드디어 처음으로 한스텝 더 나아갔다. 현재 유미의 개월수만큼 시간이 걸렸다. 진료내용은 간단히 말해 볼거리 증상은 아닌 것 같고 이전의 그 혹이 다시 커진 것으로 보고있다고 했다. 물이 차 있는 것이기 때문에 X레이 상으로도 아무 것도 안보였을 것이며, 혹 부위가 빨갛고 열이 나는 이유는 내부에 출혈이 있어 그렇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2주간 항생제를 먹여보면서 경과를 지켜보고 일을 진행하자는 것이 앞으로의 첫번째 계획이다. 앞으로 정기적으로 이곳을 찾아와야 한다는 것이 매우 싫었음에도 한편으로는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원인을 알아보기 위한 제대로 . 계획이 드디어 생겼된기 때문이다. 일단, 아직 너무 어리니 마냥 기다려보자는 계획아닌 계획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그들이 항생제를 더 처방해 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귀가 중인 차 안에서 깨달았다. 유미 병원기록에 관한 원본은 가져갈테니 저기 가서 복사하고 오라고 내게 말해놓고는 그들은 읽어보지도 않았다는 사실에 헛웃음이 났다. 그들은 내게 진료시간을 10분이나 주긴 했나? 내 아이의 상태에 대한 설명을 자세하게 하고 싶어 얘기를 꺼내면 자꾸만 빨리 넘어가고 싶어하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태도가 상당히 신경을 긁고 있었는데 결국 이렇게 시작부터 화를 돋구었다.


'응급실에서 받은 항생제는 3일치가 전부라고 분명 얘기했고 관련 서류까지 다 전달했는데 이건 뭐지? 3일치면 충분하단 얘기인가? 앞으로 2주동안 기다려야 하는데?'


솔직히 많이 고민했다. 한국은 여전히 항생제 과다처방을 하는 나라라는 어느 기사의 타이틀이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았기에 그냥 3일치만 먹일까 싶기도 했다. 그리고 실수는 그들이 했는데 피해는 내가 감수해야 하는 것이 무척이나 짜증이 나기도 했다. 먼길을 다시 와서 그들을 다시 만나기까지 많은 대기시간을 의미없이 소비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 아이의 건강에 관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난 다시 병원에 전화를 걸었고 이미 업무종료되었단 ARS 목소리에 머릿 속으로 온갖 욕을 해대고 다음 날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항생제가 더 필요하신 것이 맞다고 합니다."


오늘 아침 수십번 전화를 걸어 힘들게 얻어낸 답변이다. 그럼 어제 처방을 해줬어야지 뭐지 이거? 너무 쉽게 얘기한다. 아무튼 이미 벌어진 일이었기에 난 그곳을 다시 방문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물어보았으며, 그들이 약 이름을 불러줄테니 집주변 약국에 가능한 곳이 있는지 확인해보라고 했다. 그래서 난 더 정확한 정보전달을 위해 처방전을 내게 팩스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그들을 그럴 수 없다면서 약국 전화번호와 팩스번호를 본인들에게 알려주면 본인들이 직접 보내겠다고 했다. 그리고 4시쯤에 다시 연락 드리겠다면서 통화를 종료했다. 좀 짜증났지만 의료법이 그런가보다 생각하며 그들이 지시한대로 움직였다. 그리고 병원측에서 약속한 시간에 다시 전화가 왔다. 그런데


"어머, 어머 용량이 그게 아닌데..."


여기서부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저기 정말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그래서 처방전을 제게 보내줄 수 없냐고 물어본 거잖아요? 제게 알려주신 것은 고작 약이름 4글자 뿐인데 이제 와서 왜 다른 요구사항을 말씀하시는 거죠? 그럼 아까 제게 제대로 정보를 주시던가요. 그럼 이제와서 다른 약국을 다시 찾아보라는 건가요? 병원측의 실수 때문에 왜 제가 이런 취급을 받으며 고생을 해야하는거죠? 어제 진료때 제가 관련서류 전달드리지 않았었나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희도 최선을 다해 아버님을 도와드리려고..."


저 뒤로는 듣고 싶지도 않은 허울성 발언 뿐이라 더 나아가지 않고 그냥 네네 하고 넘어갔다. 결과적으로 병원측에서 약국에 전화를 걸어 내가 집근처에서 받을 수 있게 조치를 취하여 마무리를 지었다. 응급실에서 이미 우리에게 준 항생제와 용량뿐만이 아니라 이름도 달랐기에 내심 불안함이 더 가중되기도 했으나, 약사의 말로는 문제없다고 해서 일단 믿기로 했다. 사실, 대안이 없기에 그냥 따르는 것에 더 가깝다. 일처리를 이런 식으로 하는 상황에서 사실 그들을 믿어도 될지 나도 모르겠다. 앞으로 이런 비슷한 일은 몇번이나 더 반복될 것이라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고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허나, 어쨌든 당장의 문제는 해결되었다. 왜 항상 큰소리를 내고 난 뒤에 해결이 되는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신사적으로 얘기하면 내게 돌아오는 것은 늘 그들의 실수 뿐인 것 같다.


오늘 나와 하루종일 통화한 간호사는 내게 도움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정말 병주고 약주는 병원이다. 도움?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내게 도움 따위는 필요도 없었다. 최선을 다했으면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까? 너무 쉽게 내뱉는 말 아닌가? 최선을 다해서 필요한 약을 당일 처방해주었으면 어땠을까? 그럼 이런 감정 상하는 통화할 일도 없었을텐데? 또한, 내가 언제 그들에게 최선을 다해 우릴 모시라고 했는가? 정말 어이 없었다. 그래서 저 소리를 듣는 순간 길게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부탁 좀 드리겠단 말로 대화를 종료했다. 아무리 싫어도 앞으로 내 아이를 치료할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씁쓸했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를 보았을 때 웃음보다 눈물이 먼저 나오는 아빠의 마음은 이렇다.

최선은 바라지도 않는다. 불안하게만 하지 마라. 이게 최선이라면 나는 대체 뭘 믿어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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