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 그 혼미함의 회고록
그 집의 카이센동은 대단했다. 크리스마스날이라 예약은 안 되었으며, 맛집이란 명성에 걸맞게 줄이 길었다. 그녀와는 두번째 만남인데, 우리 사이는 여전히 어색했다. 기다리는 동안 할 말이 없어, 주변을 둘러 볼 수 밖에 없었고, 앞에 서있는 중년 부부에게 눈이 갔다. 한 끼에 8만 원씩이나 하는 레스토랑에서의 데이트일 텐데, 회색 체육복 바지에 패딩 차림을 보아하니 두 사람에겐 사랑보다 의리가 어울렸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내 옆의 그녀를 처음 본 순간, 이미 노후계획까지 다 짜두었다. 그녀를 향한 내 사랑은 정말 숭고했으나, 어색하게 줄 서 있는 이 순간 만큼은 한 줌의 의리라도 잡고 싶을 뿐이었다. 친밀함은 사랑의 필요조건이지 않는가.
대화를 이끌지 못한 것에 주눅이 들어선지, 이렇게 추운 날 그녀를 기다리게 했다는 죄책감 때문인지, 왜 하고많은 식당에서 이 집을 고른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와서인지, 중년 부부를 향한 관찰은 곧 자격지심으로 이어졌다. 저번 주에 주문한 코트를 어제까지 기다리며 느꼈던 초조함, 머리 손질 실패 후 한 번 더 감고 왔던 수고로움이 하찮아졌다. 남들에겐 츄리닝 차림으로 올 만할 정도였나.
학창시절, 압구정 현대백화점을 다녀온 명수의 자랑이 스쳐갔다.
"야 그거 아냐? 진짜 돈 있는 사람들은 백화점 갈 때 차려입고 안가고, 트레이닝 차림에 슬리퍼 신고 간다. 자신 있다는 거지. 그리고 샤넬과 구찌를 주렁주렁 들고 나와서 페라리에 올라탄다고."
그는 팔짱을 끼며 내 얘기인 양 말했다. 물론 근거는 없었다. 아참, 그는 페라리도 없었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고 자리에 앉게 되었다. 비싼 값에 어울리는 게 하나도 없었다. 접시가 떨어질 것 같은 비좁은 테이블, 겉 옷을 놓아둘 공간도 부족한 옆사람과의 거리. 사람들의 음식 먹는 속도는 패스트푸드를 먹는 그것과 비슷했다. 식당은 자본주의에 충실했고, 역시 돈은 이렇게 벌어야 하나보다.
기다리던, 음식이 나왔다. 다행히 음식은 비싼 값에 어울렸다. 관자의 속살은 불투명했다. 속이 보이지 않으니, 그대로 빛에 반사되는 백열등 같았다. 그 옆에 탱글거리는 연어 알의 색감은 오렌지였는데, 투명해서 속이 다 비쳤다. 7개를 따로 건져 소원을 빌고 싶었다. 그녀와 잘 되게 해달라고. 성게 알은 이 중에 내가 제일 비싼 것이라 자부하듯, 가운데에서 중심을 잡았다. 5만 원짜리 지폐와 같은 색 이었다. 새우살은 연어알의 주황빛과 관자의 하얀빛이 섞여 있었다. 이런 걸 그라디에이션이라고 해야 하나. 마지막 가장 오른쪽에 있는 두툼한 참치살은 붉은빛과 분홍빛의 가운데쯤, 그러니까 수박 색깔 정도 되었다. 과육의 달콤함을 생각하니, 생선도 달았다. 우리 사이도 달달했으면 싶어 결국 연어알에게 소원을 빌었다.
그녀의 입은 떡 벌어졌고, 신이 나게 사진을 찍었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래야만 이런데 자주 오는 사람 같아 보일 것 같았다. 자존심은 알량했고, 전혀 쓸모가 없었다. 그나마 쓸모있던 건 최대 2%포인트가 적립되는 내 카드뿐이었다. 하지만 2개월 무이자 할부로 가야 하기에, 그것마저 쓸모가 없었다. (원래 할부로 긁으면 포인트적립은 불가하다.) 그것이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 날, 그녀의 인스타에는 헤시테그가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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