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모국어임에도 혼란스럽다면

탁석산의『 자기만의 철학 』

by 산문꾼


giammarco-boscaro-zeH-ljawHtg-unsplash.jpg Photo by Giammarco Boscaro on Unsplash


철학은 어렵다. 철학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것의 언어가 낯설기 때문이지 않을까. 익숙하지 않은 철학의 언어 때문에, 나는 의심하기 시작한다. '내가 읽고 있는 게 모국어인지, 흰 건 종이고 검은 건 글씨인 건지.'


그렇다면 다른 분야의 언어는 어떨까.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한 인터뷰에서 말하길, 소설은 가장 구체적인 상황과 가장 생생한 인간을 만날 수 있는 통로라고 했다. 이것은 문학의 언어이다. 지식 소매상 유시민이 그의 저서 『역사의 역사』에 서술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역사의 매력은 사실의 기록과 전승, 그 자체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생각과 감정을 나누는 데 있다. 이것이 역사의 언어다.



철학자 탁석산의『자기만의 철학』(창비, 2011)은 철학의 언어를 배우기 위한 기본서다. ‘청소년 도서’로 분류된 이 책의 표지를 보고, 어떤 어른은 내가 읽어야 할 책이 아니라며 착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에 먼저 던져진 어른의 무게가 청소년의 무게보다 더 무겁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불하는 돈의 무게, 겪어왔던 고생의 무게, 느껴왔던 희로애락의 무게 따위가 그렇다.



하지만 바쁜 세상 속 ‘생각의 무게’는 나이와 비례하지 않을 수 있다. 생각하는 대로 살고 있는가, 사는 대로 생각하는가. 만일 후자라면 우리 모두 철학 앞에서 질풍노도이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나는 철학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 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지나친 청소년기의 혼란스러움을 되짚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사는 대로 생각 중이라면, 이 책은 현재의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시도이기도 하다.



철학의 사전적 정의는 ‘인간이나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정의만 가지고 세상을 이해할 수 있었다면, 백과사전은 영원한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언어의 한계 때문에 사전적 정의(定義)만으로는 철학을 이해할 수 없다. 저자는 생각의 도구들을 통해, 우리가 철학에 비스무리하게 접근할 수 있게 도와준다.



저자는 과학과 철학을, 종교와 철학을 비교한다. 첫째, 세상을 통째로 이해하려는 인류의 시도가 있었다. 과학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모든 것을 수식으로 표현(p.42)했다면, 철학은 세계를 파악하기 위해 모든 것을 언어로 표현(p.44)했다. 둘째, 삶의 의미 앞에서 인류의 고민이 있었다. 왜 사는 걸까. 신이 그렇게 하라고 말했고, 믿고 받아들이면 알 수 있다고 했다.(p.85) 이것이 종교였다. 반면에 철학은 끊임없이 고민한다. 왜 사는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왜 사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철학이다.



철학을 향한 저자의 접근법이 친절하기에 이 책은 잘 읽힌다. 비교의 방법 이외에도 예시를 들고, 분류를 하며 설명한다. ‘직접적인’ 것들은 와 닿지 않을 때가 있다. 만약 '철학은 ○○다.'라고 정의 내렸다면 그랬을 것이다. 왜냐하면 직접적인 설명은 머릿속에서 나만의 언어로 숙성할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려운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끌어오는 그의 간접법 덕분에 우리는 철학이 무엇인지 보다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다.


이런 저자의 철학을 희망의 언어라 부르고 싶다. 희망은 일종의 할 수 있다는 믿음인데, 이것은 우리 사회의 허황된 약속과는 다른 접근이다.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약속은 허황이다. 그래서 나는 진정성만 가지고 열심히만 한다면 여러분도 할 수 있다는 말이 너무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허황은 불안을 부추긴다. '누구나'라는 이론적 평등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들을 못하면, 실패는 어디까지나 내 몫이 돼버린다.



탁석산은 누구나 생각을 하지만 누구나 철학을 하는 것은 아니라(p.168)고 한다. 그는 철학을 시작하는 누군가를 위해 내 생각이 어떻게 철학으로 바뀔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자기만의 철학』을 읽은 누군가는 철학의 언어를 접하게 되며 첫걸음을 뗄 것이다. 바쁜 세상 속 남들처럼 정신없이 지내다가 어느 날 문득 그 첫걸음의 감각이 스쳐 지나간다면. 자기만의 철학은 그렇게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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