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것이 행복한 사람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모두가 외근이다, 출장이다, 나가고 혼자 점심시간을 맞이할 때가 있다. 그러면 2시간 정도 개인 시간을 가질 수 있는데 나는 항상 광화문 펠트 커피에 들러 커피를 테이크아웃하고 교보문고로 간다. 그동안 휴대폰에 저장해둔 책 위시리스트를 보면서 하나씩 하나씩 그 책들을 확인해 보는 것이다. 확인해 볼 책은 수십 권이지만 한 권 두 권보다가 세 번째 책으로 옮길 때 즈음에는 이내 평대에 놓인 신간이나 베스트셀러에 이끌려 새로운 책들을 뒤적이게 된다.
표지를 가만히 감상하다가 목차를 보고 또 첫 장의 이야기를 천천히 읽다가 책을 뒤집어서 마케팅 문구들을 읽어본다. 그리고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그 책을 휴대폰의 위시리스트에 넣어둔다. 100권 가까이 채워진 위시리스트가 1권 지워지기도 전에 5권 정도가 또 쌓인다. 책을 구입하고 읽어내는 속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책이 쌓이는 것이다. 오랜만에 그동안 쌓였던 리스트의 책을 쭉하고 훑어보면 이제 더 읽고 싶지 않은 책도 있고, 이걸 왜 리스트에 넣었는지 알 수 없는 책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 리스트를 볼 때면 이 텍스트를 모조리 섭렵해버린 나 자신을 상상하며 행복한 감상에 젖는다.
주위를 한번 둘러본다. 점심시간이 꽤 지난 평일 오후에는 서점에 사람이 뜸하다. 수만 권의 책의 정원에 둘러싸인 나 자신을 자각하며 이상한 만족감에 잠시 망상에 잠겨본다. 이곳 모든 사람이 사라지고 문이 영원히 잠겨버린다면? 이 방대한 책의 공간이 차원 이동하여 홀로 영원한 시간에 갇혀버린다면? 만약 그럴 기회가 악마 혹은 천사로부터 제안된다면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것인가? 오케이. 이 세상에 나만 남는다면 지식이란 게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만은, 오히려 이 완전한 지식에 파묻혀 영원한 시간을 유랑하고 싶다는 비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오직 이 텍스트를 감상하고 탐닉하는 쾌락만으로도 나는 그 시간을 돌파할 수 있으리라. 수만 권의 텍스트를 모조리 다 읽고 다시 또 읽어볼 것이다.
"실례합니다." 점원이 다른 고객의 책을 찾아주느라 나를 잠깐 비켜서도록 한다. 나는 그 자리에 꽤 어색하게 우두커니 서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래 사무실에 자리를 너무 오래 비우면 안 된다. 그나저나 손에 들고 있는 이 책은 사야 할까? 아니야. 지금 읽고 있는 책도 있고 다음에 읽을 책도, 또 그다음에 읽어야 할 책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