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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림 Dec 17. 2024

폭력은 더 이상 뛰지 않는 벼룩을 만든다

폭력은 성격으로 고착되어 굳어져버린다




 

폭력은 더 이상 뛰지 않는 벼룩을 만든다



 엄마는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마시고는, 늘 기억 모든 걸 잃은 채, 시비와, 폭력, 폭언이 주사였다. 늘 맨 정신으로 살 수 없어 아침에 깨어나면 깡소주 그대로, 소주부터 들이켜 정신을 늘 몽롱하게 만들곤 했지.

  차라리, 술을 마시고 못이기겠으면 잠들어 있는 게 훨씬 나을텐데… 늘 집에 나와 엄마, 이렇게 둘이 있을 적이면 항상 나에게로 와서 ‘네 아비가…’로 시작했다. 말 그대로, 본인은 기억도 못하는 분풀이.

  그러다 너무 힘들고 화가나면 엄마를 도끼눈으로 쳐다볼 때면, 어김없이 엄마의 손은 내 머리와 뺨을 마구잡이로 강타하곤 했다.

  늘 머리채를 잡고 내 얼굴을 항상 가격하고는 했는데, 솔직히 맞아서 아픈 것보다 더 힘들었던 점은, 계속 내가 버티고 있으면 엄마는 기어코 날 안방으로 끌고가, 내가 지치고 지쳐 항복할 때 까지. 말 그대로 본인의 마음에 들 때까지의 모습인 순종적이고 기는 모습을 보일 때 까지.

  몇시간이고, 반나절이고 날 가둬두고 대치 상황에서 끝없이 감금과 폭력, 폭언을 해댔어. 제발, 술에서 깨어나면 아무것도 또 기억 못할 거면서. 나는 그렇게 더 이상, 모든 걸 체념한 채, 뛰어오르지 않는 벼룩이 되어버렸다.

  이미 살고 싶지 않고, 내 영혼은 죄다 말라 비틀어져 갔고, 엄마를 막을 방법이 더는 없었기 때문이었어. 정말이지, 아침만 되면 바로 소주를 들이켜는 엄마로 인해 깡소주 유일한 안주인 소쿠리에 자박하게 담긴 멸치 똥을 따야했어. 멸치는 마치 엄마에게 독 같이 느껴졌어.

  나에겐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죽음의 종이 울리는 것 같았지.

[‘언제쯤이면 벗어날 수 있을까. 내가 더 살아갈수는 있을까…’ 생각하고 있던 차에, 머지않아 이후, 엄마의 폭설사건과 함께 술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근데 웃긴사실은, 꽤나 성격으로 굳어지고 고착이 되어서, 술은 끊었어도 엄마의 히스테리적 폭력과 폭언은 여전했지 뭐야. 그로인해 더더욱 종교자체를 혐오했고, 경멸하며 저주하던 때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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