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보 없는 음악 _ 수업 시간에 즉흥연주를 한다는 것

: 즉흥이라는 창작의 방식, 그 순간의 감각과 기억으로 만들어지는 음악

by 나래코드 NARECORD


“이거… 무슨 곡이에요?”

수업이 끝난 뒤, 한 무용수가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예의 바른 목소리였지만,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죠.
“악보요? 사실… 그건 없고, 그냥 방금 만든 거예요.”


발레 수업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종종 놀랍니다.
이곳에서 악보는 ‘필수’가 아니거든요.
어떤 수업에서는 책장도 없고, 정해진 곡도 없이
오직 그날의 흐름에 따라 피아노가 시작됩니다.


그 순간, 그 공간에서만 존재하는
말 그대로 ‘일회용 음악’.
우리는 그걸 ‘즉흥 연주’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즉흥이란 단지 기술은 아니에요.
그건 수업을 느끼는 감각이고,
움직임에 공감하는 마음이죠.


피아노 앞에 앉아 선생님의 첫마디를 기다립니다.
“플리에, 4x8입니다. 느리게요.”
그러면 내 머릿속엔 조용한 회의가 시작돼요.

느린 4x8… 너무 무겁진 말고, 살짝 부드럽게.
오늘 수업엔 아다지오 느낌이 어울리겠지?
첫 박은 강하게, 둘은 흘리듯.....
음… F메이저로 가볼까?

그 짧은 생각이 손끝으로 옮겨지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아요.
그리고 음악은 조용히 흐르기 시작합니다.

정해진 악보는 없지만

플리에를 하고 있는 누군가가 눈앞에 있으니,

나는 그 동작의 리듬을 따라 음악을 한 줄씩 만들어갑니다.


즉흥은 ‘즉석에서의 창조’라기보다는,
지금까지 쌓여온 모든 기억들이

한순간에 연결되는 일 같아요.
클래식, 뮤지컬, 팝송,
이전에 했던 수업의 분위기와 감정들까지—
모든 게 지금 이 순간의 음악이 됩니다.

그래서 나에게 즉흥이란
감정의 조합이고, 기억의 편곡이에요.


가끔은 내 마음에도 쏙 드는 멜로디가 나올 때가 있어요.
하지만 수업이 끝나면, 그 음악은 어디에도 남지 않아요.
녹음해두지 않으면 다시는 떠오르지 않죠.

그렇게,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을 음악들이
하루에도 몇 곡씩 조용히 피어났다 사라집니다.

그리고 그걸 아무도 몰라도 괜찮아요.
왜냐면, 그 음악은

그 순간, 그 동작을 위해 존재한 음악이니까요.


피아노는 말이 없지만,
오늘의 공기와 움직임, 그리고 작은 표정까지
모두 음악이 되어 건반 위로 번져갑니다.


오늘의 답은…
어떤 멜로디일까요?


— 나래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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