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문꾼 May 15. 2019

정상은 지나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당신 인생의 이야기,  <바빌론의 탑>, 테드 창」 서평

 Photo by Jonathan Tieh on  Unsplash

 

 탑의 꼭대기에서 재관들은 야훼(신)를 향한 기도를 한다. 그들은 이토록 많은 것을 볼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신에게 감사했고, 그 이상을 보고 싶다는 자신의 욕망을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인류는 왜 이렇게까지 올라가야 했을까.


 TV 프로그램 알쓸신잡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에서 흥미로운 토크쇼가 진행된다. 그날의 주제는 “건축물로 계산하는 권력”이었다. 유현준 건축가는 말한다. “높이 쌓으면 쌓을수록 그걸 만든 사람의 권력을 나타낸 것이에요.” 높은 건물에서는 두 가지 시선이 존재한다고 한다. 첫째,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선, 이 시선은 높이 올라갈수록 더 볼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아래서 위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만약 누군가 아래서 위를 쳐다보는 순간, 위에 있는 자는 권력을 갖기 시작한다.  

    

 이 권력이 더 이상 뻗을 곳이 없어, 하늘의 끝까지 닿는다면 인간은 신의 영역에 다가설 수 있을까. 바빌론의 탑을 포함해, 뻗어 나가려는 욕망과 넘지 말아야 할 두려움 속에서 인류는 오늘날까지 탑을 쌓고 있다.


 바빌론의 탑은 구약 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탑이다. 대홍수 이후 노아의 후손들은 하늘에 닿는 탑을 쌓기 시작하였다. 신은 인간이 자기들의 영역을 넘는 것이 불편했고, 인간은 여호와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다. 신은 본래 하나였던 언어를 여럿으로 분리하는 저주를 내렸다. 그때부터 바벨탑 건설은 막이 내리고, 인간은 서로 말이 통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바빌론의 탑>」은 수세기 동안 이뤄온 조상들의 업적을 이어받아 하늘과 연결하는 탑을 짓는 이야기다. 인류는 신의 피조물이 궁금했다. 야훼의 모든 피조물을 보고 싶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하늘의 물이 담긴 저수지 위에 있는 야훼의 주거란 도대체 어떤 곳일까 궁금하게 됐다. 몇 세기 전부터 탑의 건설은 시작되었다. 힐라 룸은 탑에 대한 이야기에 항상 고무되어 상상했고, 동경했다. 결국 광부로 참여하며 인류의 위대한 건축에 기여하기 시작한다.      


 하늘과 연결되는 탑은 얼마나 높을까. 이야기의 특징은 상상을 자극하는 묘사력이다. 겪어 보지 못한 세계를 활자 만으로 그리도록 만드니, 얼마나 위대한가.      

 탑을 시나르 평원에 눕히고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걸어간다면, 이틀이 걸린다. 그러나 탑은 곧추서 있기 때문에 밑동에서 꼭대기까지 올라간다면 족히 한 달 반이 걸린다.

 탑을 짓기 위해 필요한 땔감이 알고 보니, 숲을 통째로 심어서 가져온 것, 탑 건축 시작 때 조상들이 심어놓은 나무들이 숲을 이룬 것이다.   

  

 조상들의 업을 이어받아, 그들의 여정도 시작된다. 광부들은 벽돌을 쌓고, 역청 덩어리를 녹여 벽돌을 고정시키며, 한층 한층 나아갔다. 탑 안에 있는 터널을 채굴하며, 하늘의 천장을 열어가는 중이었다. 수레꾼들은 광부들이 작업할 수 있도록 몇 개월에 걸쳐, 꼭대기로 자재를 운반했다. 그렇게 그들은 천장을 뚫기 위해 모험했다.                

 인류는 결국 성취했다. 천장을 뚫었고, 쏟아지는 폭우와 홍수 속에서도 힐라 룸은 살아남았다. 그러고 그가 터널을 지나 하늘 위에 도착했을 때, 눈부신 빛을 받았다. 모든 노고를 보상받을 것만 같은 마땅한 빛이었다.   

 마침내 그는 빛을 보았다. 그는 터널 밖으로 뛰쳐나갔다. 눈을 질끈 감아야 할 정도로 눈부신 빛이다. 그는 주먹 쥔 손을 얼굴에 갖다 대고 양 무릎을 꿇었다.   

        

 그의 기대와는 다르게 새로운 대지가 나왔다. 신은 없었고, 야훼의 정원도 없었다. 신의 영역에 닿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허망했고, 권력은 거들뿐이었다. 욕망은 중요하지 않았다. 왜 야훼가 탑을 무너뜨리지 않았는지, 정해진 경계 너머로 손을 뻗치고 싶어 하는 인간들에게 왜 벌을 내리지 않았는지 뚜렷이 알 수 있었다.  

    

 어떤 이유에선가 하늘의 천장은 대지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 두 장소는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마치 서로 맞닿아 있는 듯했다. 오랫동안 여행을 해도 인간은 결국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허망한가. 천장이 곧 대지였고, 오랜 여행의 종착지는 결국 출발점이었다. 끝인 줄 알았는데, 다시 시작인 적이 있었는가? 끝을 모르는 반복은 지루하다. 바위를 굴려 언덕으로 올려 두었더니, 다시 밑바닥으로 떨어지고, 이것이 끊임없이 반복된다면, 그런 인생은 부조리처럼 보인다.

      

 그러나 꼭 좌절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겐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다. 시간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달력을 발명했다. 그 결과 시간은 숫자로, 마치 셀 수 있는 물체처럼 여겨졌다. 하루를 24시간으로 쪼갤 수 있었고, 하루가 모여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된다. 그리고 365일이 모여 1년이 된다. 중요한 것은 이 1년이 매번 반복된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는 반복된다고 믿고 있다.    

  

 돌고 돈다는 것은 순환이다. 고정된다면 멈춘 채로 썩겠지만, 윤회는 흐른다.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 하지만, 매번 새로운 새해를 맞이하며, 그때마다 의미를 부여하고 새 시작을 한다. 작심삼일이라도 새로운 4일째가 있기에 인간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흐르는 시간은 상대적이기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 오늘은 어제의 미래이기도 하지만, 내일의 과거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윤회는 희망이다.  

    

Photo by Jeremy Thomas on Unsplash


 천장을 뚫고 대지로 돌아온 힐라 룸은 경외심으로 휘청거리는 다리를 피며 일어섰고, 대상들을 찾아 나섰다고 한다. 그는 다시 바빌론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의 새로운 도전은 부조리일까, 희망일까. 선택은 그대의 몫이다.           


출처:  <나무 위키> <네이버 사전> <알쓸신잡> <에디톨로지, 김정운> <베리타스 사회연구소 북 토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