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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남 Nov 07. 2020

기다림

고양이와 존재의 철학 #02


아무도 볼 수 없는 그의 가슴 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소망. 그것은 그에게 빛이자 어둠이다.  


그 소망은 이따금 그의 어두운 심연으로부터 작은 광채가 되어 피어오른다. 어두웠던 그의 내면은 금세 환하게 밝혀진다. 그 빛이 확산하여 세상을 비추는 듯 느껴지면, 그는 힘을 얻어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이내 날아오를 듯한 기분이 된다.


하지만 그 광채는 날아오른 폭죽 같아서 이내 암흑 속으로 반짝하고 사라져 버린다. 그러면 그는 가벼워졌던 것만큼이나 더 큰 중력을 느끼고 다시 심연으로 추락한다. 그리고 전보다 더 큰 무기력에 빠지는 것이다.  


그는 생각한다. 나는 이것을 사랑하는가 아니면 혐오하는가. 그는 친구와 이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것이 내겐 무엇이고 얼마만큼 중요하며 또한 나를 얼마나 고뇌하게 하는지를. 하지만 그것을 설명하는 건 쉽지 않았다. 대화는 의외로 너무 간단하게 끝나 버렸다. 그의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그건 누구나 다 그래. 다들 그렇게 살고 있는걸.”  


그는 고뇌의 무게를 너무 가볍게 취급당한 것 같아 화가 났다. “다시는 이것을 남에게 꺼내지 않으리라. 이것은 설명이 필요한 게 아니라 다만 믿음이 필요할 뿐이다.” 그는 그 소망이 실체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 기다림은 실체가 되기보다 그의 내부에서 응고되어 단단한 성격이 되어 버렸다.  



이것은 설명이 필요한 게 아니라

다만 믿음이 필요할 뿐이다.



그래서 그는 환경의 변화에 쉽게 기뻐하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절망에 빠진다. 그의 비석같이 단단한 성격 아래 묻힌 진실은 날마다 이렇게 속삭이고 있다.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그것은 영원히 오지 않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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