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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죽음에 대하여

살아가는 내내 죽음이 함께한다

by 나리다

나는 가끔 흰 수의 아래에서 산패 중이던 차가운 몸에 대해 생각한다. 날 선 울부짖음과 방금 화장한 따끈한 뼛가루의 감촉을 떠올린다. 봉안당에 가득한 죽음의 냄새. 살아가는 내내 나의 모든 감각에 스미듯이 남아 기억될 당신의 죽음은, 아직까지도 내 곁에 앉아 내 빈 등을 쓰다듬는다. 나는 당신의 죽음으로부터 숨소리를 듣고, 관짝 너머의 당신과 눈이 마주친 뒤에, 슬그머니 고개를 떨군다.


우리 사이에 오 년의 시간이 놓였다. 내일이 자꾸자꾸 오늘이 된다. 어제가 멀어 아득해진다. 마음이 놓일 때쯤 불쑥불쑥 당신이 내 눈앞에 치민다. 나는 시간의 틈새에 갇혀 속절없이 주저앉는다.


요즘은 박경리 작가의 <토지>를 읽고 있다. 배경이 조선말 일제강점기이다 보니 계속해서 사람이 죽는다. 죽음에 무덤덤해진다.

그러나 월선의 죽음과 그것을 지켜보는 용이가 묘사되는 대목에서는 결국 울음이 터지고 만다. 용이 죽어가는 월선의 가냘프고 작은 몸을 끌어안으며, 우리 많이 살았다, 니 여한이 없제 하니 월선이 야, 없십니다 하였는데, 그게 견딜 수 없이 응어리 진다.


평생을 붙어있어도 먼발치에서 아프게 사랑했던 두 사람인데도 그 사랑에 여한이 없다는 것이 부러워서 눈물이 난다. 내 어린 날의 몽땅, 십수 년 그 한 사람하고만 좋아 지냈더랬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무상한 시간 동안을. 다시 돌아가 네가 죽을 걸 안다 해도 결국 너와 결혼할 것이라 말하며 후회 없이 사랑다 해도, 여한이 없다는 기분은 들지 않는다. 어느 날은 미움을 남기지 않고 헤어져 다행이다 마음을 위로해 보지만 또 어느 날은 서른두 살의 젊고 어린 당신과 내가 너무 아프고 아깝다. 당신이 나를 예뻐했던 게 자꾸 생각난다. 살았더라면 아직까지도 변함없이 잘해줬을 것만 같다. 십수 년 안에도 변함없던 당신이니까, 오히려 매일이 지나 매일을 더 나를 좋아해 주었으니까, 역시나 변하지 않았을 거라 믿는다.


갈수록 아쉬운 것은, 아빠가 된 당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일이 점점 어렵다는 것이다. 같은 팀 직원이 요새 주말부부를 하는데 아이가 아빠가 보고 싶다며 울었단다. 아기를 애지중지 같이 키우던 애 아빠가 먼 데로 발령이 났으니 애는 아빠가 얼마나 그리울 것이며, 아빠는 애가 얼마나 눈에 밟힐까. 말로는 그 어린것, 안쓰럽다 하면서도 진심으로 내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 대상은 내 아이이고 내 아이 아빠이고, 나였다. 내 아이는 아빠가 보고 싶다며 칭얼대지 않는다. 아빠가 보고 싶다고 여겨질 만큼 같이 지내본 일이 없으므로. 가끔 그것이 서운하고 마음이 아프다. 티 없이 밝게 자라는 것이 고마우면서도 아빠의 다정함을 누리지 못하고, 아빠에 대한 그리움조차 모르는 어린아이가 낯설고 안타깝다.


나는 오늘도 이러저러하게 무심코 살았다. 그러나 당신의 죽음이 내게 괜찮아질 리 없다. 이건 아물어 가는 것이 아니라 무뎌져 가는 것이다. 살아가기 위해 무뎌질 뿐이다. 나는 나의 무너짐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았고, 어떻게든 살아남아 행복해지기를 누구보다 독려하였다.

그래서 나는 내일도 이러저러하게 무심코 살아갈 것이다.


이 우물도 바닥이 있겠지. 바닥이 있어 딛고 오를 수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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