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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을산다 Jan 29. 2021

'참담함'이 참담하다

정치인의 언어 

요즘 정치인들의 단골 형용사를 꼽으라면 단연 ‘참담하다’가 1등을 하지 않을까 싶다.

뭐만 하면 ‘참담하다’고 논평을 내는데, 이토록 참담한 일이 많아서야 어디 정신이 온전히 남아나기나 할까 걱정이 될 지경이다.


조수진 의원이 고민정 의원에게 ‘후궁’ 어쩌고 하며 막말을 하자 민주당 대변인 왈,

“같은 여성의 입에서 인격을 모독하고 듣기에도 처참한 성희롱성 막말을 하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참담함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정의당 김종철 대표가 성추행 문제로 자진사퇴하자 너도나도 참담의 물결:

국민의힘 오세훈 “김종철 성추행 참담”

민주당 권인숙 “우리당 입장문, 부끄럽고 참담”

국민의 힘 나경원 “정의당 성추행 사건 참담”

무소속 금태섭 “김종철 성추행 참담”


표준국어대사전이 알려주는 '참담하다'의 의미


표준국어대사전은 ‘참담하다’의 뜻을 1)끔찍하고 절망적이다 2)몹시 슬프고 괴롭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가슴을 후벼팔 만큼의 슬픔과 괴로움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그냥 슬픈 것도 아니고 참담할 지경이라는데, 이들의 참담함이 당최 내 마음에 와닿질 않는다. 


그 이유를 곰곰 생각하다보니, 참담이라는 단어가 그리 참담하지 않은 이들에 의해 쓰여진 게 그 이유겠다 싶다. 


우선, 정치인들은 과장에 능해서 1만큼 아파도 10만큼 아프다고 말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실제로 앓는 병이 없음에도 아프다고 거짓말을 일삼거나 자해를 하여 타인의 관심을 끌려는 일종의 정신과적 질환인 ‘뮌하우젠 증후군’을 앓는 이들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요즘 정치인들이 벌이는 스포트라이트 쟁탈전과 맥이 닿는다. 그러니 정치인의 언어가 점점 더 극단으로 치닫는다. 조수진 의원의 후궁 발언이 그렇다. 

‘참담함’을 선취하면 자신은 단번에 잘못한 이, 혹은 가해자와 거리두기를 하게 되며 피해자성을 획득하거나 적어도 피해자에 공감하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지위에 올라서게 되는 건 보너스다. 


참담함을 느꼈다면 그 다음엔 잘못된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이나 행동 변화가 수반돼야 한다. 그러지 못하다면, 최소한 밥을 먹을 때나, 집에 가는 차 안에서나 그 일이 떠올라야 하고 하루 정도 밤잠을 설칠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러나 참담함을 말하며 잡았던 마이크의 침이 채 마르기도 전에 이들은 또 다른 주제를 두고 침 튀기며 희희낙락하거나 분노한다.  


그리하여 난, 참담하다란 형용사가 본래의 무거움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이 현실을 대신 개탄하며 참담함을 느낀다. ㅎㅎ


참담함에 잠 못 이루고, 그 참담함으로 이 세상 어딘가를 변화시키는 힘과 의지를 가진 정치인이 어딘가엔….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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