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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남 May 05. 2020

잭나이프 -엠마뉘엘 베르네임

나는 왜 나인가

잭나이프 -엠마뉘엘 베르네임


나는 왜 나인가. 나는 아마도 나의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나인 것 같다. 내게 주어진 역할이 있다는 것. 그것은 문명사회에서 내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다. 남편으로서, 사업체의 공동대표 중 한 명으로서, 상품개발의 책임자로서, 아들로서, 사위로서, 그리고 남자로서, 납세의무자로서...... 나는 모든 부분에서 인정받고 싶기도 하고 때론 도망치고 싶기도 하다. 이 역할은 우리에게 일상이라는 선물을 제공해 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일상이라는 패턴을 통해 문명 시스템에 공헌하도록 디자인되었다.


엘리자베스는 이 일상 시스템에서 매일 지하철에 몸을 싣고 회사 좁은 방에서 기계적으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외모만큼이나 내면에도 관심이 없다. 회사 동료들과도 좀처럼 어울리지 않고 식사도 거의 혼자 때우듯 한다. 이런 그녀의 삶에 어떤 새로운 일이 끼어들 틈은 없어 보인다. 일상이라는 선물은 엘리자베스의 삶을 지속 가능하게 디자인돼있지는 않은 모양이다. 어느 날 그녀는 강한 가학적 욕망을 분출함으로써 일상의 시스템을 부수고자 한다.


가학적 욕망 분출이 성공한 이후 그녀는 지하철 승객들의 얼굴에서 실존적인 가치를 발견한다. 그리고 피학자인 세실을 만난 이후 미각적 감각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배고픔을 제거하기 위해 때우듯 식사하던 그녀가 여러 가지 고기의 질감과 허브의 향들을 느끼게 된다. 살아있는 감각을 회복하는 듯하지만 그녀는 이내 그 감각들이 어색하기만 하다. 새로 산 옷을 어색해하고 잭나이프를 집에 두고 나와 불안해한다. 그들의 동거가 사랑의 로맨스 때문인지 확인할 길은 없다. 다만 그들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것처럼 보인다. 리어왕을 연기하지만 집으로 돌아와서는 하인처럼 행동하는 남자, 살인자인 듯했지만 사육당하는 것처럼 보이는 여자의 동거는 우리 삶의 일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아버지에게 한 번도 포옹을 받은 적 없는 엘리자베스는 상대방의 존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 미숙하다. 그리고 세실 또한 그러하며 이 소설 밖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이들의 동거가 위태롭듯 우리들의 관계도 위태롭다. 가학적 역할이 끝나는 것처럼 보이는 엘리자베스는 마지막 토스트 타는 냄새로 자신의 역할을 깨닫는다. 서로의 본질적 존재를 끝내 발견하지 못하고 역할 놀이를 통해 관계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결말은 타고 남은 토스트 조각을 맛보는 것처럼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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