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의 역치

언제부터 안전이 말로만 퉁쳐졌던가.

by 산문꾼

쏟아지는 코로나 경보 속에서 안전안내 문자가 스팸처럼 느껴질 무렵, 한파와 대설경보도 나태하게 기어왔다. 출장을 갔다. 1시간 30분 거리였지만, 빙판길에 1시간은 늦어지겠거니 싶어 2시간 30분 먼저 출발했다. 다행히 약속 시간보다 15분 먼저 도착했다. 그렇게 낯선 타지에서의 오전 업무는 잘 마무리 되었다.



점심을 먹으러 갔다. 겨우 500걸음의 거리다. 차를 끌고 간다는 건 사치겠지만, 추위를 환율 삼아 따져봤더니, 걸음 값이 더 비쌌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식당이 위치한 건물 내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갔고, 우레탄 바닥에 걸친 순간 차는 미끄러졌다. 핸들은 뒷짐을 졌고, 브레이크는 방관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관리 사무소는 부재중이였으며, 안전관리자 정은 연락이 안 되었고, 안전관리자 부의 전화연결음을 팩스전송음이 대신했다. 나는 돌고래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돌고래가 생각났다. 메모를 남겼다.



보험 처리를 했고, 적혀있는 번호로 문자를 남겼다. 한참 뒤 관리담당자에게 전화가 왔다. CCTV를 본 모양이다.

"안 다치셨나요? 여기저기 전화하시는 모습을 보고, 연락이 안 될 분은 아닌 것 같아서, 경찰에 신고하진 않았습니다."

내가 30 분을 허둥대며 전화하는 모습이 CCTV에 다 잡혔을테고, 문자까지 남겼는데 경찰이라니.. 그의 억양은 자상했지만, 인심은 사나웠다.



남은 반나절의 업무도 마무리 짓고, 집으로 향했다. 빙판길이 더해지니 하행 길의 발걸음은 더 가벼웠다. 30분쯤 갔을까. 타이어 경고등에 불이 들어왔다. 카센터 사장님의 말을 되뇌었다.

'원래 추운날엔, 기압 차 때문에 바람이 자주 빠지긴 해요. 자주 넣어야 할 겁니다.'



30분쯤 더 갔다. 바퀴에서 소리가 나고, 운전대는 휘청거렸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한번 더 자라를 만났다. 속도를 줄이고 갓길에 차를 댔다. 고속도로를 벗어났으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철사 한 가닥이 타이어에 끼어 있었다. 잡아당겼더니, 손이 베였다. 오늘 같은 날은 찰과상 보단 추위에 얼은 손이 더 아팠다. 플래시를 비추니, 왼쪽 뒷바퀴 타이어가 터져 여러 가닥의 철사들이 튀어나와 있었다. <분노의 질주>로 배웠던 교통사고가 상식이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렇게 렉카를 기다리는 중이다. 현재시간 9시30분. 퇴근 시간이 지나도 한참 지났다. 만일 직장이 전쟁터라면, 나는 적들을 물리치다 영광의 상처를 얻은 것이다. 다음 날, 무용담을 바리바리 싸들고 출근할 묘한 기쁨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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