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당시 우리는 휴학을 하는지 마는지에 대해 팽팽하게 논쟁 중이었다. A와 나는 서로의 입장에서 각자의 견해를 털어놓았었다. “너랑 나랑 틀리지.” 갑자기 내 머릿속 맞춤법 회로에 비상등이 켜졌다. ‘너랑 나랑 다르지.’ 정정하고 싶다. 다름은 같지 않은 것이고, 틀림은 맞지 않은 거라고, 그러고 싶었지만, 굳이 짚고 넘어가진 않았다. 맞춤법을 향한 내 오만 때문에 대화의 맥이 끊겼고, 토씨 하나에 대화의 본질이 흐려진 것 같았다. 나는 다른 맞춤법은 잘 모르면서도, 유독 ‘다르다’와 ‘틀리다’는 불편하곤 했다. 왜 그랬을까.
가끔이긴 하지만, 글을 읽다 운이 좋으면, 과거의 물음과 그것에 대한 답변까지 세트로 딸려온다. 명확한 답이 아닐지라도 간지러운 물음을 긁어주며, 내 나름의 이해로 마무리 지을 수 있는 그런 현상 말이다. 나는 한병철의 『피로사회』(문학과 지성사, 2012)를 읽고 다르다와 틀리다의 예민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저자는 지난 세기를 면역학적 패러다임(p.12)이라 규정했다. 사람들이 세상을 면역학적 관점에서 바라보았다고나 할까. 그 당시, ‘낯선 것은 무조건 막아야 한다는 맹목성이 있었다.’(p.12)고 한다. 나와 다른 것들은 질병처럼 여겨졌고, 이것들이 내 안에 들어오지 못하기 위한 면역력을 가져야만 했다. 그래야만 낯선 것들이 ‘나’를 침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민자, 난민, (컴퓨터의) 바이러스는 위협적인 존재들(p.14)이었다. 나와 다른 것들은 잘못되었기 때문에 틀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고, 낯선 것들에 대한 경계들은 무너졌다.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을 갈라놓는 규율 기관들의 장벽은 이제 고대 유물처럼 느껴진다(p.24)는 저자의 말을 곱씹기 시작했다. 나와 다른 것들이 틀렸다고 말하는 건, 무례하고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것이라 배웠던 것 같다. 그래서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분하지 않는 것이 불편했나 보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성(姓)을, 정치를 대상으로 나와 다른 거지, 틀린 거라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렇게 배웠다.
다름을 인정하는 시대가 왔다. 오늘날의 우리는 다름에 대해 꽤 관대하다. 자연스레 비교는 의미가 없어졌다. 비교는 같은 것들끼리 하는 것이다. 키, 수능성적, 연봉, 아파트 평수 따위의 동일한 기준이 있어야만 가능하며, 나와 ‘다른 것들’과 하는 비교는 무의미하다. 그렇기 때문에 ‘남들이 저렇게 사니까 나도 남들처럼 살아야겠다’는 당위는 힘을 잃어가고 있다. 지난 세기가 바라던 안정적인 직장, 결혼 적령기, 출산과 육아라는 평범함의 매력은 희미해지고 있다.
타인과 했던 비교는 이제 나에게로 넘어왔다. 나는 하나뿐인데,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 그리고 앞으로의 나. 나에 대한 비교는 ‘성장’이라 불리며, 우리는 무럭무럭 자라나길 바란다. 어제보다 더 뛰는 오늘의 나, 오늘보다 더 날고 있을 내일의 나. 지속 가능하게 계발하며, 갈고닦아야 한다. 그래서 저자가 말한 프로젝트, 이니셔티브, 모티베이션(p.24)이라는 단어가 너무나도 와 닿는다.
어느 누구도 어제보다 실적이 더 좋아야 한다고,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고, 성공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았다. 그저 스스로가 불가능한 게 없다(p.28)고 믿기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주문을 외우는 걸 들었다. “여러분도 능력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출세길 앞에서 정해진 신분의 장벽이 허물어졌고, 성과중심의 능력사회는 모두가 평등해 보이도록 만들었다. 재능과 능력이 있는 사람의 삶의 위치가 올라가는 것은 마땅한 인과관계이며, 이 정도면 현대인들을 고무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시대가 당연하게 여기는 믿음에 의구심을 품는 것. 이것이 철학의 역할이지 않을까. 철학자 한병철은 모든 게 가능한 ‘성과사회’를 의심했다. 그렇기 때문에 『피로사회』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는 이들이 읽어볼 만한 책이다. 저자는 우리가 성과나 능력, 생산성 따위의 믿음을 지나치도록 긍정하고 있는 부분을 집어준다. 과잉생산, 과잉 가동, 과잉 커뮤니케이션이 너무 많은 긍정을 초래하고, 그것들은 폭력(p.18)이 될 수도 있음을 의심한다. 그런 생각들이 엮어져서 『피로사회』가 되었고, 저자는 독일에서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문화비평가가 되었다.
나는 오늘도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나를 갈고닦는다. 편의상 ‘자기 계발’이라고 부르겠다. 나는 실제로 성장을 하는 중인가, 성장과 무관하게 그저 노력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취해있는 것인가, 취미를 즐기고 있는 걸까, 독서하는 내 모습에 그저 (잘 살고 있다고) 안심하는 중인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이미 자정을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