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템포 _ 발레선생님과 피아니스트의 말 없는 교감

호흡과 손끝 사이, 템포가 만들어지는 순간

by 나래코드 NARECORD


“조금만 빠르게 해 주세요.”
“어… 지금보단 살짝 느리게요. 아주 살짝만요.”

이런 대화는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갑니다.
발레 피아니스트는 늘 공기를 읽고,
선생님은 그 흐름에 작게 신호를 보내죠.
그건 말로 주고받는 게 아니라,
음악과 눈빛, 그리고 박자로 이어지는 대화예요.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땐 참 헷갈렸어요.
‘느리게 해 달라’는 말 그대로 템포를 낮췄더니
수업 전체가 너무 무거워졌고,
‘가볍게 해 달라’는 말에 템포를 올렸더니
무용수들이 따라가기 벅차 보였죠.

그제야 알게 됐어요.
선생님의 말은 단순히 속도를 말하는 게 아니라,
그날 수업의 분위기를 말하고 있다는 걸요.


어떤 날은 아주 미세하게만 템포를 달리해도

수업의 분위기는 전혀 다르게 흐르죠.

그 미묘한 차이를 읽기 위해
나는 선생님의 손짓, 발소리,
그리고 무용수들의 워밍업 속도를 조용히 지켜봐요.


발레 수업의 ‘박자’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에요.
그건 공간의 에너지이고, 감정의 흐름이에요.

그래서 나는 음악을 만들기 전에
먼저 그 공기를 읽어야 해요.


가끔은 수업 중간에
감각적으로 템포를 살짝 바꿔볼 때가 있어요.
그러면 선생님이 뒤돌아서 말하십니다.

“방금 그 템포 좋아요. 그 느낌으로 갈게요.”

아무 말 없이도, 서로의 감각이 맞닿은 거예요.

사실은, 그냥
내 감으로 한번 ‘시도’해본 거였는데 말이죠.
그게 딱 맞아떨어질 때,
무용수들의 동작이 리듬을 타고 자연스럽게 흘러갈 때—
정말 잘한 선택이었구나 싶은
작은 쾌감이 있어요.


발레 피아니스트는
자신의 템포를 내세우기보다

누군가의 호흡을 듣고,

그 안에서 새로운 리듬을 만들어가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속에도

나만의 감각과 속도로

오늘 하루의 음악이 만들어집니다.

피아노 앞에서

선생님의 손 끝,

무용수의 발 끝,

그 사이에 흐르는 말 없는 교감을 들으며

오늘의 템포를 찾아갑니다.


은밀하게,
부드럽게,
그리고… 정확하게.


— 나래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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