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언제 할 것인가 서평」
긴 글이라 읽기 편하게 나눠놨습니다. (①intro ② 낄낄빠빠 ③ 시작 ④중간 ⑤끝 ⑥outro )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에 따르면, 시간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달력을 만들었다고 한다.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갈지 모르는 막연한 시간 앞에서 인류는 불안했고, 시간은 차곡차곡 정리될 필요가 있었다. 이때부터 시간은 셀 수 있는 물체처럼 여겨졌다. 하루를 24시간으로 쪼갤 수 있었고, 하루가 모여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된다. 그리고 365일이 모여 1년이 된다. 중요한 것은 이 1년이 매번 반복된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는 반복된다고 믿고 있다.
올해는 망쳐도 내년에 다시 시작하면 된다. 즉, 시간의 막연한 공포는 극복했지만, 우리는 자기 계발이라는 새로운 덫에 빠졌다. 이제 시간은 돈과 같은 맥락으로 쓰인다. 아끼고, 투자하고, 남겨두고, 낭비하고, 빼앗길 수도 있는 그런 것.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결과를 보여주는 꽤 합리적인 지표로 사용되는데, 그래서 그런지 시간에 관한 명언도 성공 아니면 실패류가 대부분이다. 앞에 것을 지향하고, 뒤에 것을 지양하는 그러한 경향이랄까. 이러한 명언들은 간단하고, 명료하고, 쉽게 이해되며, 익숙하다. 그만큼 그저 스쳐 지나가고, 휘발성도 강한 게 흠이지만.
「When -언제 할 것인가, 다니엘 핑크, (주)시공사」는 무엇을 언제 할 것인지 타이밍에 관한 책이다. 시간을 바라보는 관점이 과학적이고, 다채로우며, 정성 가득하다. 어느 누가 타이밍의 과학을 파헤치기 위해 경제학, 마취학, 인류학, 내분비학, 시간생물학, 사회심리학에 대한 연구결과들은 700편 넘게 읽고 분석했겠는가. 저자는 인간의 경험을 통해 쉽게 잡히지 않는 시간의 문제들을 고민하고 발견한다.
우리의 감정은 시간에 따라 좌지우지된다. 사회학자 마이클 메이시와 스코트 골 더는 2년 동안 84개국에서 240만 명의 유저들이 올린 5억만 개가 넘는 트위터의 포스팅을 연구했다. 연구에 따르면, 긍정적 기분은 오전에 올라갔다가 정오에 정점을 찍고, 오후에 떨어지기 시작하며, 저녁에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한다. 흥미로운 점은 인종, 종교, 문화적, 지리적 다양성에 관계없이 이 패턴이 비슷하게 형성된다. 짧은 하루 속에서도 리듬과 주기가 있고, 시간의 리듬 위에서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질 수 있다면, 꽤 수월한 시간 활용이 가능할 것이다.
그럼 언제 빠져야 하는가?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려운 최저점의 시간이다. 정오가 지난 뒤, 하루의 하강곡선에서의 낮잠은 피로를 덜어주는 “회복성 브레이크”로 작용한다. 커피 한잔 후에 25분 알람 설정을 해놓은 뒤 낮잠을 자는 낮푸치노, 스페인 사람들이 취하는 오후의 공식적인 휴식 시에스타 ㅡ몇 년 전 폐지되었지만ㅡ는 상당히 전략적인 휴식 방법이다.
하지만 취약시간의 휴식 여건이 늘 허락되는 것은 아니다. 빠지는 시기를 놓친다면 또 다른 방법이 있다. 취약시간 저점의 리듬에서 몰입이 될 리가 없다. "기민성 브레이크"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 실수가 없도록 지시사항을 검토하기 위한 짧은 휴지기인데, 다음은 한 의료팀의 대표적인 예시이다.
강단 있어 보이는 30대의 의사는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지만 당장에라도 메스를 들고 달려들 기세였다. 하지만 그들은 농구선수들처럼 타임아웃을 외쳤다. 수술진은 거의 반사적으로 모두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런 다음 대형 스크린이나 상대방 허리춤에 달려있는 지갑 크기의 플라스틱 카드를 보고 상대방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을 소개한 뒤, ‘9단계 사전 확인’ 절차를 진행했다. 환자의 신분이 맞는지, 환자의 상태와 환자의 알러지 반응의 특징을 파악하고 있는지, 사용할 약품을 마취사가 파악하고 있는지, 필요한 장비가 확보되어 있는지 등등을 체크했다.
특히 생체 리듬이 낮아지는 오후에는 의료사고와 졸음운전이 보다 더 많이 발생한다. 이런 유의미한 연구 앞에서, 기민성 브레이크는 한번 더 우리의 나태함을 각성시킨다. “기본에 충실 하라”는 말 앞에서 그대는 귀찮을 것인가, 환경을 통제할 것인가.
빠지는 법을 배웠으니, 이제 끼어드는 법을 배워보자. 과거에 많은 학교들은 잘못 시작했었다. 아이들은 사춘기가 되면, 생물학적으로 패턴이 바뀌고, 늦게 자는 올빼미 기질로 변한다. 하지만 8시 30분 이전의 첫 교시는 너무 빨랐다. 저자는 어른들에 맞춰진 학교 일정을 비판한다.
행정가들은 버스 일정을 재조정해야 한다. 부모들은 출근하는 길에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줄 수 없다. 교사들은 오후 퇴근시간이 늦어진다. 체육부 감독은 학생들을 연습시킬 시간이 줄어든다. 그러나 이런 핑계 뒤에는 더 깊고 고질적인 이유가 있다. ‘언제’의 문제를 ‘무엇’의 문제만큼 진지하게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부족한 잠이 유해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여러 연구 덕분에, 근래에는 수업 시작 시간이 많이 늦춰졌다. 우리는 제대로 시작해야 한다.
새해마다 느낀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3개월짜리 헬스장을 3번 갔으니, 회당 83,333원의 샤워를 한 것일까. 연초가 되면 한 무더기의 책을 산다. 내가 책을 사는 이유는 언젠가 적절한 타이밍에 ‘나 그 책 (제목을) 본 적 있다’고 말하기 위해서일까. 써먹지도 못하는 영어 공부를 한다. 남들 다 하는 걸 통해 불안을 줄이고, 뭐라도 하고 있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반복되는 내 작심삼일 때문에, 사회과학자들의 지혜를 잠시 빌려왔다.
그들은 "시간 경계표"를 통해 시작의 열정이 끊겼을 때 전략적으로 다시 시작하는 방법을 말한다. 새 출발을 위해 사람들은 두 가지 형태의 시간 경계표를 사용했다. 사회적 경계표와 개인적 경계표였다. 사회적 경계표는 월요일, 매월 1일, 국경일등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경계표였다. 개인적 경계표는 생일, 기념일, 첫 출근일 등 각 개인에게만 의미 있는 날이다.
이 경계표는 두 가지 효과를 품는다. 한 회계연도가 끝나 회계장부를 덮고 새해의 새로운 원장을 여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새로운 정신적 구좌’를 개설해주었다. 그러니 새로 시작하면 된다. 두 번째, 하루의 사소한 일부터 벗어나 큰 그림을 보게 하고 목표에 다시 집중할 수 있다. 맥락을 재구성하면 된다. 작심삼일 앞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경계를 그릴 수 있다면, 내년 이맘때에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작이 꼭 1월 1일일 필요는 없다. 그때를 대비해 다시 시작하기 좋은 86번의 기회가 준비되어 있다.
시작과 끝 사이에는 중간이 있다. 한국사회는 중간을 좋아한다. 중용, 중립 따위의 고결한 가치와 중간을 착각하며, 묻히는 걸 정당화한다. 너무 튀어서도 안되고, 너무 못나서도 안되고. 중간만 가라는 말은 널리 쓰인다. 하지만 중간은 게으르고, 나태하고, 위험하다. 중간 지점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 인생곡선을 보여주는 과학적 연구가 있다. 노벨상 수상자인 경제학자 앵거스디턴을 비롯한 사회학자들의 논문에 따르면 행복에 관한 인생곡선은 중년기에 가장 낮은 행복도를 보여주고 있다. 젊었을 때는 앞날에 대한 기대가 너무 높지만, 점점 실패를 맛보기 시작하면서 삶의 만족도가 줄어든다. 그리고, 중년기에서 최저값을 찍는다. 중년기 이후 노년기에 접어들며 기대가 너무 낮아진다. 그러고 나니, 삶의 만족도는 올라간다는 내용이다.
저자는 연구결과를 요약한다. 예측을 잘못했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는 앞날에 대한 기대가 너무 높고, 노년기에는 기대가 너무 낮다.
인생이라는 관점이 너무 크고 거창하다면, 시간에 대한 다른 실험들을 통해 좁혀보자. 사회학자들은 여러 실험을 통해 중간에 대충 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5장의 종이 오리기 시험에서 첫 카드와 마지막 카드는 정확도가 높았지만 중간은 꼼꼼하지 않았다. 전통적인 유대교 명절인 “하누카” 시기에 유대인들은 매일매일 초에 불을 붙인다. 한 연구에서는 신앙의 독실함과 관계없이 하누카의 중간 기간에 흐지부지 되는 현상을 발견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경향은 우리의 관성이자, 초기값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디폴트일까.
중간 시점에 리듬이 깨지는 현상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렇다고 어쩔 수 없다며, 작심삼일을 옹호하고 싶진 않다. 이현상을 인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앞으로의 차이가 기대된다. 같은 태풍을 겪고 있더라도 일기예보를 통해 폭우가 끝나는 시점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안정감은 다르다. 나도 모르게 중간지점에서 대충 하게 되는 현상을 아는 것만으로 생기는 여유는 일기예보처럼 우리 행동양식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연말 회식이었다. 건배사를 하는데, 막내의 말이 너무 인상 깊어 아직까지 생각난다. 그는 마무리로 삼행시를 했다. (마)음먹은 것은 (무)조건 (이)루자. 시작도 중요하지만 책임감의 진가는 끝맺음에서 나온다. 끝맺음을 잘할 수 있는 환경설정이 있다. 데드라인은 알게 모르게 생각을 행동으로 연결시키는 힘이 있다. 소액대출을 저금리에 빌려주는 비영리 조직 Kiva는 마감시간을 활용해 고객들의 신청서 제출 비율을 높였다. 장기기증의 경우도 마감시간을 정했을 때가 시한이 없는 경우보다 서명 비율이 높게 나왔다. 유효기간이 있는 상품권이 없는 상품권에 비해 상품을 교환할 수 있는 비율이 3배 높다. 마감기한이라는 적당한 스트레스 덕분에 결말은 의미 있어진다.
하지만 끝맺을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인간의 인식은 어떤 편향을 가지고 있는데, 결말에 따라 우리 인식은 달라질 수 있다.(#제임스 딘 효과) 사람들은 어떤 사건을 기억할 때 가장 강렬했던 순간(피크)과 그것이 완결되는 순간(끝)을 가장 잘 기억한다. 여행에 관한 어플 TripAdvisor의 리뷰의 대부분은 마지막 순간의 경험을 기준으로 평가한다. 미국 대통령을 선출할 때 기준으로 삼는 기간을 조사한 연구가 있다. 대부분은 4년 전체를 근거로 조사한다고 했지만, 실상은 선거가 있는 마지막 해를 근거로 누구를 찍을지 결정한다고 한다.
결말은 경험 전체를 기호화하고, 우리 인식을 왜곡해 큰 그림을 못 보게 한다. 그러다 보니, 과정은 무시될 경향이 있고, 결과가 잘 풀려야 의미 있는 일로 인식한다. 그러다 보니 결과를 추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점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들이 종종 미화되곤 한다. 고대 라틴사람들은 이미 정점에서 느끼는 허무함을 알고 있는 듯 지혜를 구전한다. Post cotium omne animal triste est. 모든 동물은 섹스(결합) 후 가장 우울하다.
시간은 잘 활용해야 하는 어떤 것이었다. 우선순위를 잘 정하고,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등 여러 자기 계발서가 던지는 규칙은 "어떻게"의 관점이었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로 "언제"를 이야기 하지만, 저자가 말했듯 실용서이기 때문에 어떻게 에서 벗어나진 못했다.(#시간 해커를 위한 안내서) 직접적으로 던지는 방법들은 책을 덮고 당장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생각보다 휘발성도 강하다. 이런 방법론 부류에는 서사(story)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에 관한 여러 과학적 접근과 연구 결과들은 "언제"의 관점에서 서사를 보여준다. 삶은 서사이고, 서사는 리듬 위에서 결정된다.(#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하루(#하루 곡선)를 보아도 일정한 리듬이 있고, 생애를 보아도 리듬이 있다. (#U곡선) 스토리는 직접적인 주입만 하지 않고, 강약이 어우러져 독자들과 밀고 당긴다. 언제 무엇을 할지, 리듬위에 올라가는 것이 바로 그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