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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문꾼 Dec 24. 2020

판타지 장르의 변칙승부

영화 <어바웃타임>의 리얼리티

영화 <어바웃타임>


 시간여행을 보여주는 장르는 판타지로 분류 되겠지만, 영화 <어바웃타임>의 진정한 묘미는 리얼리티에 있습니다. 주인공 팀은 본인이 경험한 내에서 과거와 현재를 드나들죠. 하지만 영화의 장치들이 주인공의 능력을 가로 막아요. 이런 절제 덕분에 타임슬립 영화의 환상은 가려집니다. 그리고 내얘기처럼 와닿기 시작해요. 인사이트 있을 법할때 받아들이기 마련이니까요.



 영화의 장치는 도입부부터 상을 차단합니다. 아버지는 대대로 내려오는 시간여행 능력을 팀에게 가르쳐주며, 할아버지와 삼촌이 인생을 망쳤다고 덧붙이죠. 그들은 능력을 돈을 위해 썼거든요. 다음주 로또번호를 미리 기억하겠다든지, 그 돈으로 강남에 아파트 좀 사두겠다는 생각 따위가 무색해지네요. 원래 돈이란 게 가장 현실적인 것처럼 보여도, 돈을 많이 번다는 상상은 가장 비현실적인 거잖아요. 돈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스쳐지나가네요.



 팀은 청춘입니다. 청춘의 팔할은 사랑이죠. 하지만 이 시기의 몸과 마음은 따로 놀기 시작합니다. 스킨쉽도 어색하고, 짝사랑이 더 어울리는 그런 시기랄까요. 사랑에 서투른 팀은 그렇게 시간을 되돌립니다. 파티에서의 흑역사를 지워버리고, 실패한 고백을 번복하며 타이밍을 찾습니다. 하지만 바꾼다고 바뀌는게, 고친다고 고쳐지는게 아니거든요. 그의 첫키스는 동정에 가까웠으며, 첫사랑의 고백은 매번 실패합니다. 춘의 역사는 그런 찌질의 역사 잖아요. 남자는 그렇게 남자가 되기 시작합니다.


 

  인연은 따로 있는법. 시간이 흘렀고, 팀은 우연히 운명의 여자 사랑에 빠집니다. 그녀를 놓칠뻔 했지만, 시간을 돌려 인연을 풀어 나가요. 영화를 보면 아시겠지만, 굳이 시간을 돌리지 않았어도 충분히 가능했던 인연이였죠. 단조로움을 이렇게 꼬아버리다니, 영화의 서사에 감탄합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그녀와 결혼해, 토끼같은 자식을 낳아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면 좋겠지만,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팀과 달리, 여동생 키켓은 집안의 아픈 손가락 입니다. 그녀는 오래전 파티에서 남친을 잘못 만났어요. 나쁜 남자에게 헤어나오지 못하고, 알콜중독에 음주운전, 그리고 교통사고까지. 모든게 엉망이예요. 괜찮습니다. 시간을 돌려 그놈을 만나지 않게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영화의 장치가 팀을 갈등하게 만들죠. 과거를 바꾸어 키캣이 잘 풀렸더니, 자신의 딸 포지가 다른 아이로 바뀌어 있습니다. 다같이 잘 먹고 잘 살면 좋겠지만, 그런 해피엔딩만으로는 판타지 장르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정확한 순간에 정확한 정자로 포지가 만들어진 건데, 사소한 것 하나라도 어긋나게 되면 다른아이가 태어나는 것. 그러니까 원래의 타이밍과 원래의 조건을 갖춘 수정(精)만이 포지를 만들 수 있어요. 결론적으로 출산전의 과거가 바뀌는 것은 위험합니다. 결국 팀은 키캣의 과거를 바꾸지 못하죠. 그저 동생이 스스로 깨닫고, 현재의 상황을 고쳐나가길 지켜볼 뿐이예요.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 아버지가 시한부 판정을 받습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있지만, 상관 없습니다. 어차피 팀은 과거로 돌아갈 수 있고, 보고 싶을 때마다 아버지를 만나고 오면 되니까요. 하지만 영화가 이것을 내버려둘 리가 없죠. 아버지의 장례식 이후, 아내는 셋째를 갖자고 고백합니다. 그렇게 되면, 팀은 더 이상 셋째를 낳기 직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감독은 부자의 결심을 산책으로 보여주는데, 이별이 이렇게 담백할 수가 없네요. 그렇게 팀은 남들과 마찬가지로 상실감을 경험할 것입니다.



  유튜버 오마르는 허지웅 작가의 에세이집을 두고 영상을 하나 찍었는데, 다음과 같이 마무리 했습니다. "충분한 기회가 충분한 내적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말, 저는 살아가면서 계속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러게요. 치트키(cheat key)는 성취감을 앗아가니까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 하루를 시작하는 팀의 독백이 화룡정점을 찍습니다. 팀은 다짐합니다.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더 이상 쓰지 않겠다고. 마침내 리얼리티가 완성되었네요. 그에게 처음부터 시간 여행은 필요 없었다는 듯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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