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에서 떨어져나온 작은 세포
“아빠는 언제부터 없었어요?”
“음...”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 태연한 척 대답한다.
“네가 태어난 지 한 달이 되던 때부터.”
아이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또 물어온다.
“그럼 할머니는 언제부터 있었어요?”
“응? 할머니는 네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계셨지.”
아이는 뭔가를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또, 아빠가 없어지고 나서 할머니가 생긴 줄 알았네.”
아마 엄마를 도와 저를 양육해주시는 할머니를 아빠 같은 존재로 느낀 모양이다. 아빠가 없어진 대신 할머니가 생긴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아이는 아빠에 대해 거의 이야기 하지 않는다.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세상에서 사라진 아빠에 대해 대체적으로 무심한 편이다.
가끔 말을 꺼내더라도 무덤덤해 보인다.
아마도 아빠에 대한 기억이 없어 그리움도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한편으론 다행이고, 조금은 씁쓸하다. 나에게 그 사람이 소중했던 만큼 아이에게도 소중해지기를, 내 전부였던 그 사람이 아이에게도 영향력 있는 사람이기를 내심 기대했었던가 보다.
아이를 재우며,
“엄마 아빠의 사랑스러운 아이, 우리 민이.”
하고 중얼거렸더니
아이가 대뜸
“근데 아빠 없잖아.”
한다.
복잡하고 먹먹한 기분이 들었다. 내 상실감을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며 아이의 작고 빠른 심장 위에 손을 얹고 말한다.
“아니야, 아빠는 민이 마음속에 있잖아.”
그러자 아이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아참, 깜빡했다.”
내 아쉽고 아까운 남편.
그 사람이야말로 이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한데, 나 혼자 아이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나는 가만히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말을 이었다.
“민아, 아빠는 되게 멋있는 사람이었어.
항상 성실했고, 책임감이 강했단다.
마음이 따뜻하고, 다른 사람을 잘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었지.
민이의 다정한 마음은 아빠에게서 물려받은 거야.
너는 아빠에게서 받은 게 참 많아.
네 안에는, 언제나 아빠가 함께 있는 거야.”
말이 없어 잔다고 생각했던 아이가, 어둠 속에서 중얼거렸다.
“그럼 이제, 아빠 대신 내가 멋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아니야, 아가야.
너는 누군가를 대신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멋있고 사랑스러워.
내 몸에서 작은 세포로 자라나 떨어져 나온 나의 우주.
너는 그 존재만으로도 이미 하나의 세계야.
나는 아이를 힘껏 끌어안는다.
품에서 놓으면 잃어버릴 것처럼 껴안는다.
이러고도 내일 아침이 되면 또 밥좀 빨리 먹으라고 다그치겠지만,
어김없이 한바탕 실랑이를 벌이겠지만,
그래도 잊지 않고 사랑해야지.
계속, 계속 사랑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