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의금을 선물로 준다는 것
“야, 시간 되냐.”
그냥 카톡으로 보내라고 했건만, 동진은 이런 건 직접 주어야 한다며, 청첩장을 들고 왔다. 우리는 서로의 바쁜 일정을 배려해 중간 지점에서 만났다.
“이렇게 빨리한다고?”
단톡방에 얘기한 게 저번 주인데, 그의 결혼식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알잖냐. 와이프 배부르기 전에 해야거든.”
“이야. 으른이네.”
동진은 우리 다섯 명 중에서, 가장 빨리 스타트를 끊었다. 그동안 꽤 많은 결혼식을 가봤는데도 친한 친구의 결혼은 뭔가 이상했다. 축하는 당연 했지만 묘한 감정들이 뒤섞였다. 하나는 우리와 다른 종족이 될 것에 대한 섭섭함이었고, 조바심도 한 몫 했다. 이제 곧 나도 결혼 적령기에 속해야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동진의 결혼 준비 추진 위원회를 만들었다. 곧 모임을 갖게 되었고, 나는 스케쥴이 겹쳐 참석하지 못했다. 회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동진의 다른 친구들은 돈 모아서 TV를 해주기로 했다는데, 우리도 질 수 없다는 얘기였다. 그들은 당사자보다 더 신나 보였다. 그래서 취준생인 1과2가 합쳐서 유아용 카시트를, 직장인인 3과 내가 무선 청소기를 주자는 것이었다. 회의 참석을 못한 나에겐 발언권이 없었지만, 다른 자격으로 한마디 했다. (물론 내가 정했지만) 나는 이 중 결혼식 참석 경험이 가장 많은 하객대표로서 충분했다.
“그냥 자기 분수에 맞게 현금으로 하자.”
근데 그게 아니란다. 걔들에 따르면, 동진이 직접 카시트와 무선청소기를 원했고, 그걸 사용 할 때마다 친구들 생각이 날 것 같아, 그게 더 좋을 거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1은 덧붙였다.
“친구끼리 그 정도도 못해 주냐.”
좌뇌가 돌아간다. 축의금이란, 어차피 품앗이. 준 만큼 받는 것은 당연하고, 설사 그만큼 돌려받지 않아도, 내가 더 많이 줬다는 사실이 고스란히 남는다. 현금봉투는 그런 명확한 시스템고, 물건은 애매하게 퉁쳐진다. 우뇌가 돌아간다. 친구끼린데 덜 받으면 어떤가. 세상 사람은 몰라도 당사자만 알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의리란 그런 것이다.
그리고 잔머리가 돌아간다. 머리 속 한 켠에서 몰래 셈을 했다. 무선 청소기를 적당히 임직원 할인으로 사면 70만 원이라는데, 둘이 함께 샀으니, 35만 원의 선물을 주었다 치자. 이것은 주는이에게 전적으로 불리하다. 받은 이는 얼마든지 모델명을 검색할 수 있고, 최저가가 기억 될 확률이 높다. 그러니까 검색 목록에서 그 청소기는 50만 원 짜리였는데, 정작 클릭하고 들어가보면 배터리추가, 부속제품 추가했더니 이십만 원이 추가 되있을 만한 미끼상품일 경우 받은 이는 50만원으로 기억할까 70만원으로 기억할까.
뿐만 아니라. 끝자리가 0으로 떨어지지 않게 되면 애매해진다. 34만 원은 30만 원으로, 35만 원은 30만 원으로, 36만 원도 30만원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물건 값을 낱낱이 따질 만큼 한가하지 않다. 그들은 방명록과 축의금 명부를 참고할 뿐이다.
복잡했다. 얼마 되지 않는 이득을 향하여 머리속엔 온갖 합리적 그래프들이 난무했다. 생각하면 생각 할수록 난 치졸해졌다. 이건 그 때 그 시절 내가 만든 공식이다. 이 곡선에서 우리는 x축의 똘똘함과 y축의 합리성이 일정구간 만큼 비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임계점(i)을 넘어가 버리면 반비례 한다. 나의 셈들은 그럴싸 했는데, 그 내실은 텅비었다.
3은 청소기를 주문했고, 나는 3에게 청소기의 반 값을 입금했다. 시간이 흘렀다. 얘기가 없길래, 3이 물었다.
"동진아 청소기 도착한거야?"
동진이 단톡방에 답했다.
“ㅇㅇ잘 받았어. 아내가 받았대.”
어쨌든 청소기를 주긴 줬다. 그리고 고맙다는 소리는 못 들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정도는 통했을 것이다. 나중에 밝혀진 얘긴데, 1과 2는 카시트를 1년 뒤에 주었다고 한다. 취준생이라 돈이 없었다나. 그렇다면, 그 당시 실질적으로 축의를 한 사람은 나와 3뿐이며, 다들 친구니 우정이니, 주둥이만 털었다는 것인가. 좌뇌가 돌아간다. 카시트보단 청소기가 더 비싸며, 1년 사이에 물가 변동률과 이자까지 고려한다면, 1년을 먼저 지급한 내가 손해긴 손해다. 우뇌가 돌아간다. 하기야 친구끼리 그정도도 못하겠는가...다시 좌뇌가 돌아간다. 어쨌든 축의는 무조건 현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