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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방의 일기

네 날개의 무늬들이, 초라하지만 필요한 재능이었기를

by 나리다

내 재능의 한계는, 내 스스로가 재능 있다고 느끼는 부분에 있고, 또한 사실은 그 재능이 아주 특출 나지는 않다는 부분에 있다.


재능에 비해 자만하고 있기 때문일 테고, 그 한계점을 벗어날 만큼의 절실함과 열정이 없는 까닭일 것이다.


내 작은 재능은 도저히 열정과 노력을 이길 수가 없었다. 차라리 내게 아무것도 없었다면 나는 갈구했을 것이고 좀 더 멋진 것을 만들어냈을 텐데.


나는 어렸을 때 똑똑이였다. 글을 일찍 깨쳐 시라든가 소설을 끼적였으며 그림도 나이에 비해 제법 그려서 보는 사람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칭찬에 힘입어 꾸준히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지만 뚜렷한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아 글짓기 대회며 사생 대회에 몇 번쯤 나가긴 했다. 작게는 교내, 크게는 도 대회에서 상을 받아왔다.


그러면서도 다양한 분야로 독서를 즐겼는데 중학생이 되면서 만화책과 판타지 소설에 재미를 붙였다. 한번 그 길에 빠져드니 전처럼 책을 많이 읽진 않게 되었다. 그러고선 어쩌면 만화가나 판타지 소설가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쉬운 길이었다면 분명 그랬을지도 모르는데. 내게 예술이라는 분야는 쉽지 않았다.

예술가인 부모 아래서, 어설픈 예술은 그저 가난을 낳을 뿐이라는 것을 배웠다. 천장을 뚫는 예술가의 자부심으로도 배는 늘 고팠기 때문에 사춘기의 나는 예술과 가난을 동의어로 생각하게 되었다.

내 조촐한 재능은 내 발목을 잡아 내려 앉혔다. 열정 없는 재능은 아무것도 아니었으며, 아무것도 아닌 재능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재능이고 나발이고 간에 떨쳐버리고 일류대에 갈 수 있을 만큼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7만 원짜리 MP3를 샀다.

사춘기의 나에게는 세상이 무섭게 넓었는데 이어폰으로 세상을 막자 다소 아늑하게 되었다.


그게 내 사춘기였다.


대충 열심히 공부해서 대충 적당한 대학에 가고 또 대충 열심히 공부하고 대충 적당한 학점을 꾸렸는데 여전히 뭘 해야 할진 모르겠어 휴학한 뒤에 취직도 해보고 다시 복학을 했다.


졸업 후에 또 적당히 취직해서 열심히 일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일을 그만두고.....


아마 거기까지도 내 사춘기였는지 모른다.

나는 언제나 헤맸고, 그러나 큰길에서 아주 멀어지지도 않았다. 큰길은 옳은 길이란 뜻은 아니다. 그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난하다고 생각하는 길이며, 무난해서 재미없고 안전했다.


안전했는데.


평범한 회사원이 되어 이제와 글과 그림을 끼적이는 것은 단숨에 뭔가를 하려는 열정이나 의지가 생겼기 때문은 아니다.


며칠 전에는 드디어 직장을 때려치우는 꿈을 꿨다. 그런데 인사부서에 사직의사를 알리고 주말이 지나가는 중에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주말이 지나자마자 다급히 인사부서에 전화를 걸어, 아직 사표가 수리되지 않았겠지요? 하고 물었다.


나는 단숨에 뭔가를 이룰만한 재능도 열정도 없다.


그저 이렇게 살다 이렇게 죽는 것이 막연하게 두려울 뿐이다. 아마 어쩌면 이렇게 살다 이렇게 죽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큰길에서 벗어나 어느 낯선 풀밭 언저리에서 넋 놓고 산란기의 나방들을 들여다보는 일도 있지 않을까.


어둠 속에 움츠려있어 때론 그 존재조차 모르고 지나치지만, 가루가 흠뻑 묻은 날개를 펼쳐 날아오르면 차마 시선을 뗄 수 없는 초라한 갈색의 나방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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