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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문꾼 Jul 27. 2019

호모 슬리피우스를 위한 긴 글 활용법

「우리는 왜 잠을 자야할까 서평」 #구어체 주의

Photo by kate stone matheson on unsplash

INTRO    

 제목을 통해 이미 유추하셨겠지만, 「우리는 왜 잠을 자야할까라」는 책은 '잠을 꼭 자야만 한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책이에요. 뉴욕타임스, BBC 등 여러 권위 있는 저널의 극찬이 신빙성을 더해줄지라도, 두꺼운 책이 주는 좌절감은 완독을 방해하는 불편한 영역이죠.

     

 준비운동을 하지 않으면 심장마비에 걸릴 확률이 높습니다. 독서의 심장마비는 중간에 책을 덮는 경우가 아닐까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제 글이 준비운동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아마존과 뉴욕타임스가 온갖 미사여구를 쓰며, 여러분 “이거 짱이예요.”라고 구슬리지만, 막상 읽어보면 현실은 녹록지 않아요. 어렵거든요. ‘시교차 상핵’, ‘역설수면’ 등의 어려운 용어와 '김개똥'처럼 입에 착착 붙지 않는 과학자의 이름들이 가독성을 방해합니다. 쉬워 보이려고 일부러 의도한 세로축 가로축의 손 글씨가 힙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프 때문에 울렁거릴 수 있다는 것.

    

 여기에 환경을 덧붙이고 싶네요. 세상에는 독서 이외에도 재미있는 것들이 넘쳐나며, 이런 귀한 시간에 낯선 책과 씨름하기엔 인스타그램 한자라도 더 보고 싶은 게 현실이에요. 하지만 책을 샀으니, 읽어야만 하는 왠지 모를 의무감과 읽히기 어려운 상황에서 오는 인지부조화는 우리를 유혹하곤 합니다. 빠른 결론을 내리며 책을 마무리 짓고 싶어 하는 그런 유혹.  ‘아 그러니까 잠을 푹 주무시라는 거지?’      


 사실 좋은 글이 긴 글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묻히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요즘 같은 재미 공화국에서 유통이 잘 되는 글은 전달력과 재미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경우가 종종 있죠. 내용은 그다음 문제입니다. 나를 쉽게 이해 시킬 수 있는 글, 간지 나는 폼나는 어휘, 문체, 문장력 따위에 보다 더 치우치는 그런 경우랄까요. 이런 점을 고려할 때 긴 글은 상대적으로 매력이 없죠. 일단 다 떠나서 읽기가 너무 귀.찮.거.든.요. 하지만 긴 글만이, 오로지 긴 글이어야만 발견할 수 있는 가치가 있습니다.  마라톤 선수들은 초반부터 무리하지 않죠. 42km를 뛰기 위한 긴 호흡이 필요합니다. 이 세계에서는 그걸 바로 “구성(plot)”이라고 하죠.     

 

 긴 글은 큰 그림을 그려야 하므로 미사여구에 신경 쓸 겨를이 없습니다. 논리적인 패턴과 배치를 통해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여야 하거든요. 우리는 이런 글에서 문장을 곱씹기보다는 문단을 배열하고 연결시키고, 활용할 방법을 찾아 나섭니다.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는 이런 방식으로 세상을 바꾼 큰 그림입니다. 전 세계 35개국에 번역되어 출간 중이며 <수면 외교관>으로 인정받고 있어요. 그렇다면 저자가 어떤 방식으로 우릴 설득하는지, 우리는 왜 호모 슬리피우스(Homo Sleepious)가 되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①위협

 협박만큼 효과적인 설득 방법은 없을 겁니다. 이것은 지속 가능하진 않지만, 단기간에는 최고의 효율을 뽑아내죠. 저자는 잃어버렸던 잠은 결코 되찾을 수 없다며,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세계의 최고 기록을 모아놓은 기네스북조차도 그 위험도가 어마어마해서 얼마나 적게 잤는지에 대해서 측정하길 거부했어요. 수면 부족이 불러일으키는 증상들을 나열해 비트에 맞춰, 빠르게 말하면 그럴싸한 랩이 만들어질 수도 있을 겁니다. 알츠하이머병, 불안, 우울, 양극성 장애, 자살, 뇌졸중, 만성통증, 암, 당뇨병, 심장마비, 불임, 체중 증가, 비만, 면역결핍.



②당근

 채찍만 가격한다면 지속 가능할 수 없어요. 어루만질 필요가 있죠. 저자가 말하는 잠의 필요성이 우리의 인식을 바꿔 줍니다. 잠은 그 자체로 당근이 될 수 있거든요. 더 이상 잠은 다음날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행해야 하는 보조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25~30년을 잠자는데, 이는 죽음에 맞서 대자연이 최선을 다해 내놓은 결과물이고, 우리 인생의 1/3을 차지합니다.  

   

 잠을 통해 우리는 학습하고, 기억하고, 논리적인 판단과 선택을 할 수 있어요. 특히 우리의 정신 건강에 유익한 기여를 함으로써, 감정 뇌 회로를 재조정하죠. 우리가 다음날 출근해서 별의별 사람들을 상종할 수 있는 이유도 잘 잤기에 가능한 거예요.

웹툰, 약치기 그림


 잠은 혈액을 타고 도는 인슐린과 당의 균형을 미세하게 조절하여 몸의 대사 상태를 복구하고, 식욕도 조절하고, 심혈관계의 건강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잠은 더 이상 “나태의 상징”이 아닙니다. 서울대 간다고 4시간 자고, 야근 때문에 다음날 속옷까지 챙겨 왔던 시대가 있었다네요. “나 때는 그랬겠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끝났습니다. 메슈워커 박사님도 매일 밤 여덟 시간이라는 수면을 꿋꿋이 지키니까요!   

       

③수업

 단언컨대,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현존하는 지상 최대의 음료입니다. 칼로리도 적고, 달지도 않으며, 가격도 저렴하죠. 덧붙여 하나같이 모두 다 쓴맛 속에서 고소함, 새콤함, 달콤함을 구별할 줄 안다면 그대의 품격까지 보장할 수 있습니다. 커피가 카페인이 있고, 카페인이 우리의 잠을 방해하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잠자는 시간을 아까워하는 현대인들에게는 설득력이 약하죠. 오히려 시험기간과 야근을 위한 약으로 쓰이니 이만한 음료가 어디 있겠어요.     


 저자는 화학 선생님이 되어, 카페인의 각성 과정을 말해줍니다. 우리의 하루 주기 리듬 속에서 수면을 결정하는 2가지 요인이 있는데, 1)24시간 하루 주기 리듬과 2)수면 압력이죠. 우리가 눈을 뜨고 일어나면 뇌 속에는 “아데노신”이라는 화학물질이 쌓이고 있어요. 이게 계속 쌓이기 시작하면 자고 싶은 욕구가 점점 커지는데, 이를 수면 압력이라 합니다. 압력을 느낀 우리는 자러 갑니다. 자는 동안 아데노신은 다시 분해되며, 수면 압력이 점점 걷어지고, 여덟 시간 동안 숙면을 취하고 나면 아데노신은 완벽히 청소되죠.      


 우리의 뇌 속에 아데노신이 쌓이는 자리를 “수용체”라고 합니다. 카페인은 아데노신이 쌓이는 뇌의 자리를 빼앗음으로, 전달되어야 할 졸음의 신호를 차단해 버리죠. 덕분에 우리는 수면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워 똘망똘망 해질 수 있어요.


 이 또렷하고 깨어있다는 느낌은 우리를 좀먹게 합니다. 중요한 것은 커피를 먹고 4시간이 지나도 몸에 들어온 카페인의 50%밖에 제거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물론 잠은 자고 있겠다만, 우리는 쉽게 잠들지 못하고 푹 자지 못하죠. 어쨌든 시간이 흘러 카페인이 제거되면, 차단된 아데노신이 급격이 쌓이며 졸음이 찾아옵니다. 수면 충동과 함께 우리는 소진된 느낌을 받아요. 이것이 바로 <카페인 허탈감>이라는데, 더 많은 카페인을 요구하게 됩니다. 그럼 커피를 더 많이 먹게 되고, 더 쌩쌩해지고, 푹 자지 못하고, 카페인이 제거되면. 카페인에 허기지고, 커피를 더 많이 먹게 되고, 더 쌩쌩해지고, 푹 자지 못하고...(#도돌이표)


④ 비유

 추상적인 것은 두렵고 불안합니다. 이것들은 막연하고, 솔직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때도 많아요. 그래서 인류는 여러 장치들을 통해 추상적인 것들을 구체화해서 생각을 정리해왔죠. 잠 또한 추상적이죠. 잠을 연구하는 이들은 수십 년에 걸쳐 잠의 추상성을 구체화시켰어요.(a깨어있음 b비렘수면 c렘수면) 잠이 분해되는 순간, 잠은 더 이상 두렵지 않습니다.      


 저자는 이야기꾼입니다. 구체화 능력이 상당히 뛰어나요. 비유라는 장치를 통해, 이 어려운 개념을 설명하거든요. 다음은 깨어있는 상태와 비렘수면에 대한 비유예요. 축구장이 군중들로 가득합니다. 그 위에 마이크 하나가 걸려있죠. 수많은 군중들은 경기를 앞두고 있습니다. 군중들은 뇌세포이고, 경기는 잠이에요. 마이크는 군중의 목소리를 기억하죠. 경기 시작 전 군중들은 여기저기서 각자의 목소리로 저마다 떠들고 있습니다. 이는 깨어있는 상태이고, 여러 잡음 때문에 불규칙한 패턴이 퍼져있죠. 경기가 시작되면, 경기의 흐름에 따라 군중들은 흥분과 함께 환호했다가 긴장 속에 침묵을 반복하죠. 통일된 상태이고, 패턴이 일정한데, 이것이 바로 비 렘수면이죠.      

 

 비렘수면이 깊어지면 렘수면의 단계로 진입하죠. 렘수면은 좀 독특해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내가 자는 게 자는 게 아니죠.(#역설수면) 뇌는 깨어 있는 양 보이는데, 몸은 분명 자고 있으니 말이에요. 위에서 말한 마이크가 기록한 뇌파의 패턴도 깨어있는 것인지 렘수면 중인지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렘수면을 두고 얼토당토않은 극장이라고 말해요. 우리는 이때 꿈을 꾸거든요. 동시에 우리 몸의 모든 근육들이 늘어지고, 아무것도 할 수 없죠. 필요한 근육들만 움직입니다.(호흡, 소화 등)


 그외에도 책안에는 렘수면과 비렘수면의 각각의 중요한 역할, 특징에 대한 저자의 정성스러운 설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⑤ 결과물

 물론 비유도 아름답다지만, 성격 급한 저 같은 경우는 한편으로 답답해요.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려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예요.


 두꺼운 책의 장점은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했다는 거죠. 저를 겨냥한 것처럼 저자는 건강한 수면을 위한 열두 가지 비결을 알려줘요. “스마트폰 하지 말자” 따위의 당연한 얘긴 빼고 얘기하겠습니다. 정말 실용적인 것 세 가지만 짚고 넘어갈게요.

      

 첫째로 수면 시간표를 지켜야 한다는 것 이에요. 직장인은 위대합니다. 그 전날 술이 떡이 되도록 먹을지언정, 알람과 함께라면 6시 30분에 눈이 떠지죠. 문제는 불금 이후, 하루 종일 격렬하게 자야만 하는 토요일에도 떠진다는 건 함정이지만. 기상시간에 알람을 맞추는 것은 이미 익숙합니다. 이를 두고 저자는 말하죠. 자러 갈 시간에도 알람을 설정하자!!     


 둘째로 운동은 좋지만, 너무 늦게 하지 말 것. “아침은 왕처럼, 저녁은 거지처럼”이라는 말이 있어요. 저녁을  덜 먹어야 한다는 의무감은 항상 뇌리 속에 박혀있고, 헬스장은 늦은 밤에도 뱃속을 비워야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어요. 건강에 좋을 것 같겠지만 오히려 자기 직전의 운동이 수면을 방해한다는 것. 명심하세요.     


 셋째로 너무 말똥말똥하다면 잠자리에 누워있지 말 것. 지금 자면 6시간 정도 잘 수 있겠으니 아직 늦지 않았다. 왜 내 통장은 텅장 일까. 김대리가 날 싫어하는 거 같아, 나랑 쟤랑 사귀면 어떨까. 온갖 의식의 흐름들이 머리 구석구석을 파헤치고 다닙니다. 499마리째 세고 있는 양들의 개수가 너무 고통스럽죠. 버티지 말고. 과감히 털고 일어나, 긴장을 푸는 활동을 차분히 하시길 추천합니다. (#독서#스트레칭#명상)


OUTRO

 내 얘기를 두고 “노잼”이라고 하면 좋아할 사람이 어딨을까요. 저자는 과감하게 말합니다. “독자가 이 책을 읽다가 졸음이 와서 잠에 빠져든다 해도 실망하지 않겠다.” 잠든 다는 것은 저자의 얘기를 머릿속에 통합하고 기억하려는 행위이니, 책의 취지에 너무 적합하다는 거죠. 그러니, 자기 전에 머리맡에 꼭 두고 주무시길 바랍니다.    

 

 명저에 대해 모두 말하기엔, 부족한 서평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준비운동이 되었으면 해요. 부족한 실력 탓에 아마존에서 좋다고 하는 책들을 마구 사들였지만 못 읽는 경우가 허다했어요. 우선 스스로에게 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완독을 못했을 때 떠오르는 자괴감은 쳐다보고 싶지 않죠. 남들 앞에서는 읽은 척해도, 스스로는 속일 수 없고, 그 사실이 저를 옥죄고 있죠. 사실 나 좋자고 산책인데, 이런 것들이 좀 아이러니한 상황이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누군가 인터뷰에서 말하더군요. 자기 집에 작은 도서관이 있는데, 읽은 책만 있으면, 무슨 재미로 도서관에 가겠냐는 거예요. 언젠가는 반드시 읽을 흐름이 올겁니다. 이 얘길 듣고 나서 완독에 대한 강박을 조금 빼고 나니까, 오히려 완독 하기가 수월해 지기 시작했어요.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 추천에 책을 구매하다가 (너무 어려워) 낚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보통 마감일을 정하고, 같이 읽기 때문에 바로 덮진 않아요. 그러기 위해서 강한 열정이나, 노력에 초점을 두는 것보다는 의미를 생각할 때 동기가 보다 더 지속 되더라고요. 보다 지루한(?) 책을 읽는 방법에 대한 의미를 공유하고 싶어, 어디 한번 접목 시켜봤어요. 언젠가는 써보고 싶었던 얘기인데,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자요.


Photo by Vladislav Muslakov on Unsplash

※ 긴 호흡의 글을 끝까지 읽어주시다니,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 다음의 색깔 적용(초록색)은 제 생각이 아닌 발췌문 및 인용문입니다.

※ <체인지그라운드>에서 시행하는 <씽큐베이션2기 프로젝트,씽큐베이터로 성장하기>  과정 입니다.

※ 구독과 좋아요와 댓글을 통한 피드백은 큰 힘이 되며, 또 다른 개운함으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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