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의 힘」 서평
안녕하세요. 체인지 그라운드와 함께 책 읽고 노는 모임 <씽큐베이터로 성장하기> 그룹에서는 8월의 행사를 맞이해 「습관의 힘, 찰스 두히그 지음, 갤리온, 2012」을 선정했습니다. 이번 주제에 딱 어울리는 특별한 손님을 모셨어요. 습관연구소 HABITISM의 카페장 “정기예탁금”님입니다! 「습관의 힘」과 habitism의 콜라보(collaboration)가 기대되는 시간입니다.
안녕하세요. 습관연구소 habitism의 “정기예탁금”입니다. 좋은 습관은 누구나 이루고 싶어 합니다. 새해가 되면 저의 욕심은 끝이 없었고 같은 실수를 반복 했어요. 읽지도 않을 책을 사러 교보문고를 기웃거렸고, 금연과 다이어트를 결심하고, 영어 강의를 결제하며 외국인과 대화하는 상상을 했죠. 하지만, 불타오르는 의지는 한 달이 채 안되어 식었어요. 당시엔 너무 바빴었습니다. 친구들 만나 술 한잔, 여친하고 영화도 보러 가야 했죠.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의 야근과 함께 지친 몸을 끌고 집에 왔죠. 하지만 아무리 피곤해도 웹툰은 밀릴 수 없었고, 페이스북, 유튜브에 있는 온갖 재미있는 영상은 다 내 차지였습니다. 세상과 동떨어지지 않으려면, 헤시 태그를 통한 소통은 필수였죠.
머리는 이미 책 읽고, 운동하고, 영어공부를 말하지만, 피곤한 몸을 납득시킬 실행력은 부족했어요. 가끔 일회용 동기부여에 운동을 마음먹지만, 작심삼일도 못 미쳤죠. 다음날 회식 한방에 몸과 마음은 깔아지고,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침대에 누워 웹툰, 유튜브, 페이스북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그런 관성 있잖아요. 운동, 독서, 영어, 자격증을 통한 성취가 의미는 있다만, 재미있는 일이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 지루할 수밖에 없습니다. 끌어 오르고, 꺼지고, 한편으로는 갈망하고, 실망하기를 매년 반복했어요.
그쯤 우연히 페이스 북으로 <체인지 그라운드>를 보게 되었고, 「완벽한 공부법」을 발견했습니다. 그제야 알았죠. 지속가능을 유지하는 장치는 의지가 아닌 환경설정이라는 것을. 어떻게 하면 이 지루한 진입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그때부터 습관 자체를 연구하기로 했습니다. 때마침 가장 친한 친구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었고, 그 친구는 합격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내년 이맘때쯤에도 지속가능할만한 근육이 필요했습니다. 저희 모두 긴 시간 동안 강도보다는 빈도에 몰입할 장치가 필요했죠. 그렇게 만들어진 헤비티즘 입니다.
어미에 ism이 붙으면 우리말로는 “~주의”라고 하잖아요. 너무 어려운 표현이에요. 브랜딩 마케팅 전문가 황부영 대표가 ism을 '~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다.'라고 풀어썼던 콘텐츠를 본 적이 있는데, 그 해석이 딱 와 닿왔죠. 자본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든지(#capitalism), 개인의 관점으로 바라보든지(#개인주의).
그럼 습관의 관점으로 삶을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그래서 habit + ism입니다. 자연스럽게 책의 머리말에서 저자가 말하는 삶의 관점이 많이 와 닿았죠. 한번 낭독해 보겠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우리 삶이 일정한 형태를 띠는 한 우리 삶은 습관 덩어리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매일 반복하는 신중한 선택들이 신중하게 생각하고 내린 결정의 결과물로 여겨지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선택이 습관이다. 하나하나의 습관이 그 자체로는 상대적으로 큰 의미가 없지만, 결국에는 건강과 생산성, 경제적 안정과 행복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유명한 시의 표현을 빌리고 싶네요.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에, 습관은 다만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habitism을 만든 지 1.5주년이 넘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저는 개인의 관점을 가지고 습관을 바라보았어요. 작은 성취를 통해, 오늘 내가 살았던 하루에 의미를 부여하고, 성장하는 정도였죠. 많은 분들이 저마다의 사정 때문에 지속가능하지는 못했죠.
찰스가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때, 습관은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찰스의 접근은 점진적이죠. 개인의 습관을 살펴보고, 더 나아가 기업과 조직의 습관을 연구했고, 사회의 습관으로 완성시켰죠. 이 완성이 저에게 새로운 관점을 주었습니다. ‘집단의 습관은 간단하지 않은데, 개인의 방향으로 접근’하려 했으니 당연히 맞지 않았죠. 이 사실이 상당히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습관을 타고난 것이라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난 원래 의지가 약한 사람이라 여기고, 꾸준함을 놓아버리는 순간, 그건 더 이상 내 잘못이 아니었어요. 나약한 의지를 물려준 엄빠 탓, 조상 탓이 가능해지죠. 습관이 과학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우리는 이것을 쉽게 치부해버리지 않을 기회가 생긴 겁니다.
습관은 과학입니다. ‘유진 폴리’는 바이러스성 뇌염에 걸려 기억을 잃었고, 뇌 과학 연구팀은 그가 환자로 지내는 남은 일생을 연구하여 습관의 패러다임을 바꾸었죠. MIT연구팀은 초소형 전자 장비를 실험용 쥐들의 두개골에 삽입해 기저핵에 관한 연구를 했죠. 이 두 연구의 공통점은 모든 부분이 마비가 되어도 기저핵만 살아있으면 우리가 습관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원리로 배우기 어려운 운전이 어느 정도 능숙해지면, 라디오를 들으며 동시에 할 수 있습니다. 굳이 주차 공식을 떠올리며, 하나하나 적용하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죠. 과학자들은 뇌가 활동을 절약할 방법을 끊임없이 찾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죠. 이러한 효율 본능과 습관이 된 행동 덕분에 정신적 에너지를 줄일 수 있고, 남은 정신 에너지를 더욱 창조적인 일에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습관이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습관대로 살면 결정적인 순간에 위험할 수 있죠. 돌발적인 상황에 습관처럼 여유롭다면 생존에 불리하죠. 그렇기에 우리 뇌는 수시로 습관을 간 보며 떠봅니다. ‘이 습관을 내가 허락했을 때 내 생존에 위험하지 않을 것인가?’ 뇌로부터 승인이 난 이후에 습관은 조심스럽게 만들어 지죠.
우리 뇌에서 이런 과정은 3단계입니다. 신호 - 반복행동 - 보상이죠. 또 다른 쥐에 관한 실험을 살펴볼게요. 쥐를 미로 속에 넣어두고, 딸각 소리와 함께 미로를 움직입니다. 미로를 통과하면 초콜릿이라는 보상을 주죠. 이것을 반복합니다. 딸각 소리에 미로가 움직이고, 초콜릿이라는 보상 주기를 반복한다면, 나중에 이것이 고리가 되어서 기계적으로 작용하는 것이죠. 이 특정한 고리가 형성이 되면 앞으로 우리 뇌가 이 패턴을 기억할 가치가 있는지 판단함과 함께 습관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거죠. 과학은 말합니다. 신호와 보상을 인식하는 방법을 배우면, 반복행동을 바꿀 수 있다고.
습관의 진입장벽은 높습니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공감이 간다는 것은 작심‘안’삼일 하는 사람이 꽤 많다는 거죠. 그 원인 중 하나를 짚어보고 싶네요. 많은 사람들이 시작과 동시에 거창한 성공을 생각하지만, 시작은 허접할 필요가 있죠. 예를 들어, 호날두의 플레이를 이미 보아버린 우리는 시작과 동시에 그의 플레이를 꿈꾸지만, 간단한 패스 연습(#기본기)부터 익혀야 하는 현실은 지루하죠. 이미 유창한 이들의 영어 대화 (#쏼라쏼라)를 본 사람에게 Do와 Did와 Does를 구별해서 말하는 훈련이 들어올 리가 없어요.
그래서 습관의 입문 단계에서 진입장벽을 넘기 위한 훈련이 필요해요. habitism의 기록 메뉴(record)는 내가 정한 하루의 성취를 기록하죠. 어떤 회원은 직장인이에요. 헤비티즘을 기록하며 운동, 경제신문보기, 독서, 어학공부 이 모든 것을 동시에 다짐했지만, 3회를 넘기지 못했죠. 거창한 시작 앞에서, 기록은 하찮아지죠. 나를 위해 시작했지만, 매일 달성하지 못하는 것은 은근히 불편한 일입니다. 쳐다보고 싶지 않을 수 있어요. 바빠 죽겠는데 굳이 다 기록을 해야 할까 싶고, 기록만 안 하고 매일 하면 되지 싶다가 경제신문 하나 뺐다가, 어학공부도 덜어내고, 하나씩 줄여나간 뒤,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죠.
그래서 고민 끝에 그 시작의 허접함을 직접 보여주고 싶었어요. 예를 들어 비타민을 매일 먹어야 한다고 합시다. ‘매일 먹는다면 피부도 좋아지고, 스테미너가 호랑이 기운이 솟아날 거야.’ 정말 뜯어서 마시고 삼키는데 까지 60초도 안 걸리는 일이지만, 바빠서(?) 못 먹는 거예요. 작은 성취에 의미를 붙였습니다. 매일매일 마시고, 기록하고 인증했죠. 노력이라고 말하기엔 부끄러울 정도로 사소했지만, 이 기록들이 쌓이니 어느새 한 상자를 다 먹었어요. 중요한 것은 이 작은 성취를 했다는 경험이에요. 이 경험은 작은 성취에서 머무르지 않습니다. 찰스도 말하고 있네요.
많은 연구에서 밝혀졌듯이 저녁 식사를 함께하는 습관을 지닌 집안에서 자란 아이들은 숙제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성적도 좋으며, 감정조절도 잘하고 자신감이 넘친다. 매일 아침 자신의 손으로 침대를 정리하는 습관은 생산성, 행복지수, 예산을 통제하는 절제력 등과 상관관계가 있다. 가족과 함께하는 식사나 깔끔한 침대가 좋은 성적이나 절제된 삶의 원인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작은 변화가 연쇄 반응을 일으키며, 다른 좋은 습관이 몸에 배도록 자극한 것만은 확실하다.
헤비티즘 초창기 습관에 대해 거품 물고 성장을 외치던 시절이 있었어요. (성장, 자기 계발, 자아실현 뭐 거의 같은 맥락이죠.) 아무리 몸에 좋은 것과 먹고 싶어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잖아요. 상대방이 관심이 있으나 없으나, 오로지 습관 전도사가 되어 주변 사람들을 괴롭혔어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오만했고, 미안하고 창피합니다. 그래서 1년 전부터는 방법을 바꿨습니다.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서로의 관심을 말하고 듣기로.
어쨌든 그 시절의 헤비티즘에 대한 반응을 돌이켜보면 세 종류로 수렴되더라고요.
1. 우와 대단하다.
딱 거기까지예요. 10명 중 7명은 여기에 속하죠.. 생각보다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이들이 나빠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먹고살기 바쁜 거거든요. 영혼이 없다고 해서 상처 받을 필요도 없죠. 그렇다고 상처를 받았다는 얘긴 절대 아닙니.... 다.
2. 사이트가 뭐야?
일단 궁금증을 갖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그룹이에요. 아 물론 궁금증은 누구나 갖지만, 궁금한 걸 찾는 사람은 생각보다 드물죠. 횃불 들고 앞장서서 혁명을 외치는 것도 실천이지만 검색도 실천이죠. 바쁜 세상 속에서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가 있는 그룹입니다. 이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꽤 정성스러워서 알아서 잘 지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3. 너 한가한가 보다.
냉철과 냉소를 구분하지 못하는 부류죠. 물론 누구나 세상의 중심에서 ‘나’를 외치지만 혼자 살고 있진 않거든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머리가 좋지 않은 증거 중 하나죠. 굳이 불필요한 말을 팩폭, 핵사이다로 착각해서 스스로를 좀먹고 있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가급적 쳐다보고 싶진 않지만, 사회적인 관계망 때문에 얼굴을 안 보고 살 수는 없기에, 한 귀로 흘려서 정신건강을 이롭게 합니다.
저는 관찰을 좋아합니다. 주변 사람들의 말, 행동을 관찰하며 떠오른 개운한 생각들을 붙잡아 두죠. 글은 이 생각들을 잡아두기 위한 장치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영감과 인사이트는 한순간의 신내림처럼 내려오진 않더라고요. 빈번하게 많이 시도할수록 괜찮은 발상을 잡아 둘 확률도 높죠. 그런 의미에 습관도 또 다른 장치죠. 헤비티즘은 이 장치들이 모인 공간입니다. 함께하면서 소통하고 서로에게 좋은 영향까지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정성스럽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들을 공유하는 것. 그것이 바로 헤비티즘이 추구하는 가치이지 않을까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