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문꾼 May 10. 2020

취향의 시작

EBS <나도 작가다> 공모전

Photo by Nathan Dumlao on Unsplash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인물을 묘사함에 있어 최고의 장치는 아마 등장인물의 취향이 아닐까. 다음은 김승옥 작가의 단편 <무진기행>에서 ‘조’를 소개하는 짧은 구절이다. “옛날에 손금이 나쁘다고 판단 받은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은 자기의 손톱으로 좋은 손금을 파가며 열심히 일했다. 드디어 그 소년은 성공해서 잘 살았다.” 조는 이런 얘기에 가장 감격하는 친구였다.



 자수성가의 플롯은  여럿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어왔다. 아버지 사업이 망한 뒤 찾아온 어려운 형편 속에서의 성공,  태어날 때부터 무언가 부족했던 사람이 고난과 역경을 뛰어넘은 성공. 나 또한 마찬가지로 이런 얘기에 가장 감격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난날을 돌이켜보건대 자수성가의 플롯은 상당히 위험하다.



 이것은 나를 나답게 만들지 못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어떤 인물을 묘사하는데, 최고의 장치는 인물의 취향이다. 취미부터 시작해, 좋아하는 음식, 선호하는 음악일 수도 있다. 기억에 오래 남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 사람으로 치자면 어떤 이에게 동질감을 느끼는지, 타인에게 안정감을 느끼는 거리는 어느 정도인지도 해당될 것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이것을 가장 깊은 곳에서의 울림이라고 표현했고, 김영하 작가는 인물 내면의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취향이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실체 없는 성공을 향한 노오력 뿐이다. 신기한 건 성공에도 유행이 있다는 것. 얼마 전까지는 내 집을 갖는 것이 성공의 표현방식이었다. 그래서 월세보다는 전세를 더 후하게 쳐줬고, 그 끝에는 대출 없는 ‘자가’가 있었다. 시대가 바뀌었고, 사람들은 무리해서 내 집을 갖기보다 더 괜찮은 돈쓰기가 있단걸  알기 시작했다. 그러자 세상은 다른 욕구를 팔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유사 취향이다.



  유사취향의 첫 번째는 경제적 자유이다. 멋진 말로 포장되었어도 결국 여러 루트로 돈 벌기다. 덤으로 ‘자유’라는 말은 언제든지 사표 장을 집어던질 때의 자유도 포함되겠지. 이렇게 잘 포장된 포부가 스트레스받는 직장인을 유혹한다. 그러나 그만두기 전 확인할 것이 있다. 월급의 액수엔 민감하지만 정해진 날에 들어오는 급여의 안정감엔 너무 무디진 않은지. 드라마 <<미생>>에서 말했듯, 직장 안은 전쟁터지만, 직장 밖은 지옥이니. 어쨌든 이 모든 것을 부동산, 주식, 브랜딩, 마케팅 유튜버들이 팔고 있다.



 유사취향의 두 번째는 자기계발이다. 돈벌기 시작했을 때의 최고의 장점은 엄빠눈치 안보고 갖고 싶은거 다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부양가족 없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은 먹잇감이 된다. 맞벌이 부모 슬하에서 베이비시터가 필요한 우리는 학원을 전전했고, 무언가를 배우는 데 익숙했다. 영어, 수학은 물론이고 논술, 피아노, 컴퓨터, 미술 등 대한민국이라는 좁은 땅에는 세상의 모든 분야를 가르치는 학원이 있었다. 어른이 된 오늘날에도 PT샵에서는 3주 안에 10kg을 감량할 몸매를 팔고 있고, 서점에서는 당연한 말만 모아놓은 책을 팔고 있다.



 여기서 좀 더 고도화된 방식은 바로 소셜 살롱이다. 옛날 프랑스에서 지성인과 예술가가 모여 말하며 놀던 사교의 공간이 다시 펼쳐진다. 공간과 콘텐츠를 중심으로 모여서 오프라인으로 소통하는 것.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여행을 배우고, 음악을 배우는 등 가치라는 것이 더 세밀해졌으며, 어차피 쓸 돈이라면 더 섬세하게 돈을 쓴다.



 나는 클래식한 취향이든, 유사 취향이든 시간에 정성을 들이는 게 참 좋다. 하지만 마음먹은 것보다 이것들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나답다는 것은 질풍노도의 일탈이 아니다. 꽤 많은 정성이 필요하고, 포기하고 싶은 구간을 넘기기 위한 훈련이 요구된다. 가장 중요한 건 일단 결제를 했다면 그만두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사실 진득하게 무엇하나 꾸준히 이어간 적이 없는 나의 20대는 좌절 그 자체였으며, 의지는 박약했다.



 습관을 의지의 문제로만 여겼던 나는 오만했고, 보란 듯이 실패했다. 이것은 열심히 노력해야겠다는 의지 따위의 문제가 아니었다. 세상엔 내 재미를 앗아갈 것들이 너무 많았으며, 비싼 돈 주고 결제한 게 아까워 어쩔 수 없이 시작 하기엔 돈으로 가격을 매길 수 없는 바쁨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래서 하루아침에 마음먹는다고 되는 것은 습관이 되는 건 아니기에 취향을 기록하는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평범한 사람이 오늘 하루를 기록 하다 보니, 취향을 알아가게 되고 나답게 된다. 이 험한 세상 속 유행만 좇다 눈먼 돈으로부터 나를 지키려면 어느 정도 전략이 필요하지 않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