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기행문

김승옥의 「무진기행」

by 산문꾼
KakaoTalk_20191017_095107022_01.jpg 무진기행의 배경이 되는 순천(순천만 갈대밭) 아산 독서모임 남녀노서 최웅열님 作


화면이 밝아지고, 무진으로 가는 버스에서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듣게 된다. 무진에는 명산물이 없다. 바다가 가까이 있지만 그렇다고 (얕은 수심 때문에) 항구로 발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농촌이지만, 그렇다고 평야가 있는 것도 아니다. 바다도, 농촌도 아닌 곳에 어떻게 오륙만이 되는 인구가 살고 있을까.“그러니까 그럭저럭이란 말이 있는 게 아닙니까?”(p.159) 화자의 답변과 함께 화면은 페이드아웃 된다. 김승옥의「무진기행」(문학동네,1995) 도입부이다.



남들이 보기에 무진은 그럭저럭 그러한 장소이지만, 주인공에게 이곳은 특별한 곳이다. 무진에 올 때마다 그의 생각은 다른 곳에서의 그것과 달라진다. 무진에 오기만 하면 다른 어느 곳에서도 하지 않았던 엉뚱한 생각을, 나는 무진에서는 아무런 부끄럼 없이, 거침없이 했었던 것이다.(p.202) 엉뚱한 상상은 일반적인 보통의 세계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이상한 것이다. 이곳에서 주인공은 엉뚱해지지만, 그 이상한 생각을 납득시킬만한 언어가 없다. 언어가 없다면 그럭저럭 표현할 수밖에 없다. “알 수 없다.” “이상하다.” “이유를 모르겠다.”



이상한 생각들은 이상한 장소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워진다. 주인공에게 무진은 어떤 곳일까. 사실, 썩 좋아 보이진 않는다. 어두운 기억, 골방, 폐병, 수음, 태워버린 일기장, 담배 등의 부정적인 뉘앙스를 품은 곳이고, 무엇보다 시체가 썩어 가는듯한 냄새(p.217)가 나는 곳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인숙을 만나고, 어쩌다가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준다. 가는 길에 그는 잠시 멈추어 개구리울음 소리와 반짝이는 별들 앞에서 과거를 회상하고, 이유모를 분함을 느낀다. 그 순간 속에서 가슴이 터져버리는 것 같았다. 별이 무수히 반짝이는 밤하늘을 보고 있던 옛날, 나는 왜 그렇게 분해서 못 견디어했을까.(p.222) 다음 날 그녀와 또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한번 더 이유모를 우울함을 느낀다. 나는 이상한 우울에 빠져서 터벅터벅 밤길을 걸어 이모 댁으로 돌아왔다. (p.225)



그날 밤, 통금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렸고, 주인공은 밤새 잠을 자지 못했다. 사이렌이 희미해지자 그는 납득하지 못하는 상상을 또 한다. 어디선가 부부들은 교합하리라. 아니다, 부부가 아니라 창부와 그 여자의 손님 이리라. 나는 왜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p.226)



이튿날 아침, 주인공은 어머니 묘에 다녀오는 길에 자살한 술집 여자의 시체를 목격한다. 그는 간밤에 못 이룬 잠에 대해 조심스레 의미를 부여한다. ‘그녀의 임종을 지켜주기 위해서는 아니었을까’ 라며 애도하지만, 그는 그 여자를 향하여 이상스레 정욕이 끓어오름을 느낀다.(p.228) 역시나 이상하다.



무진기행은 ‘이상하고, 잘 모르겠는 인간의 심리’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잘 모르겠다. 이상하다’로 끝내기엔 너무 무책임하지 않은가. 하지만 김승옥은 책임감이 강한 작가다. 알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은 주인공이 살았던 단칸방에서 알 것 같아진다. 이 공간에서 그가 쓴 편지에는 ‘쓸쓸하다’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시간의 지루함, 낮잠 이후에 느끼는 허전함, 악몽 이후의 안타까움은 한마디의 ‘쓸쓸함’으로 대체된다.



그런 것들이 굴 껍데기처럼 다닥다닥 붙어서 떨어질 줄 모르는 나의 생활을 나는 ‘쓸쓸하다’라는, 지금 생각하면 허깨비 같은 단어 하나로 대신시켰던 것이다. (p.235) 쓸쓸함은 지극히 일반적인 정상의 언어였지만, 그의 디테일한 심리와 감정을 표현할 수 없던 죽은 언어(死語)였고, 허깨비였다.



무진은 일탈의 공간이고, 이곳에서의 상상은 자유롭다. 하지만 일상에서 내면의 감시자들은 온갖 윤리적, 사회적 장치들로 정상이란 범주에 우리를 몰아넣는다. 정상의 범주에서 쓰이는 언어는 지루함과 허전함, 안타까움의 사정 따위를 봐주지 않는다. 우리가 알 수 없는 감정들로 가끔 괴로운 것은 이것을 표현하는 언어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이상하다’라는 말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다. 상상을 한 것뿐인데, 죄책감 비스무리한 감정은 나의 몫이다.



스쳐 지나가는 일상을 대충 본다면, 웬만한 것들은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깊게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언어의 한계에 부딪히며 고민하게 된다. '이걸 어떻게 말로 표현할까.' '나도 내가 왜 그런지 (이유를) 모르겠다.' 상황을 받아들이려면, ‘보통, 일반, 표준, 중립’ 따위의 그럭저럭 적당한 단어에 스스로를 끼워 맞춰야 한다.



예를 들어, 1에서 10까지 짜증이라는 감정의 스펙트럼이 있다. 난 8 정도의 짜증이 났는데, 이 ‘8’이라는 감정을 표현할 언어가 없다.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언어는 표준적인 것, 5 하나뿐이다. 그렇게 대충 내 감정을 5 정도로 정해버리고, 이 답답한 마음의 끼니를 때워버리면 더 이상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고, 시간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이런 엉뚱함을 그때그때 짚고 넘어갈 필요는 없지만, 가끔은 내 이상함을 쳐다볼 가치는 있다. 억압된 것들은 언젠가 회귀할 테니까. 나만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때, 문학은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이상한 상상을 하는 건 그대만이 아니에요.’ 작가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상함이라는 말 대신 다른 말을 쓰려한다. 무진스럽다. 나의 무진은 어디이며, 나의 무진스러움은 무엇일까.


2.jpg 무진기행의 바경이 되는 순천(용산전망대), 아산독서모임 최웅열님 作




keyword
이전 09화철학이 모국어임에도 혼란스럽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