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와 건더기 사이에서

김훈의 「화장」

by 산문꾼
rafael-saes-_hY9KZ-V_as-unsplash.jpg Photo by Rafael Saes on Unsplash


건더기는 없고 껍데기뿐이었지만, 이 업계에서 건더기와 껍데기가 구별되는 것도 아니었고 껍데기 속에 외려 실익이 들어있는 경우는 흔히 있었다. (p.56)



건더기와 껍데기는 같은 글자 수에 비슷한 발음이지만, 다른 무게를 가지고 있다. 건더기는 영양가 있고, 알차며, 실속 있다. 하지만 껍데기는 말라있고, 내용이 없고, 허울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에게도 외모 보다는 내면의 중요성이 더 강조된다. 외모의 근거는 얼굴밖에 없지만, 내면에는 인격이 있고, 성품이 있고, 마음이 있다. 그래서 내가 부모라면, 아이에게 껍데기보다는 건더기 같은 사람이 되라고 말하고 싶다.



건더기만으로 알찼으면 좋겠지만, 현실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뭣이 중헌지.’ 때로는 상황 앞에서, 건더기와 껍데기의 경중은 희미해지기도 한다. 건더기가 중요한 걸 머리로 알면서도 오히려 껍데기에 기울일 수도 있다. 김훈의 단편소설 「화장」은 그런 건더기와 껍데기의 경계를 허문다. 그는 글로 그렸고, 글로 풍겼다. 그리고 2004년 제28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한다.



소설은 죽어가는 것과 살아 있는 것을 대비시킨다. 주인공인 ‘오상무(나)’는 뇌종양으로 투병중인 아내의 임종을 지킨다. 동시에 그는 재벌급 화장품 회사의 (인정받는) 상무로서, 신입사원이었던 추은주를 마음속에 품고 있다. 아내의 삭정이처럼 드러난 뼈대는 그녀의 빗장뼈와 대조된다. 항암제 부작용으로 부스러지듯 빠져나오는 음모, 늘어진 피부에 피어난 검버섯으로 아내를 그렸고, 희미하고 선명한 푸른정맥과 노을빛 살들로 추은주를 그렸다.



소멸과 생성을 ‘냄새’로 묘사한다. 아내의 똥은 멀건 액즙이었고, 삭다 만 배설물의 악취는 찌를 듯이 날카로웠으며, 따로 노는 똥냄새와 약냄새는 코를 찌른다. 죽어가는 아내의 냄새다. 주인공은 그녀와 마주친 엘리베이터 안에서 젊은 어머니의 젖냄새를 맡는다. 그 냄새는 엷고도 비린 냄새이며, 가까운 냄새인지 먼 냄새인지 분간되지 않은 냄새고, 확실하고도 모호한 냄새였다. 출산한 추은주의 냄새다.



아내의 병을 설명하는 의사와의 대화에서 건더기와 껍데기의 경계는 희미해진다. 의사가 할 일은 수술하기 전에 환자 또는 그의 보호자에게 진단내용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다. 그는 할 일을 했을 뿐이고, 그의 할 일은 생명을 살리는 건더기다. 하지만 아내의 임종을 바라보는 듣는 이에게, 그의 뻔한 설명은 껍데기에 불과했다, 그의 말은 비어있었다. 그의 말은 종양 또한 삶의 증거이기 때문에 이도저도 아니라는 말처럼 들렸다. (중략) 뻔한 소리였고, 하나마나한 소리였지만, 나는 그때 그의 뻔한 소리의 뻔함이 무서웠다. 그리고 그 무서움은 무덤덤했다.(p.38)



상갓집에서도 건더기와 껍데기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아내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고, 주인공은 상을 치른다. 사장은 위로의 말을 건내는 척하더니, 상중인 오상무에게 업무를 지시하고, 자신은 선약이 있으니, 내일 방문한다고 전한다. 1과장 박진수와 2과장 정철수는 서로의 주장을 피력한다. 예의가 아닌 걸 알면서도, 상갓집에서 여름광고 이미지 문안의 결재를 요구한다. 올여름 화장품 광고의 이미지를 ‘내면여행’에 둘 것인지, ‘가벼움’에 둘 것인지 결정을 내려달라는 것이다. '내면여행'은 품격있는 이미지에 중량감을 갖고 있어 안정적이다. 무겁고 질퍽거리는 여름엔 '가벼움'이 더 와닿고, 이미지로 연출하기 유리하다.(p.66) 박과장과 정과장은 상갓집에서 갈팡질팡 거린다.



마지막 오상무의 결정으로부터 건더기와 껍데기는 붕괴된다. “가벼워진다로 갑시다. 내면여행은 아무래도 너무 관념적이야." 가벼움의 선택과 함께 ‘아내를 향한 충분한 애도’, ‘아내와의 추억’이 추락되는 느낌이다. 덩달아 그녀가 애지중지한 애완견 보리도 안락사 되며, ‘그녀의 마지막 자취’ 또한 사라졌다. 이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면, 이를 바라보는 무덤덤함이 우리 존재를 참을 수 없도록 가볍게 만든다.



살아가고 있는 것들은 건더기와 껍데기 사이에서 경계를 넘나들며 무거움과 가벼움을 반복하고 있다. 이 얼마나 얄궂은 현실인가. 작가가 속삭이는 것 같다. ‘상황은 언제나 우리를 구속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껍데기가 될지, 알맹이가 될지는 중요한 게 아니에요.’




『강산무진 』김훈, 문학동네,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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