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가을, 아산 도서관에서 주최하는 무료 서평 강좌 수업을 들었다. 그때 가르쳤던 강사가 나의 독서 사부님이다. 그에게는 책만으로 충족시킬 수 없는 경험의 디테일이 있었는데, 난 이것을 세상 물정이라 부르고 싶다. (사부는 젊은 시절 수산회사, 무역회사, 엔지니어링 회사, 마케팅 회사, 교육회사 등에서 다양한 경력을 쌓았었다.) 현재는 학생과 시민, 사서와 교사에게 독서토론과 글쓰기를 가르치는 강사이며, 4권의 책을 집필한 저자이다. 냉철한 분석력과 논리력, 그리고 공감과 유머까지 겸비했으며, 그의 재능은 전국의 여러 도서관을 통해 지금도 나누어지고 있다.
그 당시, 사부님이 인정하신 우등생이 있었다. 40대에 임씨 성을 가진 백발의 여성이었다. 그녀의 글은 군더더기 없이 심플함에도 묵직했다. 당연히 논리적이고, 그녀의 배려 덕분에 어려운 내용들도 쉽게 잘 읽혔다. 임 선생님의 내공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본인의 타고남도 있겠지만) 그녀가 읽어온 책과 써왔던 글의 양, 오랫동안 독서 모임에서 다져온 다양한 생각과 편집, 충분한 시행착오와 삶의 경험, 이를 통해 쌓이고 숙성된 사고의 넓이와 깊이는 그래 마땅하다.
한 번은 서평을 두고 사부님과 우등생의 찬반토론이 있었다. 사부님은 말했다. “내 글을 읽고 누군가가 그 책을 읽고 싶어 한다면, 좋은 서평이고, 서평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거예요.” 그러자 임 선생님은 의문을 품고 물었다. “내 맘에 들지 않는 책을 비판하는 서평은 좋은 서평이 아닌가요?” 둘 사이의 토론이 어찌 마무리되었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그녀의 의견을 잠시 빌리고 싶다. 책이 마음에 와 닿지 않을 때, 사실 안 쓰면 그만이지만, 어차피 별로라면 ‘그냥’보다는 ‘왜’를 택하고 싶다.
① 막대한 정보량
이 책의 장점은 ‘성공’을 돈을 잘 버는 것이 아니라 ‘삶’의 성공으로 정의했다. 그리고 성공을 만드는 여러 비결을 찾아냈다. 너무 다양해 세상의 모든 성공 케이스가 한 책에 다 들어있는 것 같았다. 독자들이 깨닫기를 바라는 저자의 이상은 다음과 같다. “이쪽 말만 맞고 다른 쪽 말은 틀리다고 고개를 돌리지는 말기를 바란다. 우리는 재판장이 되어 양쪽의 자기 변론을 다 들어야 한다. 듣다 보면 장점이 가장 많고 단점은 가장 적은 답을 알게 될 것이다.(p.9)”
솔로몬의 시선과 장점만을 추출하고자 하는 욕심은 기억을 방해한다. 세상의 모든 장점을 모은다는 것은 국영수사과음미체 전과목을 다 잘하길 바라는 맥락과 통한다. 하지만 이 책을 기말고사 공부하듯 읽을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읽힐 때는 술술이지만, 알코올처럼 휘발되는 기억은 불편하다.
② 병렬식 구성
저자는 다양한 케이스에서 나에게 맞는 합(alignment)을 찾기를 주장한다.(p.331) 이는 연결, 융합, 시너지, 어울림, 조화, 균형, 등의 맥락과 함께하는 멋진 결론이다. 하지만 나는 사회학자 노명우 교수의 말이 더 와닿는다. 그는 자기 계발의 설득력이 체계의 취약함을 감춘다고 비판했다. 이는 논리적 완성도보다도 엄격한 장르 규칙을 준수하며,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부연한다.
「세상에서 가장 발칙한 성공법칙」은 세상의 모든 멋진 말들이 나열되어 있지만, 구성을 살펴보면 이야기의 흐름을 찾을 수 없다. 목차의 65가지의 사례들은 각각 7개의 chapter에 속해 있지만, chapter 간의 구성은 독립적인 나열에 불과하다. 독립적인 나열은 병렬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이 구성은 균형은 있지만, 리듬이 빠졌다. 이런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까. 생각과 느낌을 소리로 표현하면 말이 되고, 문자로 표현하면 글이 된다. 말은 곧 글이다.우리는 이탈된 리듬에 무미건조함을 느끼고, ‘책 읽는 것 같이 딱딱하다’고 부른다.
③ 믿음 1부- 인과관계 파헤치기
가끔씩 믿음과 착각을 구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노명우는 자기 계발 장르 규칙의 속삭임을 표현했다. 그리 어렵지 않아요. 당신도 할 수 있어요. 힘내세요. 누구나 할 수 있는 몇 가지 원칙만 지키세요. 그 원칙이 그들을 성공으로 이끌었어요. 그리고 덧붙인다. 성공은 오로지 성공한 사람의 자질이지. 그 사람이 처한 유리한 사회적 환경은 아니다.
성공을 바라보았을 때, 무엇이 맥락이고 어떤 것이 인과관계일까. 맷은 ‘어느 날’ 세계 제일의 영웅을 꿈꾸어, 프린스턴 대학교를 중퇴하고 중국 소림사로 가서 쿵푸에 도전한다. 그는 쿵푸대회에서는 졌지만, 스스로를 뛰어넘었다고 여겼다. 8개월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고 옥스퍼드의 로즈 장학생이 되었다. 이 예시는 포기가 성공의 또 다른 길임을 말하는 주제인데, 맷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의문이다. 소림사에서의 쿵푸도전기와 적절했던 포기 때문일까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둥지 때문일까. (미국 중산층 가정에서 부족한 것 없이 자랐다는 구절이 나온다.)
③믿음 2부- 모든 것이 가능하다?
잘 나가는 크리에이터의 겸손한(?) 인터뷰를 보았다. 진정성 있는 콘텐츠만 있으면 누구나 스타가 될 수 있단다. 나도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로 인플로언서(#influencer)가 되어 영향력을 펼치고 싶다. 그러나 실버 버튼의 벽(구독자 10만)에 좌절한다. 또한 너무 많은 ‘0’을 다 기재할 수 없어 K라는 단위로 환산해야 하는 ‘팔로워’를 누구나 거느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철학자 한병철은 그의 저서 「피로사회」에서 말한다. 결국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중략) 우울증은 긍정성의 과잉에 시달리는 사회의 질병으로서, 자기 자신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인간을 반영한다.
다 된 믿음에 찬물을 붓고 싶어 하는 얘기가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믿음’은 진정성이라는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가치에 가려져 현실을 외면하기도 한다. 과연 이 ‘믿음’이 내가 아는 그 ‘믿음’인지 의심하고 싶을 뿐이다.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저서 「불안」을 통해 현대인의 역설적인 상황을 표현했다. 성공을 향한 평등한 조건은 실패를 대변할 수도 있다. 우리 모두가 꿈을 성취할 수 있는 민주적이고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능력만 있다면, 자신을 실현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개인의 발전에 있어 출신, 성별, 인종, 연령은 장애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성공을 거둔 사람이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면, 실패한 사람 역시 그럴만해서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된다는 것이다. 낮은 지위는 그래 마땅한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④ 사족
양쪽 입장을 모두 고려하는 관점은 신중하지만, 사족이 된 그의 독백이 설득력을 떨어트린다. 나는 이를 ‘밑밥의 플롯’이라고 부르고 싶다.
협력의 중요성은 지겨울 정도로 잘 알지만 혹시 뒤통수를 맞지 않을까? 그렇다고 무조건 믿어야 하나? 믿지 않으면 눈앞에 몰도바가 펼쳐질 수 있다. 믿으면 나 혼자 바보 얼간이가 될지도 모른다. 신뢰할 것인가, 말 것인가? 이 딜레마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p.61)
이거면 이거고 저거면 저거지 왜 말이 오락가락하냐고? 기회비용을 고려하고 적절하게 포기해가면서 진짜 중요한 가지에 집중하라는 것인가, 시도해보고 싶은 건 다 시도해보라는 것인가? 대체 뭘 어쩌라고? (p.149)
독자의 의문에 대한 공감을 위해, 본인이 ‘설치한 장치’가 이도 저도 아님을 스스로 묻는 것 같다. 물음표를 사용한 문장이 구어체로 바뀌어 가독성을 높이겠지만, 산만함은 몰입을 방해한다.
찬반의 상황 앞에서 서로의 엇갈린 의견은 미묘하게 불편하다. ‘서로 다른 의견을 존중하자’라는 불문율이 납득이 잘 안될 때가 있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은 그렇지 않은 상황이랄까.
한 번은 독서토론 수업 중 두 사람이 찬반 논쟁 앞에서 서로의 의견이 불거진 적이 있었다. 당시 사회자를 맡고 있던 사부님이 이야기했다. "서로 다른 입장 앞에서 상대를 존중하려면 각자의 입장 차이의 비중을 49:51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덕분에 오늘날까지 미묘한 불편함을 덜어주고 있다.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해서 까는 게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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