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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문꾼 Jul 12. 2020

이건 정말 두렵'씀'

EBS <나도 작가다> 2차 공모전

Photo by Elti Meshau on Unsplash


 내 취미는 글쓰기다. 취미가 글쓰기가 될 수 있던 팔(8) 할은 아마 내 직업이 글을 쓰는 직업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이야기는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입사원 딱지가 떼지기 시작하더니, 모든 술자리를 따라갈 필요가 없다는 걸 알기 시작했고, 잠이 쏟아진 퇴근 시간이 말똥거리기 시작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먹고살만해지니 무언가를 해야만 할 것 같았다. 


  2000년대 학창 시절을 보낸 나는 독학보다는 학원에 익숙했다. 공부는 열심히 안 했어도 학원에서 돌아오면 뭐라도 한 것 같은 뿌듯함이 있었다. 그 뿌듯함은 공부하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피할 수 있는 안전 장치기도 했고, 공부하고 왔으니 1시간 동안 떳떳하게 게임을 할 수 있는 어떤 안정감이었다. 이런 식으로 내재된 시스템은 어른이 되어도 마찬가지로 작용한다. ‘뭐라도 해야 한다. 그러려면 학원에 가야 한다.’ 


 처음엔 헬스장을 갔다. 1개월보다는 3개월이 저렴해서 그렇게 하였고, 3개월 치 돈으로 3번의 샤워를 했다. 자격증이라도 따려고 3개월 환급반 결제를 했지만, 3단원을 넘기지 못했다. 간단한 영어가 필요할 것 같아서 회화학원을 등록했지만, 회식과 야근이라는 먹고시니즘의 핑계로, 시간을 못 맞출 것 같아 3일 만에 환불받았다. 


 뭐라도 해야 하는, 그러기 위해 교습소를 찾는 나의 작심삼일은 주기적으로 나를 들었다 놓았다 하였고, 어느덧 일 년이 흘렀다. 이번에도 어딘가를 찾았다. 시립도서관에서 주최하는 '쉽고 재미있는 글쓰기' 수업이란다. 1년 동안 저 정도로 돈을 날렸더니, 난 충분히 지혜로워졌다. 무료 강의의 가장 큰 장점은 돈 아까워 그만두지 못할 일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측했던 쿨함은 나의 오만이자, 오산이었다. 난 10주 동안 실패했고, 역설적으로 실패한 덕분에 그만둘 수 없었다. 수업은 일주일에 1회였는데, 큰 기대를 안 해서 그런지 하필 매주 수요일마다 겹치는 일이 없었던 덕분인지 수업은 꼬박꼬박 나갈 수 있었다. 선생님은 당연한 얘기를 했지만, 동기를 부여하기에 충분했다.


“글쓰기를 잘하려면 두 가지를 잘 지키면 됩니다. 첫 번째는 내 안의 검열자에게서 벗어나야 합니다. 완벽해지려 하지 마세요. 두 번째는 그냥 써오세요. 처음엔 첨삭을 받아야 실력이 늘어요. 그러려면 일단 꾸준히 써야 합니다.”


 초심자의 행운이었을까. 첫 주에 숙제해갔는데 칭찬을 받았다. 선생님은 내 글이 잘 읽힌다고 하였다. 남들 앞이라 티는 안 냈지만, 씰룩거리는 입꼬리는 감출 수 없었다. 수업은 12명 정도가 들었는데, 숙제를 제출하는 사람이 적어서 해오기만 하면 칭찬을 받을 수 있었다. 


 돌이켜보니 이것은 숙제를 해왔다는 것에 대한 어떤 보상 정도였던 것 같다. 그래도 12명 앞에서의, 심지어 오프라인상의 칭찬이라니, 이것은 블로그의 좋아요로는 채울 수 없는 무엇이었다. 난 그렇게 숙제를 해갔다. 그러나 초심자의 행운은 위험하다. 여자가 말을 건 순간, 그녀와 노후 계획까지 생각했다던 모태 솔로의 상상처럼, 나는 퇴사하고, 책 쓰는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4주째부터 문제가 생겼다. 지적을 받기 시작했다. 


“산문꾼님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요. 한 단락은 한 주제면 충분해요.”

“양이 너무 많다 보면 논리적으로 취약할 수 있어요.”


 같은 100만 원이라도 얻을 때의 기쁨보다 잃었을 때의 슬픔이 더 크다고 했던가. 사람 마음이 이렇게 간사할 수 있구나. 12명 앞에서 받는, 게다가 오프라인상의 지적과 함께 밀려오는 창피는 고스란히 나의 몫이었다. 내 무식이 들통나버린 것 같다는 수치감. 싱글벙글 거리며 엄청난 걸 썼다고 이번에도 칭찬을 기대한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다음 주에도 그랬고, 그다음 주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왜 사서 고생을 하고 있을까. 사실 숙제로 쓴 글들은 서평, (영화) 감상평, 수필 등을 포함한 논리적 글쓰기였다. 논리적 글쓰기에서 첨삭과 함께 논리가 무너져가는 과정은 참혹하다. 나름 정성 들여 체계적으로 구성했고, 스스로도 여러 번 고치고 고쳐서 정갈하게 가져왔던 글들이 뒤죽박죽 만신창이가 되어버렸을까.   


“여러분은 아직 초보니까 첨삭은 순한 맛으로 해드릴 거예요.”


 사실 글쓰기 사부님은 그만큼 잘한 점에 대해서 칭찬도 해주셨고, 첨삭도 조심스럽게 해 주셨다. 하지만 내 마음은 이렇게 얄궂었다. 맞는 말인 걸 알면서도 싫은 소리는 에둘러 말해도 싫은 말로 들리는데, 이 정도면 선생님이 날 싫어하나 싶기도 하고, 덩달아 나도 그가 미운 거 같기도 하고, 이걸 굳이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애증이라 부르고 싶다. 


 그렇게 10주가 지났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 복잡하다. 어떤 열정일 수도 있겠다. 어떤 초심자의 재능을 발견했다는 오만일 수도 있겠다. 취미인데 이 정도면 괜찮지 않느냐는 어떤 합리화 때문일 수도 있다. 매번 털리는 멘탈에 대한 어떤 오기일 수도 있겠다. 받아들여지고 싶다는 어떤 인정 욕망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쓰다 보니 3년이 지났다. 내 취미는 글쓰기다. 취미가 글쓰기가 될 수 있던 팔 할은 아마 내 직업이 글을 쓰는 직업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글을 쓰는 나의 행위는 아직까진 취미에 걸쳐 있다. 하지만 점점 업을 향해 가고 싶고, 제대로 배우고 싶다. 너무 두려운 건 글쓰기를 진지하게 해 버렸을 때, 내 안의 검열자가 커질까 두렵다. 


“업으로 삼고자는 양반이 겨우 그 정도라니, 소질이 없구먼.”


 넘치는 필력가들 사이에서 아닌 척하며 재미삼아, 연습 삼아 했다는 핑계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는 게 두렵다. 읽어주는 고마운 사람들로부터 납득이 안될까 봐도 두렵고, 첫 문장에 읽는 이의 관심을 끌지 못해 뒤로 가기 될 생각들이 두렵다. 그렇게 나는 두려움을 써왔고, 앞으로도 써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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