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야노 Sep 19. 2019

한국형 '불효'

전형적인 한국형 밀레니얼과 베이비부머의 갈등(?)

  월급 꼬박 들어오는 회사를 그만두고 외국에 나가서 이제야 뭔가를 배우고 시작하겠다는 얘기 하는 딸의 계획에 아빠는 그날 밤 심란하고 속상한 나머지 그 밤을 지새웠다고 엄마한테 들었다. 항상 본인의 마음을 잘 표현하는데 영 서툴고 웬만한 상황에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아빠는 그 날의 전화통화 이후 속상하고 걱정되는 어지러운 마음들이 모여 화를 내기 시작했다. 물론 그날 전화 한 통으로 이렇게 된 건 아니고 내가 최근 들어 전화통화 말미에 '그래도 그만둬야겠고 앞으로 이러이러한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괜찮을 것 같지?'라는 말을 항상 하기 시작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부모님 생각하는 나의 삶에서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전셋값 조차 없이 월세 살이 처지이고, 앞으로 이렇게 비참하게(?) 살아가야 하는 큰딸이 안쓰럽고, 금전적으로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본인들의 미안한 마음이 함께 섞여버린 것 같다. 부모님 본인 명의의 집 한 체 장만하는데 30년이 걸렸고 그 집값을 갚느라, 자식들을 키우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다 쏟아버린 전형적인 베이비 부머의 세대로써, 부모님은 나도 그렇게 알뜰함으로 집을 갖고 '안정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빠 (엄마도 마찬가지)의 생각 같다.


  신문기사나 뉴스로 접하던 세대 간의 갈등에 관한 내용이 우리 집에 고스란히 벌어지고 그 당사자가 되고 나니, 특히 아빠가 이 정도까지 화내고 안타까워하는 모습 보니 마음이 좋지 않은 것은 당연하거니와 서로 간 소통이 되지 않는 사실에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우리의 관계에 우유가 되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집세를 모으지 않더라도 그 금액으로 내가 배우고 싶은데 투자를 해서 그 기술로 살아갈 수 있노라고, 나는 왜 그런 멋진 청사진을 보여줄 수 없는 걸까. 그리고 나는 왜 아직까지 모아둔 돈이 없는 거지? 동시대를 살고 있는 밀레니얼들은 어떤 꿈과 사랑과 아픔을 아지고 있으며, 서울에 살고 있는 지방 출신 밀레니엄 세대들은 돈을 많이 모았을까? 그놈의 전셋값 때문에 향후 내 인생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부모님에게 내가 생각하는 삶의 방향을 열거하고 나니 더더욱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 되어버렸다. 그리고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있었다.


  21세기, 워라벨, 저녁이 있는 삶을 살라는 각종 매체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지금 근무 회사에서는 강제 야근 주 2회 8시 까지, 수당은 저녁 수당만 나온다. 의무 야근을 아직까지도 하는 구닥다리 마인드 사장이 있기 때문인데 사무실이 여러 군데 있다 보니 여기서 가장 큰 문제점은 저 야근 시간에 모두 다 일을 하지 않는 공통점이 발생하고 있다. 누구는 운동을, 누구는 피부마사지를 받으러 다니기 위한 시간으로 여기고 있고, 그리고 아무리 비합리적이고 멍청한 행동에 대해 아무도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으며,  나 역시 말하지 않고 글로만 화를 푸는 겁쟁이이자 퇴사를 구체화하는 것 밖에는 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세대 간의 갈등이 나와 내 부모님의 갈등으로 개인적 영역으로 직면하게 되고 나니, 내가 부모님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계획하는 바는 행해질 것이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앞으로 다가올 갈등의 깊이가 더 깊어지는 것이 본격화되면서 마치 습기 때문에 점점 무거워지는 소금가마를 들고 걸어가는 것처럼 점점 무거워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개인적으로 서로의 이해를 얻지 못해 상처 받고 속상해하고 있는 것은 유교 사상이 깊숙이 자리 잡은 이 사회에서 '큰 딸로서' 부모가 생각하는 '안정적인' 삶의 방향으로 나가지 않고 지 멋데로 살아가는 아주 큰 '불효'를 행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성 정체성으로 고민하지 않았고, 이성교제로 사건 사고를 내지 않았으며 부모님 닮은 외모로 속상해하지도 않았고 적당한 성적으로 적당한 대학을 나와 그럭저럭 한 회사를 다닌 다는 것에 대해서 서로가 만족했었다면, 불투명한 앞길에 대한 두려움과 열정 찾기를 위한 내면의 불씨를 키우는 이 딸이 부모님은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그 날 저녁의 전화통화로 인해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아빠가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게 되자 난감해져 버렸고, 평소에 감정표현을 거의 하지 않던 아빠의 화로 인해 슬퍼진 하루. 어느 순간 나는 이기적인 딸이 되어있었고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해명을 할지, 해명을 하고 나면 결국 변명이 되어버릴지, 여전히 무모한 계획을 하는 딸에 대한 걱정에 더 기름을 붓게 되는 것이라는 사실에 가슴이 아려온다. 나의 아빠가 살아온 삶에 대한 이야기, 아빠가 아닌 세상의 한 존재로서 살아온 이야기, 그리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기르며 느껴왔던 감정들을 글로라도 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작가의 이전글 Beyond 42.19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