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날 Aug 17. 2022

나는 의원면직을 하기로 결정했다.

교직이 적성에 안 맞는 95년생 교사의 학교 생활

24살, 첫 학교에 발령받아 3일째 출근하던 날 알았다. 교사가 적성에 안 맞는다는 것을.

경기도민이면서 서울특별시 교육청 소속인 나는 발령과 동시에 자취를 해야 했다. 갑자기 시작한 자취가 문제였을까. 굵직한 알바 경험 없이 시작한  사회생활이 버거워서였을까. 아니면 중학교  역사 선생님을 싫어했고, 고등학교  근현대사 선생님을 좋아하면서도 근현대사 시험을 더럽게  봤던 내가, 사회 교사이면서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는 현실이 억울해서였을까. 써놓고 보니 3 만에 다니기 싫을만했네 싶다.


첫 학교는 열악한 학교였다.

3년 만에 학교를 옮기고 나서야 나는, 첫 학교에서 내가 담당했던 업무들을 여러 사람이 분담하는 학교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근 간, 두 번째 학교는 첫 학교와 반대되는 점이 많았다. 첫 학교가 신규 발령이 많아 20-30대 교사가 많았다면, 두 번째 학교는 40-60대 교사가 많고 이곳을 마지막으로 퇴직하시는 분들도 꽤 많은 듯했다. 첫 학교와 두 번째 학교의 차이점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첫 학교는 전보 우선 지원학교였고 옮겨 간 학교는 전보 선호 학교이다. (여기서 전보 선호 학교란 교사들이 전근을 가고 싶어 하는 학교이고 전보 우선 지원학교는 그렇지 않은 학교라고 볼 수 있겠다.)


학교를 옮기면 적성에 안 맞던 일이 혹시 맞아질까 싶었다.

한시적으로는 효과가 있었다. 첫 학교에서는 미인정 조퇴, 미인정 결과, 미인정 결석 등으로 출석부 정리하기가 힘들었는데, 두 번째 학교에서는 코로나로 인한 출결을 제외하고는 출석부 정리가 수월했다. 수업 때 연필이 없어 내가 챙겨줘야 하는 학생이 없다는 것에 나는 한동안 꽤나 신기해했다. 이렇게 나아진 근무 환경이었지만 학교 옮긴 빨(?)은 딱 1년 갔다. 두 번째 학교에서도 어려운 일은 어김없이 찾아왔고 그 결과, 나는 지난 1학기를 보내며 2018~2022년 약 4년을 지속해 온 교직 생활을 계속해야 할지 말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아가리 퇴사러. 교사니까 아가리 의원 면직러가 아니었다.

첫 학교에서부터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꽤 많이 해왔는데, 실행 없이 입으로만 퇴사를 말하는 직장인을 지칭하는 '아가리 퇴사러'라는 표현을 인터넷에서 접한 후, 나는 스스로를 '아가리 퇴사러'로 진단했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었다. 교직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그만둬야만 했다. 지도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이유로 반복해서 싸우는 아이들이 이해되지 않았고, 아주 가끔이었지만 예의 없는 행동을 하는 아이들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초, 중, 고등학교 시절 내내 꽤 많은 선행상과 예절상을 받은, 모범적인 행동이 잘 사회화된 학생이었기에 일명 문제아로 불리는 학생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는 척은 잘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어려움을 이야기할수록 속상해졌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문제 상황을 감당해내는 내 마음의 크기가 보통 사람들의 그것보다 작은 것 같아서 속상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데 교직이 정말 적성에 안 맞는 것 같아서 속상했고 진로 선택에 완전히 실패한 것 같아서 속상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엔 마음이 너무 다쳐버린 것 같아 속상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평화주의자였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아주 사소한 말다툼 장면을 목격하곤 못 본 척 몰래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는 아이였다. 눈앞에 갈등 상황이 펼쳐지기도 전에 펼쳐질 거란 예감으로 자리를 떠버리거나 어떻게든 갈등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내 마음속에 실시간으로 온갖 플랜을 짤 수 있는 아이 었다. 어린 평화주의자는 어른이 되어서 아이들이 싸우는 상황을 반복해서 보고 퇴근한 날이면, 눈물을 날 것 같았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던데 그 말이 사실이라면, 교직에 있는 동안은 갈등 상황을 목격(지도)해야만 할 터인데 나는 더 이상 그 상황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갈등 상황에 대한 막연한 걱정이었지만, 그때는 그 막연한 상황에 대해서도 지도할 에너지가 없을 거라 단정 지을 만큼 마음이 많이 약해져 있었다.


적성에 안 맞는 일에 대한 스트레스는 몸에 알레르기 반응으로 나타났다.

4년 전, 첫 학교에서 한 학기만에 팔, 다리, 귀 등 신체 곳곳에 생전 없던 아토피가 생기고 진물이 나 고생했던 나는. 4년 만에 또다시 아토피인지 알레르기인지 모를 그 녀석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번엔 눈에 난 알레르기였다. 위 내시경 전, 주사 바늘 꽂는 단계에서 하나도 안 무서운 척했지만, 내시경실을 앞두고 눈앞이 안 보일만큼 혈압이 떨어져 이미 내시경을 마친 환자들과 함께 한참을 누워있어야 했던 적이 있다. 나는 센 척하는 겁쟁이이지만 몸은 정직하다. 나는 내 몸에 나타나는 문제들이 무서웠다. 그때쯤 유튜브 알고리즘은 내게 20-30대가 갑작스레 건강에 이상이 생긴 사례들을 보여주며 겁을 주었다. 적성에 안 맞는 일을 계속하다간 몸이 상해 아무 일도 할 수 없겠다 싶었다. 그렇게 비로소 의원면직을 하기로 결정했다. 오랜 상담 끝에 부모님도 내 결정을 존중해주셨다.




여름 방학을 약 2주 앞둔 날, 나는 교감 선생님께 교직을 그만두겠다고 말하기 위해 출근했다.

만약 교감 선생님께서 다시 생각해보라고 말씀하신다면 지난 5월부터 고민해왔다고. 사실 이 학교에 오기 전, 4년 전부터 이 길은 나와 안 맞는다고 생각해왔다고 말할 참이었다. 인터넷에 찾아봤더니 의원면직 절차상 교감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한 것 같아 이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안내를 받으러 왔다고 말할 계획이었다. 나는 모든 계획과 준비를 마친 답정너였다. 보통 나는 큰 교무실에서 2~3번째로 일찍 출근한다. 보통 내 다음 차례로 교감 선생님이 오시기에 나는 교무실 가장 끝쪽, 높은 파티션이 있어 들키지 않고 교무실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내 자리에서 그분이 오시기를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곧 오실 테지만 오늘은 내게 중요한 과업이 있는지라 기다리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평상 시라면 이른 아침에 잘 접속하지 않는 업무 포털을 열었다. 업무 포털에 들어가서 평소에 잘 보지 않는 일일 근무상황을 클릭했다. (여기서 일일 근무상황은 전체 교직원 중 오늘 누가 조퇴 예정인지 연가 예정인지 지각 예정인지 등을 볼 수 있는 탭이다.) 아무튼 이상하게 아침부터 업무포털에 접속해 일일 근무상황이 보고 싶던 그날. 그날은 정년퇴직을 앞둔 우리 교감 선생님이 관외로 출장을 가셔 당분간 학교로 출근하지 않으시는 첫날이었다.



인생은 타이밍이라더니.

나무 위키가 말하길 완벽주의적 성향을 추구하는 infj인 내가 완벽하게 계획했던 의원면직에 차질이 생겼다. 나무 위키는 infj는 본인만의 철칙이 뚜렷하여 고집이 세다 느껴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날 아침, 나는 나만의 철칙과 고집으로 의원면직이라는 나의 to-do list에 체크 표시를 했어야만 했다. 나의 의원면직은 타의에 의해 실패하게 되었다. 그런데 계획대로라면 그만두기로 말했어야 할 그날, 학교에서 보낸 하루가 꽤 괜찮더라. 아이들은 똑같이 문제를 일으켰고 수업은 똑같이 힘들었는데 내 마음이 괜찮더라.



그렇게 2주가 흘러 여름 방학이 왔고, 4주가 흘러 방학이 끝났다. 그간 나는 마음이 많이 회복되었다. 고집이 센 나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면 하고 싶은 거라고 세뇌하려 해도 몸에서 거부 반응이 일어난다. 그런데 개학을 하루 앞두고, 적성에 안 맞는 이 직업을 더 할 수 있겠단 생각, 아니 마음이 든다. 적성에 안 맞는 건 그대로인데 학교에 있어보고 싶다. 또 적성에 안 맞지만 있어야 할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그래서 나는 의원면직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