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의 트렌드는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었다. 자존감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들며, 바람직하게 맞물려가고 있다. 과거로 향했다. 난도질당했던 자존감은 과거의 못된 갑질을 수면 위로 끌어와 처벌 중이다. 그래서 나 역시 미투를 응원하고, 땅콩 회항에 분노한다. 현재로 왔더니, 자존감은 상처 입은 이들을 치료한다. 유튜브에는 자존감 의사들의 치료법들이 다양하다. 나는 이런 희망의 언어를 존중한다. 미래의 자존감은 꼰대를 예방한다. 꼰대 테스트는 그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기도 하며, 변해가는 꼰대를 미연에 방지한다.
녹록지 않은 세상의 물정 앞에서, 수많은 상처를 보아왔다. 그렇기에 우리가 호구가 되길 경계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내가 걱정이 되는 점은 호구에 해당되는 영역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기준 때문에 ‘호의’라는 게 어제는 배려로 분류되었지만, 내일은 호구가 될 수 있다. 불안함에 넘쳐나는 책과 강의들로 자존감을 어르고 달래며 철저하게 지킨다. 그렇기에 점점 여려지는 이것의 속살 때문에 손해 앞에 인색해지지는 않을까. 스멀스멀 올라오는 걱정이 그저 기우이길 바란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함무라비의 경구는 시대를 넘나들며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똑 부러져라. 이런 철저함 덕분에 우리는 세상 물정에 밝아지고, 덜 상처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임계점이 넘어가는 순간부터 우리 마음의 여유는 사라지며, 우리는 보다 덜 합리적이게 된다. 세상 사람들은 이를 두고 이기적이라 말하며, 종재기에 비유하곤 한다. 애덤 그랜트는 주는 것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데, 우리는 성공한 사람을 두고 원래부터 ‘그릇이 크다’고들 얘기한다. 「기브 앤 테이크」는 그릇에 관한 책이다.
<똑부러짐과 합리성의 상관관계>
사회학자들은 개인마다 선호하는 호혜 원칙이 다른 것을 발견했다. 저자는 이 원칙을 기준으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더 주고자 하는 이들은 기버(giver), 더 받고만 싶어 하는 사람들을 테이커(taker), 이 양극단의 사이의 중간값을 매처(matcher)라 부르며, 스펙트럼을 나누었다. 물론, 받고만 싶어 하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의 현상이다. 평범한 테이커는 잔인하거나 극악무도하지 않다. 그저 조심스럽고 자기 방어적일 뿐이다. 세상을 ‘먼저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먹히는’ 치열한 경쟁의 장으로 보고, 성공하려면 남들보다 뛰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고 그에 따른 대가를 많이 얻으려 한다. (p.20)
회사 안은 전쟁터지만, 밖은 지옥이야. 미생의 한 구절이다. 씁쓸한 말이지만, 먹고사니즘의 고단함을 잘 풀어준 명문장이라 생각한다. 위에 말한 테이커의 발상이 전쟁터와 지옥을 잘 부연한다. 나는 ‘여러분. 기버가 되세요.’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무책임하기 때문이다. 단, 우리가 이런 어쩔 수 없는 파란만장함에 취해만 있는다면, 두뇌의 생산적 잠재력을 망칠 수 있다. 더 이상 평온함은 귀족들의 사치가 아니다. 현대사회에서 효율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필수품이기에 우리는 이것을 반드시 배워야 한다. 대체적으로 성공한 기버들은 평온하다. 그들은 어떻게 자신의 평온함을 유지할까.
<1.기버는 생색내지 않는다>
어렸을 때는 스티커를 통해 내 공로를 인정받았고(#참 잘했어요) 보다 쉽게 내 존재감과 소중함을 확인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니, 스티커의 영역도 늘어났고, 이 과정이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나 이만큼 잘했다고’ 생색을 통해 칭찬을 쟁취해야 한다. 사람들은 이 과정을 ‘실적’이라고 부르며, 어제보다 높은 내일은 달리고 있다. 기버는 이것에 개의치 않는다. 작가이자 프로듀서인 조지 메이어는 <심슨가족>의 에피소드를 300개 이상이나 만들고 수정했지만, 생색내지 않았다. 다음은 그의 동료의 인터뷰 발췌문이다.
참잘했데요.
“메이어는 <심슨가족> 크레디트 타이틀에 이름을 올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아이디어를 냈으면서도요. 사람들은 대게 어떤 아이디어를 내면 그걸 지키려고 애쓰는데 메이어는 자기 아이디어를 남에게 줘버리고 이름도 올리지 않았어요.”(p.134)
그의 답변은 오늘날까지 미덕으로 남아 길이 보전되고 있다.
"대본에 너무 많은 이름이 적혀 있으면 권위가 떨어진다고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모두가 밥그릇 하나에 달려들어 나눠 먹으려 한다고 느낀다는 거죠.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레디트 타이틀은 제로섬 게임이 아닙니다. 모두가 올라가도 충분한 자리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남들이 빛난다면 당신도 빛나는 겁니다.”(p.135)
<2.기버는 밟고 올라가지 않는다>
먼저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먹히고 마는 치열한 경쟁의 장에서 먹고사니즘이 과정을 합리화하는 건 흔한 일이다. 누군가가 더 잘 먹고살기 위해 누군가가 나가리가 되는 건 누군가의 오름이 누군가의 내림이 되는 건 썩 유쾌한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그 과정을 정치력으로 포장하며, 서로를 밟고, 감아버리고, 밟히고, 감겨버린다. 기버는 그렇지 않다.
링컨은 백악관 집무실에서도 자신보다 나라의 이익을 먼저 생각한 사람이었다. 1869년 대통령으로 선출된 그는 경쟁자였던 세 사람을 각각 국무장관, 재무장관, 법무장관으로 임명했다. 자신을 지지해준 동지들에게 한자리를 내어주지 않았고, 그런 사실이 도무지 믿기 어렵다는 기자들 앞에서 링컨은 말했다. “우리 내각에는 가장 강한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나에겐 우리나라가 그들의 능력을 활용한 기회를 빼앗을 권리가 없습니다.” (p.36)
<3.기버는 취약함을 인정한다>
나는 같은 말을 해도 어렵게 하는 경향이 있다. 조금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깐 보이진 않을까 업신여김을 당하진 않을까에 대한 두려움이다. 누구나 취약함을 가지고 있으며, 약점이 드러나면 자신의 지배력과 권위가 약해질까 봐 걱정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볼테르는 말했다. “자기가 똑똑하다고 하는 자는 더할 나위 없는 바보다.” 도스토예프스키도 거들었다. 바보임을 알고 있는 바보는 이미 바보가 아니라고.
기버도 마찬가지로 자기 약점을 드러낸다. 그들은 타인을 돕는데 관심이 있을 뿐, 힘으로 누르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자기 갑옷의 빈틈을 보여주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들은 스스로 약점을 드러냄으로써 결국 명망을 쌓는 셈이다. (p.221)
저자는 기버, 테이커, 매처를 두고, 성공의 사다리의 가장 아래쪽에 기버가 있고, 가장 위쪽에도 기버가 있다고 한다. 누구는 호구로 빠져 퍼주다 말고, 누구는 평온하게 성취한다. 전자는 세 가지 중요한 함정에 빠졌다. 사람을 너무 신뢰했고 과도하게 공감했으며 지나치게 소심했다. (p.310) 하지만 성공한 기버들은 역할놀이를 잘했다. 이 책의 화룡점정은 기버들의 역할놀이의 구체성에 있다.
저자의 냉철함이 복잡한 세상 물정을 잘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성공하려면 퍼주라고’ 무책임하게 말하지 않는다. 자존감, 평온함, 베풂이 맞물려 돌아간다. 괜찮은 삶이라는게, 이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