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계속해서 새로운 흥밋거리를 찾는 것은 폭넓은 경험을 원하기 때문이다. 현재 각자에게 적절한 배움과 경험의 거리를 제공해 주는 것들에 우리는 끌림을 느낀다.
어떤 부분에 흥미가 떨어졌다는 것은 지금 거기에 신선한 자극과 의미를 줄 만한 경험이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계속해서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그것을 붙들고 있는 것은 그 자체로 비효율적이다. 다른 접근 방식이나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네 마음이 이끌리는 데로 살아라.
원하는 분야를 배워라.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라.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라.
하지만 흥미가 가는 것이 없다면 멈춰라.
항상 분주하게 무언가를 쫓을 필요는 없다.
수용할 공간이 없을 때 무언가를 찾는 행위는 답답함을 더할 뿐이다. 특별히 다른 하고 싶은 것이 없음에도, 지루한 시간을 견디지 못해 또 다른 정보나 말초적인 흥미 거리를 찾아 머리에 가득 눌러 채우면 오히려 일상은 점점 더 흥미롭지 않은 것으로 변모하기 쉽다. 강렬한 흥미를 주던 것들도 곧 퇴색되고 자극은 점차 적체되어 썩어간다. 새로움이, 변화가 고통으로 다가온다.
무엇도 흥미롭지 않는 상태 역시 그대로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 중 하나이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상태, 어떠한 자극도 없이 이어지는 일상은 다음의 흥미로운 순간을 위한 휴식의 시간이다. 오히려 지루함을 그대로 둘수록 잠재적 흥미는 더욱 세밀해지고 농염해진다. 감각은 새로운 자극을 찾기 위해 더욱 깨어난다. 집중이 일어나고 머리는 맑아진다. 정신적 고양과 평화로움에 빠져든다. 이것은 일종의 명상이다.
간혹 자신의 흥미가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날까를 두려워하는 이들도 있다. 가족이나 미디어 혹은 사회에 의해 흥미가 통제되기도 한다. 그러나 자연의 변화 앞에 과거의 통념들은 곧 속수무책으로 깨어지고 만다.
끌리는 바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면 그리고 세상을 보다 다채롭게 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가두는 사회적 관념은 부숴야 할 낡은 벽일 뿐이다. 그 벽이 허물어질 때 전체의 시야는 확장되고 개인과 사회는 한발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미래는 과거의 가치에 묶어둘 수 없으며, 자연적 의지는 항상 과거의 정형을 깨고 새로운 길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