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람 절반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
임계장: 임시계약직노인장을 줄인 말이라지.
남자 노인은 경비로, 여자 노인은 간병 노동으로. 정규직을 하던 사람이든 비정규직을 평생 돌던 사람이든 나이 쉰, 예순에 이르러 갈 수 있는 직업 현장은 이 둘로 수렴된다. 줄곧 자영업자이던 나의 아버지가 밑천이 바닥나자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는데, 그때 도와주겠답시고 정부가 알선하는 노인 일자리 사이트를 둘러보니 온통 경비와 요양보호사 뿐이었다.
<임계장 이야기> 속 경비 노동자의 이야기는 담담하다. 그렇지만 글 구석구석에 묻은 분노와 좌절감은 어찌 감출 수 있겠는가. 30년 넘게 공공기관에 일을 하고서도 돈이 없어 24시간 경비 일자리를 두 개나 뛰어야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은, 도대체 무슨 세상이란 말인가.
이런 세상이 암담하지만, 더 울분을 토하게 만드는 것은 뉴스 속 추상적 세상이 아니다. 나만큼 별로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한 움큼의 권력이라도 쥐어지면 그것을 칼날처럼 휘두른다. 관리소장이 경비반장의 목줄을 잡고 휘두르고, 경비반장은 경비들의 군기를 잡는다. ‘말 안 들으면 잘라버리겠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대며. 관리소장은 자치회장이니 부녀회장이니 노인회장이니… 따위의 아파트 내 완장 찬 이들 눈밖에 날까 노심초사 한다. 매일 지나다니며 익숙하게 인사하는 이들 속에 이렇게 위계서열이 존재하고 권력놀이가 이뤄지고 있다.
지방 소도시 30년 넘은 허름한 아파트에서 이런 패악질이 성행한다. 약자는 자기보다 더 약한 누군가를 짓밟아야 한다. 약자들끼리의 연대는 책에나 존재한다. 당장 누군가를 짓밟지 못하는 이는 쉽게 호구가 된다. 강자에 빌붙을 것인가 호구가 될 것인가의 문제는 비단 도덕과 양심의 영역에 고상하게 똬리를 튼 존재가 아니다. 생존의 문제다.
나는 이 책을 작가의 자식들, 아내가 어찌 읽을까 싶어 그것이 걱정되었다.
어쩜, 그리 새롭지 않은 이야기일지도 모르는데, 이제야 비로소 경비라는 직업 현장의 속내를, 일상 속 소소하디 소소하지만 너무도 삶에 가까워서 더 아픈 ‘악’의 총체를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이가 나타났다. 담담히 풀어낸 작가에게 감사한다.
집에서 내색하지 않지만, 어쩜 나의 아버지가 겪었던, 겪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나는 차마 경비라는 직업의 실체를 아는 체를 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