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는 못 쓰는 서평3.다정의 온도

기억을 물들이는 감각, 감정을 돌보는 문장

by 일상여행자 나래

왼손을 뻗어 책 위에 가만히 올려본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이 책의 표면을 한 번 쓸어내린 뒤, 표지 속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느슨히 풀린 신발 끈. 누군가 곁에 다가와 그것을 조심스레 다시 매준다. 단정히 묶인 운동화를 신은 인물은 빛을 정면으로 마주한 채, 이제 막 새로운 길을 향해 나아가려 한다.


그림 <늘 응원해>와 정다연의 에세이집 <다정의 온도>는 닮은 온기를 품고 있다. 책장을 펼치자마자 ‘계수나무 잎사귀에서 솜사탕 향이 난다’는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어쩐지 달큰한 복숭아 향이 코끝을 스치는 듯하다. 어쩌면 손끝에서 느껴지는 복숭아 털처럼, 이 책 전체가 보송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정다연 시인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과 얽힌 감각들을 조용히 건넨다. ‘손끝 물들이기’와 ‘여름 식탁’을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오래전 기억의 결에 닿았다. 잠결에 뒤척이다 손끝에 듬성듬성 물들었던 봉선화 물, 엄마와 함께 혀끝이 얼얼하도록 매운 비빔국수를 먹으며 흘렸던 땀방울. 시인이 ‘사랑’이라는 필터를 통과시킨 감각들은 잊고 지냈던 내 일상의 조각들을 조심스럽게 건드렸다. 그 기억들은 불쑥 되살아났고, 나는 다시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선물 장인’이라 불릴 만큼 섬세한 그녀는 사랑에 얽힌 복합적인 감정 또한 숨기지 않는다. 타인에게 전하는 선물의 따뜻한 마음, 말없이 전해지는 배려, 예상치 못한 순간 마주하는 우연의 기쁨까지. 그녀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진심을 독자에게 건넨다. 반려견 ‘밤이’와의 일상은 그런 진심이 어떻게 삶 속에서 구현되는지를 보여준다. 그녀는 말한다. “슬픔은 어쩔 수 없지만, 슬픔과 걸어갈 방향은 내가 만들 수 있다.”(23쪽) 가을밤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사랑하고 기록하겠다는 다짐은 감정을 섬세히 돌보려는 태도로 이어진다. 이때 우리는 비로소 스스로에게 가장 다정해진다. 기쁨과 행복은 커지고, 허무와 슬픔은 다독여진다.


작가가 사랑하는 관계들을 따라가다 보면, ‘다정’이라는 감정의 결이 보이기 시작한다. 다정은 아픈 반려견을 위해 산책을 생략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발길이 닿는 공간의 기쁨을 함께 누리는 것. 믿음이 쌓이기까지의 시간조차 존중하는 것. 얽매는 관계에선 거리두기를 선택하는 용기이기도 하다.


다정은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차이를 인정하고 경계를 존중하며 신뢰를 쌓아나가는 윤리적 태도다. 이 대목에서 좋다는 이유만으로 관계의 거리를 성급히 좁히려 했던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라, 마음 한켠이 따끔했다.


그렇다면 ‘다정을 태도로 품고 싶은 좋은 어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주고받는 불빛처럼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211쪽) 만났을 때보다 헤어질 때 더 뭉클한 여운을 남기는 관계처럼, 이 책을 덮고 나니 마음이 따뜻하고 몽글몽글해진다. 이 부드럽고 단단한 온기를 당신도 직접 느껴보면 좋겠다.

*챗GPT는 절대 대답 못 할 책 퀴즈:

책 속에는 ‘자화상’부터 ‘버터 커피’까지, 글과 연결된 그림이 그려져 있어요. 총 몇 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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