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공부를 욕망하게 하는가

고미숙의 『호모쿵푸스』

by 산문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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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철학자가 말했다. “매슬로의 욕구 단계설은 잘못 번역되었다.” 인간의 욕구는 5단계로 나뉘는데 (생리적, 안전, 애정 및 소속, 존경, 자아실현) 하위 단계 욕구가 충족돼야, 상위 단계 욕구가 생긴다는 그 매슬로의 욕구 말이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를 높게 쳐주는 걸 보면, 우리는 우상향의 욕구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이것들을 단계적으로 채우며 만족한다 여기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다음은『존재의 심리학』을 원서로 읽은 이의 번역이다. "위의 욕구가 채워지면, 아래 욕구는 별 고민거리가 안 된다."



어쨌든 맨 꼭대기에 있는 자아실현이란 말이 거창하긴 해도, 이 비스무리한 것 때문에, 나는 새해가 되면 읽지도 못할 책을 사러 교보문고를 기웃거린다. 독서란 것이 어떤 성장을 상상하기에 충분한 상징이지 않은가.



성장에는 공부가 필요하다. 고전문학 평론가 고미숙의 책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2007, 그린비)가 말하는 공부는 수단이 아니다. 그녀의 공부관은 삶 그 자체이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누구나 경험의 편폭이 넓어지게 마련이다. 아이를 낳고, 부모님이나 친지가 세상을 떠나고, 생업의 전선을 누비며 산전수전을 겪는 등 생로병사가 목전에서 펼쳐지게 된다. 그것들을 지혜롭게 통과해 나가려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공부해야 한다.(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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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풍파를 맛본 이들의 공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저자는 대학 밖의 배움터에서 고전 강의를 듣는 엄마들의 공부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아줌마들의 공부를 향한 열정은 애당초 경쟁력이나 고상한 취향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뭐라 규정하기 어려운, 아주 원초적인 열망에 해당된다.”



저자도 규정하지 못한 원초적인 열망은 무엇일까. 사실 자본주의에 사는 우리에게 익숙한 건 교환이다. 명문대의, 자격증에 의한, 공무원을 위한 결실이 빠진 공부로는 자유롭고 평등해질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음에도 타율성에 지배받고, 무한경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에 어쩌면 이것은 모순이다. 이런 경우 공부라는 활동에 들어있는 모든 생명력은 완전 잠식(p.53)되고 만다.



채집해 온 단어를 한번 끼워 넣어본다. 공부의 원초적인 열망은 소통이 아닐까. 그러니까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능력 말이다. 특히 인간은 그중에서도 발언권을 가장 갈구한다. 누구든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할 때, 두 가지를 욕망하게 되는데, 하나는 자기의 말에 귀 기울여주기를, 또 하나는 자기의 말이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기를 바란다.(p.102) 이러한 구술능력은 유머와 공감을 겸비한 일종의 편집력이다.



이것이 망가진 이들은 불편하다. 왜 조금 더 유리한 지위를 가지고, 솔직함과 무례함을 구별 못 해 기어코 상처 주는 이가 있지 않은가. 어른이 아이에게,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덜 아쉬운 이가 더 아쉬운 이에게. 이런 수직적인 구조로는 아무리 출세한들, 욕망을 채우진 못할 것이다. 이미 소통이 망가진 한 사람 고치자고, 위험을 무릅쓸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침묵은 당장은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이며, 동등한 입장이라면, 굳이 흠집을 바로잡는 데 쏟을만한 에너지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욕망을 채우려면 공부해야 한다. 그것을 고전으로, 문학으로, 낭송으로, 몸으로, 글쓰기로, 핵심은 함께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무엇을 먹고 마실까 보다, 누구와 먹고 마실까’를 생각하고자 한다. 고전은 빈곤한 텍스트가 아니므로 지금껏 살아남았다. 그래서 어려울 수 있다. 글을 읽는 것보다 글씨를 넘기는 날도 있을 테고, 나는 원어민인데, 모국어 앞에서 하찮아지는 어떤 날도 경험하겠지. 그러나 그 하루는 결코 공쳤다고 할 수 없다. 엄청난 공부의 바다를 헤엄친(p.192) 날이기 때문이다.



『호모 쿵푸스』는 (공부라는) 욕망의 배치를 바꿀 수 있는 위험한 책이다. 고미숙의 언어를 본 이상, 공부에 대한 내 상식은 의심스럽고, 만약 동의하지 못하더라도 이런 공부가 있을 수도 있겠거니 싶은, 아니. 그런 소통은 이미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먼저 나지도 않고 뒤에 나지도 않아 한 세상에 함께 태어났는데, 하필, 남쪽 땅도 아닌 북쪽 땅도 아닌,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기쁨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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