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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을산다 Jan 29. 2021

극단적 여성운동에 포획된 정치

정의당의 무능

장혜영 의원이 쏘아올린 공.

‘피해자다움’이란 없다는 그의 입장문, 그리고 그에 이은 가해 당사자의 대표직 사퇴.

앞서 민주당이 너저분하게 보여줬던 각종 성 비위 사건 처리에 비하면 깔끔했다. 어둠의 긴 시간을 지나 이제 막 빛을 보기 시작한 정치인이 일순간 나락으로 떨어진 상황을 안타까워 하면서도 정의당의 순조로운 일 처리를 사람들은 칭찬했다.


불길한 것은, 이 사건의 중심에 배복주라는 인물이 있는 것이었다.

2020년 선거에서 비례대표 7번을 받았다 탈락한 뒤 부대표이자 젠더인권본부장을 맡은 인물. 정치권에 발을 담그기 전에는 성폭력상담소 활동가를 했던 그가 마이크를 잡고 언론 브리핑을 했다. 피해자의 뜻에 따라 고소는 하지 않겠으며 가해자가 인정하고 사퇴하는 것으로 정리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래서 뭘 했다는건데?’라는 합리적 물음에 ‘그것은 2차 가해다’라며 입을 막았다. 앞서 이 사람이 관여해 날려버린 정치인 미투 사건에서처럼 ‘피해자에게 구체적인 걸 묻는 것은 2차 가해’라며 피해자에 대해 한치의 의심도 용납할 수 없다 했다. 그리고는 등장한 포고문. “2차 가해자를 제보하라”


이것은 정당인가 여성단체인가.


증거가 없어도 피해자의 증언이 가장 강력한 증거라는 이들의 주장은 줄곧 먹혀왔다. 

어떠한 범죄에서도 피해자 보호가 최우선이지만, 그렇다고 증거도 없이 다른 누군가를 가해자로 확신할 수 있는가? 피해 사실에 대한 가해자의 인정이 있었다 해도 그것이 공당의 대표를 내려놓을만큼의 심각성을 가진 행위인가에 대해 공당의 당원들과 국민은 판단할 권리를 갖지 못하는가?


어떤 여성은 다른 남성의 손이 실수로라도 자신의 피부에 닿으면 소스라친다.

여성 여성은 익숙한 남성들에게 습관처럼 팔짱을 낀다. 

어떤 여성은 술자리에서 어깨에 슬쩍 팔을 올리는 나이든 남성이 싫지만 점잖게 핀잔을 준다.

어떤 여성은 남성 후배에게 어깨를 주무를 것을 수시로 요구한다. 


신체접촉에 대한 반응과 인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장혜영 의원이 어떤 정도의 민감도를 가진 사람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김종철 대표와 한 공간에서 겪었던 일이 불쾌한 일이었음에는 틀림 없을 것이다. 그로 인해 한 개인의 일상이 무너졌다면 당연히 문제를 삼아야 한다. 하물며 불미스러운 일이 정당 내에서 그것도 대표와 소속 의원 간 벌어진 일이라면 아프더라도 철저히 조사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를 해야 한다. 그러나 정의당은 피해자 보호라는 명목 하에 이러한 절차를 취하지 않고 있다. 대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있다. 


잘 안다. 대한민국에서 성폭력 피해 여성은 동정의 대상이면서도 수치와 비난, 낙인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절차적 정당성을 위해 사건의 내막을 알아야겠다고 하지만, 그들 중 적지 않은 수가 관음증에 기인한 어중이떠중이에 불과하다는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혜영 의원과 김종철 전 대표는 공인이다. 둘의 사건은 사인 간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공인의 직위를 박탈할 정도의 일이었다면 그 일이 무엇인지 소상히 밝히는 것이 합당하다. 비록 성과 관련된 사건이라 하더라도.


2018년에 미국에서 Brett Kavanaugh라는 사람이 연방대법원 판사에 낙점된 뒤, 그의 과거 행실에 대한 제보가 터져나왔다. 그 중 하나를 제기한 게 Christine Blasey Ford라는 심리학 교수로, 고등학교 때 Kavanaugh 로부터 성폭행 당할 뻔했다고 청문회에 나가 말했다. 비록 30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상황을 소상히 설명했고 당시 심리치료 기록까지 제출했다. 그러나 청문위원들은 그의 진술에서 일관되지 못한 면이 발견된데다 명확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Kavanaugh 청문보고서를 채택했다. 


Joe Biden 미국 대통령도 경선 과정에서 과거 자신의 보좌진이었던 Tara Reade가 성폭행 사실을 폭로하면서 곤욕을 치렀다. Biden의 여성을 상대로한 부적절한 행위는 과거에도 도마에 오른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 명확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그는 경선을 지나 큰 환호를 받으며 대통령이 되었다. 


성 비위 사건에서 누가 거짓말을 하는가는 쉽게 가려내기 어렵다. Ford, Reade는 모두 거짓말쟁이로 몰렸을 뿐만 아니라 살해협박까지도 받았다. Ford, Reade 처럼 상대와 권력의 차이가 현저하다면 이 협박은 실존적 위협이 된다. 이들의 용기와 상처가 너무도 안타깝지만 한 인간의 삶의 기로를 바꾸고자 한다면 명확한 증거가 필요하다는 걸 이 두 케이스는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장혜영 의원에게, 혹은 정의당에게 증거를 요구하고 있지 않다. 또, 장혜영 의원과 김종철 전 대표 간 권력이 비대칭하지도 않다. 오히려 장혜영 의원쪽에 더 무게가 실려 있다. 장혜영 의원이 일상을 회복하길 응원한다. 그러자면 정치의 공간에선 정치를 해야 한다. 자신이 대표하는 국민들의 입을 틀어막는 짓은 정치인이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사람들은 단지 조금 더 납득되고 싶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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