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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naree Feb 18. 2021

예쁘고 푸짐한 꼬막비빔밥

감칠맛 가득한 육즙의 향연

철이 되면 떠오르는 음식이 있다. 본격적으로 겨울에 접어들기 시작하 몇몇 식당에서는 슬슬 내어놓는 계절메뉴. 이맘때는 꼬막 요리다.


휴일 아침, 오일장으로 향한다. 겨울 장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어묵꼬치에 뜨거운 국물 한 모금'을 하는 이들로 이미 입구부터 복작복작. 국숫집 구석자리에서는 낯익은 동네 친구들이 이미 막걸리를 몇 병째 비우고 있다. 왁자지껄 안부인사를 나누고 지나치면, 육지 배추니 갓이니 하는 조금 늦은 김장거리들이 쌓여있다. 저만치 생선 좌판들에서 풍기는 기분 좋은 비릿함은 예외 없이 나를 유혹한다.

아아, 나는 오일장이 너무 좋다. 마포에 살던 시절에도 망원시장이 그렇게 좋았더랬다. 혹시 제주를 떠나 다시 도시에 돌아가게 되더라도 꼭 재래시장이 가까운 곳에서 살고 싶다.


꼬막을 사야지.

꼬막비빔밥을 해 먹기로 마음을 고 나선 참이었다. 장터 밖에 굴과 꼬막을 파는 트럭이 있다. 굴도 한아름 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꾹 참고, 꼬막 사 들고 재빨리 돌아선.


꼬막은 손질이 번거롭다. 껍데기에 골이 깊이 파여있는 탓에 뻘을 씻어내려면 달그락달그락 대차게 여러 번 헹궈내야 하는 데다가, 손을 다치기도 쉬워서 꼭 장갑을 끼고 시작해야 한다.

깨끗이 씻은 꼬막을 커다란 냄비에 담고, 물은 바닥에 찰랑거릴 정도로만 넣는다. 물이 끓을 조짐이 보이면, 꼬막을 부어 넣고 한쪽 방향으로 살살 저어주면서 삶는다. 몇몇 꼬막이 입을 벌리기 시작하면 불을 꺼야 한다. 시간은 대략 5분 내외로 걸린다. 문어나 꼬막 등을 삶는 건 8할이 타이밍과 화력조절의 문제다. 꼬막은 짧게 삶고 정확한 타이밍에 '단호하게' 불을 꺼야 한다. 너무 센 불에 팔팔 오래 끓이면, 꼬막 살이 질겨서 낭패를 보게 된다.

잘 삶아서 껍질을 빼내는 것이 그다음 순서.

숟가락으로 꼬막 엉덩이(!)를 요령 있게 잘 비틀면 껍데기가 탁 하고 열린다. 이렇게 살만 잘 발라낸 꼬막 살을 한데 모아 담아놓는다.

싱싱한 미나리를 잘게 다져서 썰어담고

청양고추와 함께, 색깔을 예쁘게 내기 위해 빨간 파프리카도 잘게 다져본다

대파도 얇게 송송 썰고

양파와 마늘도 넉넉히 다져 넣고

참기름과 깨소금 듬뿍 뿌리고

고춧가루를 살짝 흩뿌리고 국간장과 참치액 등으로 삼삼하게 간을 하면 이렇게 예쁘고 먹음직스럽게 꼬막무침이 완성된다


갓 지은 밥 위에 밥만큼, 아니 밥보다 훨씬 푸짐하게 꼬막무침을 얹어서 쓱쓱 비빈다. 밥은 거들뿐, 아삭하고 상큼한 채소들과 어우러진 달고 부드러운 제철 꼬막은 감칠맛 가득한 육즙을 쭉쭉 뿜어내며 입안을 채운다.

건강한 한 끼를 잘 챙겨 먹는 건 나름 적지 않은 시간과 노동을 필요로 하지만, 힘들다는 마음조차 씻어주는 뿌듯한 충만함이 분명 있다. 이 기분에 중독되면 계절마다 제철 재료들을 기웃거리고, 자꾸만 틈나는 대로 요리를 하게 된다.


자, 이제 배도 부르고 하니, 다음에 뭐 해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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