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마라톤의 묘미 중 하나는 대회 전날 저녁부터 당일 아침의 붐비는 인파 속의 흥분감과 내가 뛸 그룹에 서서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두근거림이다. 특히, 생의 첫 마라톤 출전을 앞두고 있다면 대회 전날의 가슴 뜀은 가히 평생 기억할 만한 경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날을 애써 기억하지 않아도 그 날 새벽에 일어나 경기 대회장까지 가는 차 안 그리고 출발 직전까지의 기분과 장면들을 생가하면 가슴이 울렁거린다.
첫 마라톤 이후 두 번의 풀코스 마라톤 (춘천 마라톤, 오사카 마라톤, 서울 국제 마라톤)과 그 외 셀 수 없는 하프 코스 마라톤 (세어 보지 않았기 때문이지 셀 수 없이 많은 숫자는 아님)을 하였지만 달리기 전날의 떨림은 여전히 잠을 못 이루게 한다. 달리기 대회를 앞두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와 같은 설렘과 떨림 때문 다시 다른 대회를 기다리고 준비는 것이리라.
내일 또 한 번의 하프마라톤이 다가왔다. 직전에 달린 강원도 영주 하프마라톤에서 컨디션 조절 실패로 굉장히 애를 먹은 터라 당분간 달리기를 좀 멀리하려고 하는데, 내일 이 달리기 대회를 취소하기엔 이미 환불 기간이 지난 시점이었고 이번 코스는 광화문에서 여의도까지 달리는 코스라 비교적 쉽다고 들었다. PR ( Personal Record or PB, Person Break)을 내기 쉬운 코스인 이유로 처음 8km는 살짝 내리막길이라고 하니 초반에 4:50 ~ 5:05 페이스로 달린 후 속도를 맞추려고 노력한다면 개인 기록 단축에 성공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간 많이 먹고 대충 훈련했으니 섣부른 희망이 희망고문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고 충분한 휴식과 스트레칭이 중요할 것이다.
달리기 전날엔 일찍 귀가하려다 보니 더 이상 밤에 나가 놀아도 노는 게 아니게 되었고 처음부터 술을 마시지도 못하는 체질이다 보니 술도 아예 안마 시계 되어버렸다. 얼마 전 까지는 이런 내 모습이 지루한 사람으로 비칠까 봐 내심 걱정하던 모습도 언느순간부터 전혀 신경 쓰지 않기 시작했다.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자신에게 더 집중하게 된 것이다. 애초에 달리기를 시작한 목적은 날씬함이었으나 날씬해지지는 않았다. 근육이 더 붙게 되었고 다리가 더 튼튼 해져 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통통한 모습보다는 더 날씬해지고 싶은 마음은 한가득이지만) 지금의 내 모습이 유지되는데 만족스러운 것도 달기기의 아름다움이며 (이 부분은 여자만 해당되는 것인지, 달릭 훈련량이 많은 남자들을 살이 많이 빠져 걱정이라는 사람도 많다) 어쩌면 우울할 수 도 있는 내 상황을 견디게 해 줄 수 있는 기간제 알약으로서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운 좋으면 다시 한번 3~5등이 되어 무대에 올라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의 김칫국을 마시며 내일 달리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또다시 다른 마라톤을 참가하는 원동력이자 평일의 훈련이 즐거워질 수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