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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문꾼 Dec 17. 2020

집은 어떻게 집이 되는가

영화《소공녀》의 관전 타이밍

영화 소공녀


 집이 집으로서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선 몇 가지 것들이 필요합니다. 즐거움, 아늑함, 가족 뭐 이런 거 있잖아요. 종합해서 그냥 사랑이라 부르고 싶네요. 어쨌든 사람들은 사랑스러운 집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영화는 인물들의 그런 노력을 보여줘요. 점심시간에 밥 대신 링거까지 맞아가며 일하는 대기업 사원을, 주택담보대출을 100만 원씩 20년 동안 상환해야 하는 새신랑의 한탄을. 



 노력과 행복이 비례했으면 좋겠지만, 행복은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안나카레리나》 첫 문장이 생각나네요.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모든 것을 다 갖춘 것이 행복일 거라는 공식이야 간단하겠지만, 우리는 한 가지만 부족해도 불행할 수밖에 없는 운명 앞에 놓여 있죠. 



 영화는 집 없는 잘 곳 없는 주인공이 동료를 찾아 떠나는 여행기입니다. 대학 시절 그들은 밴드부에서 다 함께 열정을 나눴던 사이입니다. 모든 가사노동이 쏠려 가족의 구성원인지 식모인지 헷갈리는 키보드 현정. 결혼한 지 1년도 안 되어 이혼한 드럼 대용. 장가를 못 가 부모님의 걱정거리인 보컬 록이. 수직적인 부부 관계에 남편에게 말 한마디조차 걸기 어려운 기타 정미, 이것이 갖추어지면, 저것이 비어있고, 저것이 채워졌더니, 이것이 부족한 제각각의 불행은 야속하기만 합니다.



 집이 제 기능을 잃으면, 먹을 것이 없고, 더러워집니다. 구질구질하죠. 주인공 미소는 그런 집을 다듬습니다. 그녀는 가사 도우미거든요. 미소의 손을 거치면 정성스러운 집밥이 차려지고, 어질러진 방은 정갈하게 정돈됩니다. 또한 그녀의 사랑은 충분히 채워졌습니다. 미소에게 위스키와 담배, 그리고 남자친구는 사랑이죠. 그러니까 미소는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모든 준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미소 자신에겐 정작 머물 집이 없다는 것. 그럴만한 돈이 없거든요. 그래서 미소는 잘 곳을 찾아 학창시절 밴드부 멤버들의 집을 찾아다닙니다. 추운 겨울에 미소를 재워주고 먹여주는 건, 사랑이 아니라고 현실이 속삭이는 것 같더니, 관객의 시선도 자연스레 현실을 따라가나 봅니다. 잘 곳도 없으면서 술 담배에 돈을 쓰고 있는 미소에게 혀를 끌끌 차고 있는 제모습을 봤거든요.



 사랑은 갖추었지만, 집이 없는 미소, 머물 집은 있는데 사랑이 빠져 있는 집주인들. 영화를 멀리서 봤더니, 아이러니를 유쾌하게 보여주는 그런 희극이더군요.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점점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비극입니다. 특히 부동산 사장님으로부터 집을 소개받는 장면은 남 얘기 같지만은 않거든요. 점점 깎여지는 월세만큼, 멀어지는 아늑함과 밀려오는 막막함 같은 거 있잖아요. 



 녹록치 않은 현실 때문에 집이 사랑을 잃고 제기능을 못한다면, 집값이라는 똑부러지는 현실 앞에서 집에 사는 (living)것보다 집을 사는 것(buying)이 익숙해졌다면, 적정한 영화관전 타이밍은 바로 지금이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전고운 감독의 《소공녀》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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