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교냐 순교냐, 그것이 문제로다

엔도 슈사쿠의 『침묵 』

by 산문꾼

mike-labrum-fvl4b1gjpbk-unsplash.jpg Photo by Mike Labrum on Unsplash


『침묵』(1982, 홍성사)은 역사적 사실과 기록을 배경으로 하고,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소설이다. 기리시탄(크리스찬) 탄압 시기, 로마 교황청은 일본에 파견한 페레이라 신부의 배교 소식을 들었다. 명망, 존경, 불굴, 명예 등 온갖 찬사에 어울렸던, 그가 배교라니. 교황청 당국은 혼란스러웠다. 한편 그 소식을 들은 페레이라의 제자들은 스승에 대한 사건의 진위를 파악하고자 (여기에 젊은 열정이 더해져) 위험한 선교를 떠난다. 이 이야기는 그렇게 떠난 로드리고의 기행문이다. 그의 여행은 ‘배반의 플롯’이며, 유망한 젊은 신부의 순교에서 배교까지 여정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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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야기의 얼개보다는 다른 시선에 손이 간다. 첫 번째 방점은 로드리고의 내적 갈등이다. 그의 신앙심은 강인하다. 열악한 환경은 그를 막지 못한다. 음식이 빈약해도, 잠자리가 불편해도, 그는 찾아오는 신도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의 신앙심은 관대하다. 그를 배신하여, 붙잡히게 만든 기치지로가 고해성사하여도, 분노를 발설하지 않고 그저 들어준다. 그의 신앙심은 총명하다. 갇혀 있는 상황 속에서도, 일본 관리가 기독교를 비판하자, 요목조목 반박하며 토론한다. 그의 신앙심은 굳건하다. 그를 따르는 신도들이 참수당해도, 그의 동료 가르페가 신도들을 따라 죽게 되어도 믿음은 변함없다.



강인한 신앙심은 굶주림 앞에서 흐려진다. 기치지로의 나약한 신앙심을 무시했던 강인한 이는 나약한 이와 타협하며, 허기를 채우고 갈증을 달랜다. 이 협상으로 로드리고는 한 번 더 배신당한다. 관대한 신앙심은 사그라지긴 했지만, 배신한 자에 대한 경멸까진 숨길 수 없다. 총명한 신앙심은 편안한 감옥생활과 관대한 일본 관리 앞에서, 조금씩 좀 먹어간다. 굳건한 신앙심은 무용(無用)했다. 신도들의 고통과 죽음 앞에서, 로드리고의 기도에 대한 답변은 침묵뿐이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며, 얼마나 우스운 환영을 쫓았는지 회의한다.(p.106) 그리고 배교한다.



두 번째 방점은 작가의 연출에 찍었다. 이것은 내가 마치 주인공이 된 것 마냥 착각하는 효과를 불러온다. 책을 읽다 보면 로드리고처럼 생각하게 되고, 로드리고처럼 우월하게 된다. 그리고 ‘페레이라’를 바닥까지 끌어내린다. 비록 읽고 상상한 게 전부였지만, 로드리고의 관점에서 온갖 고생을 흡수한 독자는 페레이라가 주장하는 납득이 그저 변명처럼 들릴 것이다.



“나는 필요한 존재라네. 이 나라 사람들도 지식을 갖추고 있지만, 천문학이나 의학에서는 나와 같은 서양인이 아직은 필요하기 때문이야. 나는 내가 그들을 도울 수 있어서 보람을 느낀다네. (중략) 이 나라에서 나는 결코 무익한 존재가 아니라네. 이렇게 유용한 존재지. 바로 그거라네,”(p.224)



반면에 (나는 신앙이 없음에도, 고생하며 선교활동을 한 것도 아니지만) 로드리고의 우월감은 곧 나의 몫이 되어버린다. 그는 배교를 제안하는 페레이라에게서 흠을 발견한다. 나약한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더 늘리려는 그런 나약함이랄까. 그리고 로드리고 자신은 그렇지 않은 사람임을 재차 확인한다. 페레이라의 고독과 자신의 적막함을 비교했을 때, 신부는 비로소 자존심이 만족되어 미소 지을 수가 있었다.(p.240) 페레이라는 비참했고, 그의 배교는 한심했다. 위대한 연출이다.



신도들이 눈앞에서 죽어가는 실존적 위기 앞에서 신념은 무엇에 쓰일 것이며, 신념이 거세되어버린 쓸모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책은 얼핏 종교에 관한 책처럼 보이지만, 종교 자체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책에서 말하는 종교는 수단에 불과하다. 그저 거들뿐. 종교라는 말 대신에 다른 걸 붙여 볼까. 돈이든 꿈이든 삶이든, 그리고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무엇이든. 사실 우리가 질문하게 되는 건 안락함보다는 불편함이기에, 나는 오늘도 배교와 순교 사이를 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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